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국대전쟁.. 대만 TSMC, 삼성의 '초격차 전략'으로 삼성 넘다

이태동 기자 2021. 2. 26.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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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파운드리 세계 1위' 대만 TSMC, 삼성전자와 뭐가 다른가
대만 TSMC 본사 입구에 걸린 회사 로고.

삼성전자와 TSMC는 각각 한국과 대만을 대표하는 기술 기업이다. 단순히 규모가 ‘1등’이어서만은 아니다. 두 회사는 각국의 고유한 경제·산업적 특성을 집약해 담고 있다. TSMC는 한 분야에 집중하는 전문성, 타 기업과의 연계·협업, 국가 차원의 적극적 육성 등 대만 산업의 특징을 고스란히 갖췄다. 삼성전자는 강한 오너 리더십, 다각화한 사업 분야, 자체 브랜드 강조, 패스트팔로어(fast follower) 전략 등 한국형 기업의 성공 모델이라고 할만하다.

두 기업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산업이 급부상하며 일일이 비교되는 본격적 경쟁 관계가 됐다. 지난해 4분기 기준 시장점유율은 TSMC가 55.6%, 삼성이 16.4%다. 인터넷상의 주식 전문가들은 앞으로 업계 1위를 둘러싼 삼성전자와 TSMC의 반도체 기술 경쟁이 뜨겁게 달아오를 것으로 내다본다. 반도체 전문가들 사이에선 그러나 “삼성전자가 이 분야 2위까진 무난히 올라왔지만 TSMC를 역전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전망이 적지 않다. ‘1등 삼성’이 아니라 ‘1등 TSMC’를 더 공고하게 하는 차이는 과연 뭘까.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

TSMC의 무기는 확실한 ‘자기 정체성'이다. TSMC는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모토 아래 ‘동반 성장’ 비전을 철저히 지켜왔다. 이른바 객호신임(客戶信任·고객신뢰)의 원칙에서 나온 이 회사의 경영 불문율이다. 국내 한 반도체 설계 업체 대표는 “TSMC는 애플이나 엔비디아 같은 세계적 고객사가 자신들의 핵심 기술이 담긴 반도체 설계를 넘겨도 안심할 수 있는 신뢰를 쌓았다”며 “역으로 이들이 TSMC의 기술적 도움을 받기도 한다”고 했다.

삼성전자는 이런 면에서 불리한 점이 있다. 이 회사는 종합 반도체 업체이자, 완성품(세트) 제조업체다. 생산뿐 아니라 설계도 하고, 스마트폰 같은 완제품도 만든다. 위탁 업체 입장에서는 사업의 동반자이자, 경쟁자이기도 하다. 애플과 삼성전자의 관계가 단적인 사례다. 애플에 삼성전자는 메모리와 디스플레이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업체다. 애플의 자체 설계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도 삼성전자에 위탁 생산해 썼다.

애플은 그러나 2015년부터 AP를 전량 TSMC에서 공급받고 있다. 당시 표면적 이유는 TSMC가 만든 AP의 경쟁력이 더 높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점유율이 급격하게 높아지자, 애플의 반도체 설계 기술력이 삼성전자에 새는 것을 꺼린 스티브 잡스 당시 CEO가 거래처를 교체를 지시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최근에도 미국 통신 반도체 업체 퀄컴이 고급 AP 생산은 TSMC에 맡기고, 삼성전자엔 보급형 AP 생산만 맡기는 것도 비슷한 이유라는 말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이러한 우려를 의식, 파운드리 사업부를 분리 운영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만 TSMC의 반도체 제조 공장 안 모습. TSMC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경영 원칙이 이른바 객호신임(客戶信任)이다. 고객의 신뢰를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으로, ‘고객과 약속을 지킨다’, ‘고객의 성공을 돕는다’,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것이 여기 포함된다

◇삼성의 ‘초격차' 전략 배운 TSMC

TSMC가 삼성을 의식해 ‘초격차 전략’을 실천하면서 두 회사 간 경쟁력 차이가 커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초격차는 권오현 전 삼성전자 회장이 쓴 표현으로, 경쟁사를 압도하는 투자와 기술 개발로 2위와 격차를 계속 벌려 1위 자리를 공고하게 한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 입장에선 자신의 성공 비결을 경쟁자가 채용해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9년 4월 2030년까지 R&D(연구 개발)와 생산 시설에 총 133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올해 투자 목표액은 약 12조원, 연평균 11조원이다. 반면 TSMC의 올해 투자 목표액은 최대 31조원으로 삼성의 2.5배다. 반도체 수요 급증에 대비하는 한편, 삼성과 벌이는 경쟁에서 압도적 차이를 내겠다는 TSMC의 의중이 읽힌다. TSMC는 2019년과 2020년 투자액도 삼성의 3배에 달했다.

투자액만큼 기술 격차도 벌어지고 있다. 반도체 기술 분석 업체 IC날리지(ICKnowledge)는 최근 “7나노미터 이하까진 양사 기술이 비슷했지만, 5나노미터 이하부터 TSMC와 삼성전자의 격차가 커지고 있으며, 3나노미터부터는 TSMC가 집적도, 성능, 생산 비용에서 모두 삼성전자를 앞섰다”고 밝혔다.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부 김정호 교수는 “삼성전자는 TSMC와 같은 무대에서 같은 방식으로 경쟁해선 1등이 되기 힘들다”면서 “뉴로모픽 반도체<키워드>같은 미래 제품으로 ‘미지의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고 말했다.

◇ ‘나라'와 국민이 밀어주는 회사

두 회사는 국가와 사회적 지원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 TSMC는 1987년 설립 당시 공기업으로 시작했다. 민영화 이후에도 정부가 6%대 지분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자본은 물론 인력 육성을 적극 지원하고, 모리스 창 회장의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해 주면서 과감한 의사 결정으로 투자와 기술 개발에 나설 수 있었다.

반면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은 고(故) 이병철·이건희 회장의 오너 리더십에 의존해 성장해 왔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 대에 와서는 각종 사법 리스크에 휘말려 경영 불안정성이 극대화하고 있다. “삼성의 반도체 비메모리 세계 1위를 지원하겠다”던 정부의 산업 육성 계획도 지지부진하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는 최근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마저 후발 주자의 추격을 당하고 있다.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는 “정부가 전면에 나서 국민에게 ‘1등’을 강조하면서 부담을 느낀 삼성이 유연한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됐고, 원래 잘했던 다른 분야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

☞뉴로모픽 반도체

인간의 뇌 신경 구조를 모방해 만든 반도체. 데이터 연산과 저장을 동시에 할 수 있고, 학습 능력도 갖출 수 있어 AI(인공지능) 기술 확산에 따른 수요 급증이 예상되는 제품이다. 미국 인텔과 IBM 등이 선도적으로 개발 중이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개발에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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