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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소송전 끝 공무상 재해 인정받고도 보험금 못 받는 사연

입력 2021. 02. 26.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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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자살 공무원 유족, 행정소송 승소 후 보험금 청구..대법 "청구권 소멸시효 지났다"

[법알못의 판례읽기]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는 기간은 정해져 있다. 수십년 전 사고에 대한 보험금을 갑자기 요구할 수 없는 노릇이다.

여기서 보험금 청구권의 소멸 시효를 계산할 때 기준일을 언제로 잡아야 하느냐는 문제가 발생한다. 최근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는 기간은 원칙적으로 사고 발생일을 기준으로 계산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배우자를 잃은 한 유족이 10년에 걸쳐 보상금과 보험금을 달라는 소송전을 벌였다. 유족 보상금 지급 여부를 둘러싼 5년간의 행정 소송에선 이겼다.

이후 한 생명보험사와 진행한 ‘재해사망보험금 소송전’에선 하급심에서 연달아 승리했지만 대법원에서 졌다. 사고 발생일로부터 2년이 넘어 보험금 청구권 소멸 시효가 지났다는 취지에서다. 이 유족이 기나긴 소송전에 접어들게 된 사연과 법원의 판단 논리를 살펴본다.

보험사·공무원연금공단, 자살 이유로 지급 거절

국세청 공무원으로 일하던 A 씨는 2009년 11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 씨의 부인 B 씨는 “(남편이) 공무상의 과로와 스트레스로 우울증에 걸렸고 이로 인해 자살을 감행했다”며 유족 보상금을 청구했다.

하지만 공무원연금공단은 2010년 5월 보상금 지급 거부 결정을 내렸다. A 씨가 ‘기질적 소인’에 의해 자살한 것이지 공무상 과로로 인해 사망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때부터 지난한 소송전이 시작됐다. B 씨는 2011년 1월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행정 소송을 제기했다. B 씨는 1심에선 패소(2012년 7월)했지만 2심에서 승소(2013년 12월)했다. 대법원도 항소심과 마찬가지로 B 씨의 손을 들어줬다(2015년 7월). 결국 B 씨는 유족 보상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B 씨는 이 판결을 바탕으로 2015년 8월 A 씨가 생전 가입했던 C 생명보험 회사에 재해 사망 보험금 1억5000만원을 청구했다. 하지만 C사는 이를 거부했다. 해당 보험의 재해 사망 관련 특약에 ‘보험 대상자(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규정돼 있는데 A 씨가 이에 해당한다는 주장이었다.

C사는 또 “망인의 사망일로부터 2년이 경과돼 보험금 청구권의 소멸 시효가 완성됐다”고도 주장했다. 또다른 소송전이 시작됐다.

쟁점은 A 씨의 사망을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로 볼 수 있는지(제1 쟁점)와 B 씨의 보험금 청구권 소멸 시효가 완성됐는지(제2 쟁점) 등 크게 두 가지였다.

먼저 제1 쟁점과 관련해 1심 재판부는 “(이번 사건은) 피보험자가 정신 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 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망의 결과를 발생하게 한 경우”라며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나 ‘고의적 자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A 씨가 극심한 우울증을 앓아 정신적 억제 능력이 현저히 저하됐던 상황이 반영된 것이다.

제2 쟁점과 관련해서도 법원은 B 씨의 손을 들어줬다. 논리 구조는 다음과 같다. 원칙적으로 보험금 청구권의 소멸 시효는 보험 사고가 발생한 날부터 진행한다는 것이 맞다.

다만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엔 계산이 달라질 수 있다. 가령 보험 사고가 발생한 것인지 여부가 객관적으로 분명하지 않아 보험금 청구권자가 보험 사고 발생 사실을 알 수 없었던 경우 등이다. 이런 경우 ‘보험 사고의 발생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던 때’로부터 보험금 청구권의 소멸 시효가 진행된다.

1심 재판부는 A 씨 사례가 이 같은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봤다. A 씨가 사망한 직후인 2010년 공무원연금공단이 “망인이 공무상의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사망했다고 볼 수 없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후 5년간의 행정 소송 끝에 공무원연금공단의 결정이 잘못됐다는 점이 밝혀졌다.

재판부는 “판결이 확정된 2015년 7월이 돼서야 비로소 보험 사고의 발생을 알거나 알 수 있었다”며 “이번 소송은 2016년 6월 제기됐으므로 원고의 보험금 청구권 소멸 시효는 완성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항소심도 1심 판단을 유지했다.

5년 뒤 보험사에 재청구, 시효 지나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을 뒤집었다. B 씨에게 ‘(남편의) 보험 사고가 발생한 사실을 확인할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에서다.

가령 A 씨는 2009년 특별 승진 대상자에서 제외돼 스트레스를 겪는 등 불면증이 심해져 아예 잠을 자지 못할 정도의 상태를 보였다. 당시 A 씨는 부인인 B 씨에게 힘들다는 점을 토로했고 B 씨는 수차례 휴가를 내 병원에서 치료받을 것을 권하기도 했다.

A 씨가 사망한 당시 그의 바지 주머니에서 유서도 발견됐다. 업무 과다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경찰도 2009년 12월 타살 혐의점은 없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사정을 종합할 때 대법원 재판부는 “B 씨는 그 당시 A 씨가 정신 질환 등으로 인해 자유로운 의사 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망했을 가능성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어 “공무원연금공단이 당초 유족 보상금 지급을 거부한 점들만으로는 ‘객관적으로 보아 보험 사고가 발생한 사실’을 2015년 7월(행정 소송 확정 판결이 나온 시기)까지 확인할 수 없었던 사정이 있는 경우라고 볼 수 없다”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칙적으로 보험금 청구권의 소멸 시효는 보험 사고가 발생한 때로부터 진행한다고 해석함이 타당한다”고 밝혔다.

박스) 보험사의 ‘설명 의무’와 가입자의 ‘고지 의무’ 중 무엇이 더 중요할까

보험 가입 과정에서 보험사는 가입자에게 약관을 충실히 설명할 의무가 있다. 반면 가입자는 자신의 상황을 정확히 고지할 의무가 있다. 가령 생명보험에 가입할 때 병력 등을 제대로 알려줘야 한다.

‘설명 의무’와 ‘고지 의무’가 충돌할 때 어떤 의무가 우선될까. 대법원은 최근 보험사가 설명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면 가입자가 고지 의무를 충실히 지키지 않았더라도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단을 내놓았다.

2016년 A 씨의 아들이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하자 A 씨는 보험금을 청구했다. 하지만 A 씨 아들은 생전 오토바이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토바이 운전 여부를 묻는 질문표에 ‘아니오’라고 답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험사는 이를 바탕으로 보험금을 줄 수 없다고 통보했다.

하지만 A 씨는 “오토바이 운전으로 인한 사망 사고 시 보장되지 않는다는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맞섰다. 보험사 측이 중요 약관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험금을 줘야 한다는 취지였다.

법원은 A 씨 측이 고지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A 씨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원고가 고지 의무를 위반했다고 해도 보험사가 보험 약관을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았다면 원고의 고지 의무 위반을 이유로 보험 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항소심도 “(보험사가) 주기적으로 오토바이를 운전할 경우에는 특별 약관이 부가돼야 한다는 사실, 오토바이 운전 여부 등과 관련해 고지 의무를 위반한 경우에는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 등에 관해 설명 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이인혁 한국경제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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