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현의 '인물로 보는 차 이야기] (7) '밀수 茶에 골치 앓은 주원장-사위까지 죽였지만 차 밀수는 여전하고..

2021. 2. 26.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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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에서 들불처럼 일어난 몽고족은 순식간에 남송을 멸망시키고 중원을 차지했다. 몽고족은 한족 문화를 흠모하면서도 한족은 지독하게 박해했다. 한족은 몸에 쇠붙이를 지니지 못했고, 말도 타지 못했고, 밤에 촛불도 못 켰다. 몽고족이 시비 끝에 한족을 때려 죽여도 노새 한 마리 값만 물어주면 그만이었다.

그런 시기에 미천한 한족 집안 여덟째 아들로 태어난 아이가 있었다. 집은 찢어지게 가난했다. 17살에 가뭄과 역병으로 아버지와 어머니, 큰형이 모두 사망했다. 관 살 돈이 없어 헌 옷으로 시신을 싸서 이웃 땅에 묻고 자신은 절로 들어갔다. 절에서 밥과 빨래 등 온갖 궂은일을 하면서 밥을 얻어먹었지만, 가뭄으로 그나마 시주가 끊기자 두 달 만에 절을 나왔다.

탁발승으로 떠돌다 항원 운동을 하는 홍건군에 들어갔다. 여기서 뜻밖에 두각을 드러낸 그는 홍건군의 지도자가 돼 항원 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마침내 몽고족을 북쪽 초원으로 몰아내고 한족의 나라 명을 세운 그는 명나라 초대 황제가 됐다. 바로 주원장이다.

주원장은 굉장히 엄하게 나라를 다스렸다. 황권을 강화하기 위해 반란을 꾀했다는 명목으로 승상을 죽이고 삼족을 멸한 후 연좌제를 적용해 1만5000명을 죽였다. 이 같은 사건이 몇 차례 일어났고, 결과적으로 개국 공신은 거의 죽었다. 그는 특히 부패한 관리에게 엄격했다. 처벌 방법이 잔인하기로 유명하다. 은자 60냥 이상을 받은 관리는 사형에 처했다. 죽은 관리의 살가죽을 벗기고 속을 볏짚으로 채워 허수아비로 만들어 저잣거리에 세워 놨다고 전해진다. 그는 30년 동안 황제로 있으면서 반부패 운동을 명분 삼아 15만명의 탐관오리를 죽였다. 그래서 나라가 깨끗해졌을까? 그렇지 않다. 부패는 사라지지 않았다.

명나라 초대 황제 주원장. 밀수 차를 근절하기 위해 사위를 사형시켰다.
부패는 주원장의 발밑에서도 일어났다. 문제를 일으킨 것은 그의 사위였다. 주원장에게는 16명의 공주가 있었는데 그중 황후가 낳은 안경공주를 가장 사랑했다. 금이야 옥이야 키우다 직접 고른 젊은이와 결혼시켰다. 구양륜이다. 구양륜은 쟁쟁한 집안 출신도 아니고 겨우 진사밖에 안 됐지만 공주가 그를 사랑했고, 황제도 예뻐했다. 그런 구양륜이 주원장이 내린 사약을 받고 죽었다. 40이 채 되지 않은 젊은 나이였다.

▶‘차 거래 금지’에 격분한 몽고족 전쟁 일으켜

주원장은 신하는 몇만 명씩 죽여도 사위는 죽이지 않았다. 이기라는 사람이 있었다. 집안이 모반에 연루돼 모두 죽었지만 이기는 목숨을 건지고 유배만 당했다. 주원장의 사위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일 이뻐한 사위인 구양륜은 어떤 잘못을 저질렀길래 끝내 사약을 받은 것일까? 차 때문이다.

주원장에게 패한 몽고족은 본래 자신들이 살던 북쪽 초원 너머로 쫓겨났다. 역사에서는 북원이라 부른다. 북원은 1635년까지 존재했다. 명나라가 1644년에 망했으니 명나라와 거의 같은 기간 동안 존재한 셈이다. 북원은 빼앗긴 중원을 되찾으려고 공격을 시도했고, 명나라도 몇 차례나 대대적인 북원 정벌을 단행했다. 몽고족의 말은 번개처럼 빨랐다. 그들과 전쟁을 해야 하는 명나라에도 좋은 말이 있어야 했다. 그렇게 중요한 말이 명나라 초에 겨우 2만3700마리밖에 없었다.

후난성 흑차는 오랫동안 밀수 차로 명나라 정부의 골칫거리였지만 결국은 좋은 품질로 정부 지정 차로 선정됐다.
주원장은 국경 지역에 말 시장을 열었다. 주변 유목민의 말을 사고 대신 그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줬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차다. 명나라 역시 이전 당나라나 송나라처럼 주변 유목민을 차로 통제했다. 주원장은 차의 생산과 유통을 철저하게 관리했고 국경에 전담 관청을 둬 차가 넘어가고 말이 넘어오는 상황을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게 했다. 명나라 법전인 ‘명률(明律)’에는 ‘국경 너머로 차를 밀수출한 자와 이를 감시하지 못한 자는 모두 능지처참한다’고 쓰여 있다.

