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로또 명당
조선 세종 때 문신 어효첨은 풍수지리와 명당(明堂)을 믿지 않았다. 아버지도 집 뒷산에 묻었다. 세종에게 풍수지리를 믿지 말라는 상소까지 올렸다. 세종이 “효첨이 옳긴 하나 부모 장사에도 이 법을 쓰지 않았단 말인가?”라며 의아해하자 정인지가 말했다. “그 아버지 묘 부근에 용(龍) 호(虎) 귀(龜) 작(雀)을 놓았으니 풍수의 법을 믿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효첨은 훗날 모친 산소도 아버지와 같은 곳에 썼다.
▶명당 찾는 심리를 미신으로만 치부할 건 아니다. 오늘날 합리적 관점에서 봐도 수긍할 부분이 있다. 풍수학자인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는 명당을 ‘사람이 활동하는 장(場)’이라 했다. 고정된 장소도 아니다. 조선일보에 ‘국운풍수’를 연재하는 김두규 우석대 교수는 “사람이 활동하는 판이 바뀌면 명당도 이동한다”고 설명한다. 산과 하천에 길과 다리를 놓고, 그 길을 따라 권력과 돈이 몰리는 자리가 명당이란 얘기다. 서울 지도를 4등분하고 네 지역이 만나는 곳에 병원을 지었다는 이도 있다. 사통팔달해야 명당이란 이유에서다.
▶서울에선 3면이 산에 둘러싸이고 전면에 한강이 흐르는 경복궁 일대가 손꼽히는 명당이다. 그 명당에 자리 잡았는데 조선왕조는 처참하게 망가지다가 결국 망국까지 당했다. 몇 해 전 한 문화계 인사가 “풍수상의 불길한 점을 생각할 적에 청와대를 옮겨야 한다”고 말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청와대 대통령들의 말년이 대부분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대한건국의 기적이 시작된 것 또한 사실이다.
▶1등 당첨자가 19번 나왔다는 용인의 한 로또 판매점에 사람이 몰리는 바람에 교통체증이 빚어져 결국 도로를 넓히게 됐다고 해서 화제다. 부산에는 1등 당첨자가 30번 넘게 나온 명당도 있다고 한다. 로또 최고 당첨액(407억원)이 나온 곳은 춘천인데 그 집 부근 로또 판매점에도 사람들이 몰렸다. ‘폭탄이 떨어진 자리에 또 떨어지지 않는다'고 믿은 사람들이라고 한다. 로또 1등을 많이 배출한 판매점들 지도도 있다. 대부분 하천, 호수, 바다로부터 약 1㎞ 안에 있더라고 한다.
▶로또 명당과 달리 진짜 명당은 인간이 피땀으로 만든 곳이다. 일본 도쿄는 15세기 전국시대만 해도 땅이 질고 척박한 변두리 어촌에 불과했다. 이곳에 수로를 정비하고 주변 흙을 퍼다 날라 땅을 단단히 굳힌 뒤 세계적 대도시로 발돋움했다. 따지고 보면 세계 4대 문명 발상지도 모두 범람하는 강과 싸우며 인간이 만들어낸 명당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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