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40] 여섯 살 아이와 함께한 코로나 1년

채민기 기자 2021. 2. 26.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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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니바퀴 돌듯 '육아 분업'
'돌봄 공백' 맞서 힘겨웠지만 아이 일상 지켜본 시간, 축복
초보 부모들에게 말하고 싶어 "잘해 왔다고, 쭉 잘할 거라고"

오늘은 아이가 유치원에서 7세 형님반으로 올라가는 날이다. 졸업식도 아닌데 느낌이 조금 특별하다. 돌봄 공백 앞에서 아내와 온몸으로 1년을 버티고 맞는 수료식이기 때문이다.

맞벌이하면서 생후 70일 때부터 입주 베이비시터 이모님 손에 아이를 맡겨온 우리 부부의 육아는 코로나에 매우 취약했다. 확진자 수가 치솟을 때마다 바로 여파가 닥쳤다. 1차 대유행으로 개학조차 못 했던 지난해 3월. 아내가 출근하면 이모님과 아이가 있는 거실을 피해 골방에서 재택근무를 했다. 코로나가 뭔지도 모르고 집에 갇혀 지내게 된 아이는 수시로 방문을 벌컥벌컥 열었다. “아빠 색종이 찾아줘” “테이프 필요해요”(왜인지는 모르지만 접착 테이프를 달라고 할 때만 존댓말을 썼다)

첫 '이모님'이 일을 그만두신 지난해 5월 어느날 아이의 일기.

5월에 유치원이 문을 열었다. 한숨 돌리나 싶었는데 이번엔 이모님이 일을 그만뒀다. 코로나 때문은 아니었으나 코로나 시국에 그 빈자리는 컸다. 아이 아침 먹이고 옷 입혀 유치원 버스에 태우는 일이 내 몫이 됐다. 아내는 ‘맘시터’(베이비시터 구인 앱)를 밤낮 들여다보며 새 이모님을 찾았다. 근무 시간은 유치원 끝나는 오후 3시부터 아내가 허겁지겁 퇴근하는 7시까지. 아침엔 내가, 오후엔 이모님이, 저녁엔 아내가 아이를 보는 육아 분업의 시작이었다. 회사 일이 바빠 이 톱니바퀴가 어긋나지는 않을까 우리는 매일 조금 불안했다.

8월에 2차 대유행이 왔다. 유치원이 온라인으로 전환했다. 아무리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라도 여섯 살짜리 혼자서 화상 수업은 무리다. 기사 쓰다 말고 물방울 돋보기 과학 키트 따위를 조립하면서 반쯤 보조 교사가 된 기분이었다. 이것은 재택 근무인가 그냥 재택인가. 연말의 3차 대유행은 무척 길었다. 처음엔 내가 재택근무하며 버텼고 다음엔 아내가 휴가를 몰아 쓰며 견뎠다. 휴가도 다 쓴 뒤엔 양가 어른들께 SOS를 치는 수밖에 없었다. 처가 어른들이 아침마다 우리 집으로 출근하셨다. 마지막 한 주는 지방 본가로 아이를 내려보냈다. 처음으로 아이를 떼어 놓고 올라오면서 한국의 육아 현장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의 헌신이 얼마나 결정적인지 실감했다.

첫 이모님이 일을 그만두던 무렵 양육자를 잃은 아이의 불안을 지켜보던 일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다. 하염없이 창밖을 보며 아이는 “저 노란 버스(평소 이모님이 타고 다니던 성남시 마을버스를 아이가 이렇게 불렀다)에 할머니 타고 있는 거 아니야?”라고 5분마다 물었다. 나는 해줄 말이 없었고 아이는 체념인지 적응인지 며칠 뒤 “할머니가 많이 생각날 것 같아”라며 제법 어른스러운 말을 했다. 그러면서도 하루는 이런 일기를 적어 놓았다. “할머니 보고싶퍼(싶어)요 이지(잊지) 마세요 재가(제가) 이따는(있다는)걸요.”

신기하게도 지나간 일은 나쁘지만은 않았다고 느껴진다. 코로나 때문에 고달팠지만 뒤집어 보면 코로나 때문에 아이와 함께할 수 있었다. 아침 당번을 맡은 덕에 엉성하게나마 ‘삐삐머리’(양갈래 머리)와 ‘하나머리’(포니테일)를 번갈아가며 묶어줄 수 있었다. 아침 일찍 썰어 둔 채소로 계란 볶음밥을 만들어 아이와 점심을 함께 먹고 설거지와 양치질까지 1시간 안에 마칠 수도 있게 됐다. 그러지 못하면 도마 소리 그릇 소리가 화상 수업에 그대로 잡히기 때문이다. 대단할 것도 없는 일들이지만 늘 바쁜 아빠였던 나는 지금 그 별것 아닌 일들을 다시 오지 않을 아이의 여섯 살 시절에 함께할 수 있어서 조금은 다행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린아이 키우는 집의 사정은 어디나 비슷했을 것이다. 그 시간을 힘겹게 지나왔을, 나와 아내 같은 초보 부모들에게 전하고 싶다. 잘해왔다고. 앞으로도 잘해나갈 수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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