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 이성윤 소환 불응..'검사 범죄 공수처 이첩' 믿고 버티나

양은경 기자 2021. 2. 2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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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13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열린 취임식에 입장하고 있다./김지호 기자

김학의 전 차관의 불법출금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수원지검 수사팀이 수차례 소환 불응 중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한 강제수사 돌입을 염두에 두면서 ‘검사 범죄’는 공수처에 이첩하도록 한 공수법 조항에 대한 법리 검토를 하고 있는 것으로 26일 알려졌다.

이 지검장은 현재 ‘수사중단 외압’ 혐의로 피의자로 입건돼 세번째 소환 요구를 받은 상태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이 지검장처럼 현직 검사 사건의 경우, 검찰이 공수처로 이첩하도록 돼 있지만 문제는 공수처가 빨라도 4월에야 조직을 갖춰 어떤 사건이든 그때까지 수사할 형편이 안 된다는 점이다. 김 처장은 ‘공수처 1호 사건’ 수사를 4월에 착수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 때문에 수원지검 수사팀은 계속 수사를 진행해 왔고 광범위한 조사를 통해 관련자들의 혐의를 뒷받침하는 진술과 정황을 확보했다고 한다.

◇조사받은 일부 검사 “이 사건은 공수처 관할” 주장

공수처법 25조 2항은 ‘다른 수사기관이 검사의 고위공직자범죄 혐의를 발견한 경우 그 수사기관의 장은 사건을 수사처에 이첩해야 한다’고 돼 있다. 이 지검장은 대검 반부패·강력부 부장이던 2019년 6월 대검 진상조사단 소속 이규원 검사의 출금서류 조작 의혹을 수사하려던 수원지검 안양지청에 수사중단 외압을 가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지검장의 ‘직권남용’ 혐의는 이 법이 정한 ‘고위공직자범죄’에 들어가기 때문에 공수처 이첩 대상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 지검장은 지난 17일 입장문을 통해 “수사중단 외압을 가했다는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검찰 안팎에서는 “이 지검장이 해당 조항에 기대 출석을 거부하면서 버티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이 지검장은 수사 주체가 검찰이 아니라 공수처라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검장 뿐만 아니라 이미 ‘수사 외압’으로 조사를 받은 일부 검사는 주변에 “이 사건은 공수처 관할”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한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 위원 신분으로 당시 김 전 차관 출금 논의에 관여했던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지난달 22일 페이스북에 “이 사건은 검사에 대한 수사로 공수처로 이첩해야 한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검사도 안 뽑은 공수처, 이첩하면 처장·차장이 수사해야

문제는 공수처가 사건을 이첩받더라도 처리할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다. 공수처는 아직 검사 선발도 못했다. 부장검사 4명, 검사 19명을 뽑는데 22일 서류전형을 마치고 3월중 면접을 진행할 예정이다. 수사관이나 사무보조 인력도 선발 전이다.

현재 공수처 인력은 처장과 차장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법조인은 “‘김학의 불법출금 사건'이 이첩되면 헌재 연구관 출신인 김진욱 처장과 판사 출신 변호사인 여운국 차장이 수사를 해야 할 상황이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결국 빨라도 4월까지는 사건을 묵힐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김학의 불법출금 사건’ 말고 다른 사건이어도 마찬가지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이 때문에 공수처 조직이 갖춰지기 전에는 해석상25조 2항을 적용할 수 없다는 견해도 만만찮다. 또 ‘혐의를 발견한 경우’ 의 의미에 대해서도 인지 시점, 기소 시점 등으로 해석이 갈리기 때문에 검사 범죄라고 무조건 이첩할 수는 없다는 견해도 있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지난 8일 대검찰청을 찾아 윤석열 검찰총장을 면담하면서 이런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김 처장은 면담 전 기자들에게 “국민의 기본권 보호와 인권 친화적 수사를 위해 검찰과 선의의 경쟁을 할 것”이라며 “앞으로 여러 채널로 (검찰과)의사소통을 해 나가겠다”고 했다. 면담 후 기자들과 만나 “3월 말, 4월 초는 돼야 (공수처) 인선이 끝날 것 같아서 (이첩 대상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안 했다”고 밝혔다.그에 따라 검찰 안팎에서는 월성 원전이나 김학의 전 차관 불법 출국금지 사건 등 현재 검찰이 수사중인 사건은 검찰이 마무리짓게 될 것이란 관측이 나왔었다.

