[태평로] 국가 순위에 동그라미 하나 더 붙인 사람들

김민철 논설위원 2021. 2. 26.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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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위권 국가가 102번째 접종… 주요국보다 계약 4~5개월 늦어
되짚어봐도 이해할 수 없는 일… 결단 내릴 리더십 부재가 원인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하루 앞둔 25일 오전 광주 북구보건소에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실은 운송 트럭이 경찰과 군인들의 삼엄한 경계 속에 도착했다. 보건소 직원들은 인계받은 백신을 확인하고 백신전용 냉장고에 보관했다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 정도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갑자기 동그라미 하나가 더 붙었다. 영국 옥스퍼드대 통계사이트 ‘아워 월드 인 데이터’에 따르면 이미 101국(22일 기준)에서 신종 코로나 백신 접종을 시작해 우리 국민은 102번째 이후로 백신을 맞는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2억2000만명 정도가 접종하고 나서야 백신 실물을 보게 생겼다.

26일 우리나라도 코로나 백신 접종을 시작하는 것은 의미 있는 변곡점을 만드는 것이지만 늦어도 너무 늦었다. 세계 최초로 지난해 12월 8일 백신 접종을 시작한 영국보다는 석 달 가까이, 12월 중·하순 시작한 주요국들에 비해도 두 달쯤 늦은 셈이다. 다른 나라들은 백신 접종을 본격화하면서 신규 확진자 감소세가 확연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최근 일주일 사이 전 세계 확진자가 11% 감소하는 등 6주 연속 감소세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우리도 백신만 확보했으면 백신에 대한 거부감이 적고 의료 시스템도 잘 갖추어져 있어서 빠른 속도로 접종할 수 있을 것이다.

주요국들이 백신 계약을 시작한 시기는 지난해 7~8월이었다. 화이자·모더나 등이 1상에서 백신 접종 후 바이러스를 무력화시키는 중화항체 형성이 코로나 회복기 환자보다 2~3배 많다고 발표한 직후부터였다. 아직 1상 결과여서 리스크가 컸지만 이 데이터 등을 근거로 계약이라는 행동에 옮긴 것이다. 그 대신 여러 백신 제조사들과 계약해 실패 가능성에 대비했다.

그즈음 우리 정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얼마 전 정세균 총리 방송 인터뷰로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지난 7월 국내 하루 확진자가 100명 정도여서 백신 의존도를 높일 생각을 하지 않았던 측면이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아스트라제네카와 계약한 것은 지난 11월 말, 화이자와 계약한 것은 12월 말이었다. 주요국들보다 4~5개월 늦은 것이다. 정 총리 말은 공직자 해명 중에서 그나마 솔직한 것이지만 이 말도 맞지 않는다. 백신이 코로나 사태를 끝내는 근본적인 해결책인데, 확진자 숫자가 적으니 백신 확보가 늦어도 상관없다는 논리가 어떻게 가능한가.

박능후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백신 계약이 늦은 이유에 대해 “화이자, 모더나가 너무 일방적이고 불리한 계약을 강요”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두 회사가 우리나라에만 유독 불리한 계약 조건을 제시했을까. 아닐 것이다. 캐나다가 화이자·모더나와 백신 구매 계약을 맺은 것은 지난 8월 초였다. 캐나다 트뤼도 총리라고 계약 조건을 망설이지 않고 임상 실패에 대한 불안감이 없었을까. 하지만 “어떤 백신이 성공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과잉 주문이 예방책(over-ordering was a precaution)”이라는 전문가(맥스웰 스미스 웨스턴대 교수)들 조언을 받아들인 것이다.

우리 방역 전문가들도 지난해 여름 비슷한 얘기를 반복했다. 우리 정부는 귀 기울이지 않았을 뿐이다. 결국 우리와 캐나다는 과학적인 데이터와 주요국 흐름을 보고 결단할 리더십을 갖고 있느냐 아니냐 차이로 백신 계약과 확보에서 큰 차이를 보인 것이다.

이번 사태가 끝나면 코로나 백서를 쓸 것이다. 그 백서의 중요한 챕터 중 하나로 백신 구매 실패기가 들어가야 한다. 왜 늦어졌고 누가 책임져야 할지, 재발 방지를 위해 어떤 문제나 제도를 고쳐야 하는지 솔직하게 담아야 한다. 그래야 다음 팬데믹이 오더라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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