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세상은 점점 연결되는데, 인간은 계속 분열한다

오남석 기자 입력 2021. 2. 26.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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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기술(IT)과 교통수단 발달에 따라 인간은 점점 더 연결되고 있지만, 동시에 ‘동종 선호’ 경향으로 인해 극명하게 분열된다. 게티이미지뱅크

■ 휴먼 네트워크│매슈 O 잭슨 지음│박선진 옮김│바다출판사

팬데믹·금융위기 등 겪으며

‘인류 네트워크’의 위력 실감

나이·출신지 등 따라 뭉치며

타 부류와 선긋는 ‘동종선호’

SNS 알고리즘 통해 더 확산

양극화·극한대결 원인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지구촌의 모든 인류에게 ‘연결돼 있음’을 확실히 체감하게 했다. 중국의 한 시장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감염병이 순식간에 국경은 물론 대륙을 넘어 전 세계를 휩쓸고, 개개인의 일상을 무너뜨리고 사회와 세계의 작동 방식을 뒤흔들었다. 그야말로 가공할 만한 위력이다.

사회·경제 네트워크 연구의 대가로 꼽히는 매슈 O 잭슨 미국 스탠퍼드대 경제학과 교수의 새 책 ‘휴먼 네트워크’는 이처럼 연결된 존재로서의 인간, 그런 인간들로 이뤄진 세계를 네트워크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저자는 “네트워크를 이해해야 인간이 보인다”는 모토를 걸고 개인의 무리 짓기부터 소문과 전염병·금융위기 등의 확산, 정치적 양극화, 경제적 불평등 등 인간 행동과 관련한 다방면의 궁금증을 파고 들어간다.

보통 사람들이 얼마나 거대한 네트워크 속에 살아가는지 보여주기 위해 저자는 우주에 있는 별의 수와 30명으로 이뤄진 학급 학부모 집단을 비교한다. 칼 세이건에 따르면 관찰 가능한 별의 수는 약 3000해 개로 추산된다. 3자 뒤에 0을 23개 붙여야 만들어지는 수다. 그런데 30명의 학부모 중 서로 친구가 될 수 있는 짝의 수를 모두 더하면 435쌍(29 + 28 + 27 + … + 1)이 된다. 이들 각 쌍이 구성할 수 있는 네트워크의 수는 2×2×2×… ×2식으로 2를 435번 곱한 수다. 1 뒤에 0이 131개나 붙는 수가 나온다. 까마득하게 많은 별도 인간 네트워크의 잠재력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

그러나 모두가 경험적으로 느끼듯, 네트워크 내에서 개인의 영향력은 같지 않다. 영향력, 즉 파급력은 단지 몇 명과 연결됐느냐가 아니라 네트워크에서 얼마나 중심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황금기를 이끈 메디치 가문이 이를 잘 보여준다. 당시 피렌체 주요 귀족 가문의 네트워크를 분석해 보면, 메디치 가문은 다른 경쟁자들과 달리 방사형 네트워크의 중심에 놓여 있었다. 메디치 가문의 동맹 가문들은 서로 직접 연결되지 않았고, 오직 메디치가를 통해서만 연결됐다. 메디치 가문이 빠지면 전체 네트워크가 붕괴하는 구조다. 메디치 가문의 전성기를 열어젖힌 코시모가 혼인과 은행업을 통해 주요 가문을 동맹으로 끌어들여 아주 높은 ‘매개 중심성’을 확보한 결과다.

인간은 점점 더 연결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극명하게 분열되고 있다. 성, 인종, 종교, 나이, 직업, 학력, 출신지 등 다양한 특징을 중심으로 자신과 비슷한 사람과 교류하기를 원하는 ‘동종 선호’ 성향 때문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흑인과 백인이 뒤섞인 미국 고교에서 같은 인종의 학생들이 친구 관계일 가능성은 서로 다른 인종일 때보다 15배로 높다. 끼리끼리 모이는 이런 경향은 인터넷과 SNS의 알고리듬을 통해 더욱 증폭된다.

네트워크 분석이 유용한 이유는 이런 패턴들이 인간의 능력과 견해, 기회, 행동, 성취 등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준다는 데 있다. 네트워크가 단지 네트워크로 끝나는 게 아니라 각종 사회 현상의 원인을 파악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답을 찾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가령 동종 선호에 따른 네트워크 분열은 계층 간 유동성을 막는 결과로 이어진다. 어떤 인적 네트워크에 끼느냐에 따라 ‘사회적 자본’, 즉 교육과 취업 등에서 정보와 기회에 차이가 발생한다. 이런 차이는 개인의 계층 이동을 제약하고, 결과적으로 불평등을 강화한다. 능력주의 원칙에 따라 공정한 룰을 만든다고 불평등이 해소되는 게 아닌 셈이다.

1990년대 미국 임대주택 거주자 대상 실험 결과는 단지 복지정책만으로는 계층 간 비유동성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거주자를 두 부류로 나눠 한쪽에는 어디서나 사용 가능한 바우처를 지급하고, 다른 한쪽에는 주변 이웃이 빈곤하지 않은 지역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바우처를 지급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된 뒤의 상황을 추적해 보니, 후자의 대학 진학률이 전자에 비해 16% 높고 생애소득은 30만 달러 많았다. 바우처를 쉽게 사용하기 위해 좀 무리해서 부유한 지역으로 이사한 게 이런 차이를 만든 것이다. 한국의 ‘강남 러시’ 현상을 떠올리게 한다.

네트워크의 분열과 동종 선호 현상은 정치적으로는 양극화와 극한 대결의 원인이 된다.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 속에서 듣기 좋은 얘기만 듣는 ‘메아리방(반향실)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네트워크는 가짜뉴스에도 취약하다. 이런 한계를 넘어 ‘집단 지성’ 효과를 누리려면 연결성을 높이고, 연결 대상을 다양화해야 한다. 기술 발달 등으로 연결성이 강화됨에 따라 네트워크는 인간에게 더 큰 기회이자 더 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저자가 제시하는 다양한 사례는 네트워크의 순기능을 살리는 출발점이 과학적 분석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480쪽, 1만9800원.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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