◇ 수사 가로막는 이첩 조항, 법조계 “협의 내용 문서로 남겨야”

대검과 공수처 간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된 사안이지만 수사팀은 왜 ‘공수처법 25조 2항’을 다시 의식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현재 수사팀은 이 지검장이 거듭되는 소환 요구에도 불응하고 있기 때문에 엄정한 법 집행 차원에서 당연히 체포영장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걸로 안다” 며 “그런데 만에 하나 법원이 ‘관할 위반’이란 이유로 체포영장을 기각할 경우를 의식해 그 문제를 먼저 명확히 매듭짓고 싶을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공수처에 해당 사건을 이첩하고 다시 돌려 받은 절차를 밟아 논란의 소지를 없애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공수처법 24조 3항은 ‘처장은 피의자와 피해자, 사건의 규모와 내용 등에 비춰 다른 수사기관이 수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될 때는 해당 수사기관에 사건을 이첩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물론, ‘김학의 불법출금 사건’도 이런 처리 방식에 따를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공수처가 사건을 되돌려 보낸다는 보장도 없고 언제 되돌려 보낼지도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공수처가 사건을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표시하는 것도 해결방법으로 제시된다. 이완규 변호사는 “수사검사도 뽑기 전이어서 사실상 공수처가 구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김 전 차관 사건의 경우 법 조문에 따라 이송하기 부적절하다”며 “공수처에서 여러 사정을 고려해 이송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문서 등으로 명확히 표시하면 이첩했다 돌려받지 않고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그동안 수원지검 수사팀은 ‘불법 출금’과 관련해 출입국 공무원은 물론 핵심 피의자인 이규원 검사에 대해 네 차례,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본부장에 대해 세 차례 조사를 마쳤다. ‘수사 외압’ 부분에 대해선 외압 피해자인 안양지청 관계자들을 비롯해 당시 반부패부 관계자, 법무부 검찰국장 등을 조사했고 이성윤 지검장이 조사가 남은 상태다. 이후 수사는 청와대 관계자 등 더 윗선으로 향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공수처가 이 사건을 직접 처리하겠다고 나설 경우 수사는 꺾일 수밖에 없다. 한 검찰 관계자는 “사건을 이첩받아도 조직이 정비되기까지 몇 달은 그냥 묵힐 수밖에 없다”며 “고위 공직자들이 대거 연루된 사건의 특성상 법무부 출입국 공무원이나 외압 피해자인 안양지청 관계자 등에 대한 회유·협박, 피의자들끼리 말맞추기 등이 이뤄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했다.

◇'검사 수사' 공수처가 친여(親與)검사 방탄막으로

이 문제를 불러온 공수처법 25조 2항은 검사 범죄를 엄정하게 수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검찰이 검사 범죄를 수사할 경우 ‘제식구 감싸기식’수사를 막기 위해 의무적으로 다른 기관인 공수처에 이첩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김학의 불법출금’ 사건에서는 공수처가 거꾸로 친여(親與)검사들의 방탄막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고위 법관은 “고위공직자 수사를 독립적으로 하라고 만들어 놓은 공수처가 고위공직자 비리에 대해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검찰 수사를 막는 카드로 쓰이는 기현상이 나타난 것”이라고 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피의 당사자인 검사가 검찰청 출석을 미루면서 자신의 범죄 혐의를 무마하기 위한 수단으로 공수처법 조항을 활용하려 한다면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그는 “검찰 고위직 수사 과정에서 공수처가 검사의 범죄를 덮을 수 있는 기관이라는 오해를 받게 하는 것은 현 정부의 검찰개혁 취지를 무색하게 만든다”고 했다.

이완규 변호사는 “공수처법의 ‘이첩’ 조항이 고위층 피의자의 방패막이가 될 것은 일찍이 예상돼 왔다”며 “구체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이첩을 의무화함으로써 결국 정권 입장에서 ‘내편 검찰’을 하나 더 만들어 놓은 셈”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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