말과 차는 매우 불공평한 가격으로 거래됐다. 초기에는 말 한 마리를 가져오고 차 1800근을 줬지만 나중에는 말 한 마리를 차 120근과 바꿨다. 한때는 말 한 마리에 차 37근을 주기도 했다. 이처럼 차값이 어마어마했기에 차는 밀수꾼에게 아주 매력적인 아이템이었다. 저렴한 값으로 차를 구입해 유목민에게 건네주고 말을 받은 후 비싼 값으로 쳐서 돈으로 다시 바꿨다. 밀수를 하다 적발되면 바로 목이 베였지만 워낙 이윤이 컸기 때문에 목숨을 거는 자들이 끊이지 않았다.

구양륜은 자신이 밀수를 하다 적발돼도 주원장이 봐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관용 마차 여러 대에 차를 잔뜩 싣고 국경을 넘어갔다. 국경을 지키는 관원은 알면서도 감히 나서지 못하고 눈을 감아야 했다. 한번은 구양륜의 하인이 차를 실은 마차를 끌고 가다 세관원에게 붙잡혔다. 구양륜의 권세를 믿고 눈에 보이는 것이 없던 하인은 심지어 세관원을 두들겨 패기까지 했다. 세관원이 분을 못 이겨 황제에게 고했다. 황제는 당장 구양륜을 잡아 오라 명령했다. 황제가 친히 심문했고 구양륜은 죄를 인정했다.

황후와 공주가 목숨만 살려달라고 애원했으나 주원장은 구양륜에게 사약을 내렸다. 사지를 찢지 않고 사약을 내린 것이 주원장이 사위에게 베푼 최대한의 배려였다. 사약을 먹으면 창자가 타서 죽어도 몸뚱이는 보존할 수 있었다. 같이 걸려들어 간 구양륜의 하인과 평소 구양륜의 밀수를 눈감아줬던 관원들은 사지가 찢겨 죽었다.

이처럼 주원장은 사위를 죽이면서까지 차 밀수를 막으려고 애썼지만, 밀수는 막아지지 않았다. 특히 그가 사망한 후 점점 더 심해졌다. 밀수 차가 성하자 정부로 들어오는 세수도 대폭 줄어들었다. 명나라 13대 황제 만력제 때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유목민과의 차 거래를 폐지하는 강력한 조처를 취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밀수꾼이나 부패한 관원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은 것은 유목민이었다. 북쪽 몽고족과 여진족이 명나라 정부에 차를 다시 공급해 줄 것을 수차례 요청해왔다. 그러나 요청은 거절당했고 몽고족과 여진족은 연합해 전쟁을 일으켰다. 전쟁이 3년간 지속되자 명나라 정부는 어쩔 수 없이 차 공급을 재개하기로 했다.

이후로도 밀수 차는 근절되지 않았다. 특히 밀수를 부추긴 차가 있었으니, 후난성(호남성)에서 만든 흑차였다. 후난성 흑차는 명나라 정부가 유목민에게 공급하도록 지정한 쓰촨성이나 산시성 차보다 가격도 싸고 품질도 좋았다. 무엇보다 맛이 진해 양젖이나 소젖을 넣어 마시는 유목민 취향에 딱 맞았다. 그래서 유목민들은 명나라 정부에서 비싸게 공급하는 질 떨어지는 차보다 후난성에서 밀수한 흑차를 훨씬 선호했다.

밀수 차가 정부가 지정한 차보다 잘 팔리고 급기야 정부 지정 차가 그 때문에 위축되자 당연히 정부에서 논의가 이뤄졌다. 관리들 의견이 둘로 갈렸는데 한쪽은 후난성 흑차를 더욱 엄격하게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한쪽은 후난성 흑차도 정식으로 유목민에 공급하는 차로 지정하자고 주장했다. 황제는 유목민에게 공급하는 차를 쓰촨성과 산시성 차를 위주로 하고 후난성 흑차를 보조로 하도록 허락했다. 밀수 차로 시작한 후난성 흑차는 이처럼 순전히 품질로 시장을 개척했다.

지금도 후난성은 흑차로 유명하다. 유명한 흑차 브랜드인 ‘안화흑차’ ‘백사계’ ‘고마이계’ 등이 모두 후난성에 자리 잡고 있다.

▶차의 분류◀ 차는 가공방식과 발효도에 따라 크게 6가지로 나뉜다. 녹차, 백차, 황차, 청차, 홍차, 흑차다.

녹차는 불발효차로 역사가 길고 생산량이 많다. 황차는 녹차보다 조금 발효한다. 생산량이 매우 적다. 백차는 약간 발효한 차로 잎을 따서 시들리고 말리는 방법으로 만들어진다. 청차는 중간 정도 발효해서 만들어진다. 특히 향이 중요한 차인데 종류도 많아 300종이 넘는다. 홍차는 완전발효차다. 본래 녹차를 만들려다 시간이 지체되어 많이 발효된 잎이 아까워 차로 만든 것이 처음이라고 한다. 흑차는 국경 너머 유목민들에게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차다. 거친 원료로 만든다. '후(後)발효'가 특징인데 완성되어 출시된 후에도 계속 발효된다.

[신정현 죽로재 대표]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97호 (2021.02.24~2021.03.0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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