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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5개월·9개월 두 자녀 살해, 징역 1년6개월→23년..판결문 뜯어보니

박지영 기자 입력 2021. 02. 26. 14:34 수정 2021. 02. 26.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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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황 씨는 생후 5개월 된 둘째 아이가 시끄럽게 울자 약 4.3kg의 이불로 아이의 전신을 덮는다. 3시간가량 방치된 아이는 그 속에서 사망한다.

#3년 뒤, 태어난 지 9개월 된 셋째 아이가 또 시끄럽게 울자 이번에는 황 씨가 아이 목젖 윗부분을 10~20초간 눌러 울음을 그치게 한다. 2시간가량 방치된 아이는 그사이 사망한다.

2020년 2월, 황 모 씨는 두 아이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검찰은 '살인죄'를 적용했습니다. 하지만 6개월 뒤, 1심 재판부가 그에게 내린 처벌은 징역 1년 6개월에 불과했습니다. 아동학대 등의 혐의는 인정됐지만 '살인'은 '무죄'가 됐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사체를 숨기고, 아이의 사망 후에도 양육수당을 타는 등 재판부는 "엄벌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두 아이의 사망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생후 5개월 4.3kg 이불 덮어놓고 "사망할 줄 몰랐다"

판결 내용을 설명하기에 앞서 '미필적 고의'에 대해 짚고 가겠습니다. 미필적 고의란 자신의 행위로 범죄가 발생할 수 있단 걸 알면서도 이를 묵인하는 내심을 뜻합니다. 재판 과정에서도 황 씨의 미필적 고의를 입증하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황 씨가 아이의 사망 가능성을 알 수 있었냐는 것이지요.

1심 재판부는 "그렇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둘째 아이가 사망하기 전에도 황 씨는 아이가 시끄럽게 울면 이불을 아이의 머리끝까지 덮어두고, 울음이 그치면 치워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사건 발생 당일 만큼은 이불을 치우지 않았습니다. 황 씨는 "나도 모르게 잠들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재판부는 이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셋째 아이의 사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목젖을 눌린 아이가 울음을 그치자 황 씨는 그대로 방을 빠져나갔습니다. 2시간이 지나 다시 들어왔을 때 아이는 이미 사망해있었습니다. 황 씨는 아이 울음소리가 한참 들리지 않았음에도 "아이가 잠들었다고 생각했다"고 주장했습니다.

1심은 이런 이유로 황 씨에게 "아이의 사망을 용인하려는 의사", 즉 미필적 고의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자녀 3명 중 첫돌도 지나지 않은 2명을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으나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이른바 '원주 3남매 사건'의 항소심 선고 공판이 열린 3일 강원 춘천지법 앞에서 한 시민이 엄벌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스스로 말하니까 마음이 가볍다"

하지만 지난 2월 나온 항소심 결과는 예상을 뒤집었습니다. 황 씨는 살인 혐의 '유죄', 징역 23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고의성을 밝혀내는 데는 검찰에서 한 진술이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피해자가 어린 영아니까 당연히 이불을 덮고 3시간 이상 잠을 자면 사망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내가 목을 조르자 아이는 팔과 다리를 버둥거렸다. 그렇게 하다 보면 아이가 숨이 막혀 사망할 수도 있다고 알고는 있었는데 화가 너무 나서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했다"
-황 씨 검찰 진술 中-

1심 재판부도 똑같은 내용의 진술을 검토했습니다. 하지만 신빙성이 낮다고 보았습니다. 황 씨가 진술을 중간에 번복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항소심은 자백에 가까운 이 진술들을 결정적으로 보았습니다.

"스스로 솔직히 말하니까 마음이 정말 가볍다"
-황 씨 검찰 진술 中-

때문에 아이들의 사망에 대한 판단도 달라졌습니다. 1심과 달리 황 씨에게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아이 울음소리가 작아지고도 이불을 치워주지 않고, 구호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건 사망할 수 있다는 걸 알고도 "방치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황 씨에게 충동조절 장애가 있다는 점이 고려됐지만, 유죄가 선고되는 데는 문제 없었습니다.

◎'아동학대치사'와 '살인죄'

그동안 아동학대 범죄에 있어 '아동학대치사'냐, '살인죄'냐는 쟁점이 되어 왔습니다. 아동학대치사죄와 살인죄는 법정형은 비슷하지만, 양형기준이 다릅니다. 아동학대치사죄의 기본 형량은 4~7년, 살인죄는 기본 10~16년입니다. 때문에 아동학대치사죄로 처벌하게 되면 형량이 너무 낮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습니다.

이번 판결은 아동학대 범죄에 있어 법원과 검찰이 적극적으로 살인죄를 적용했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검찰은 경찰이 아동학대치사죄로 송치한 사건을 다시 수사해 살인죄로 기소했고, 항소심에서 살인 혐의가 인정된 후에도 법원에 '친권 상실'까지 청구했습니다. 수사 관계자는 "가해자의 행동에 가장 부합하는 죄명은 '살인죄'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처벌이 능사는 아닙니다. 하지만 제도와 환경을 개선하기 전, 중한 죄는 중하게 처벌할 수 있는 기준이 먼저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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