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정의는 왜 지연되고 있는가

2021. 2. 26.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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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재난조사, 가보지 않은 길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humanrights@sarangbang.or.kr)]
"내가 09:05경에 퇴선 명령을 했으니 기록해라." 하지 않은 지시를 했다고 문서를 조작한 것은 유죄라고 했다. 그런데 조작하여 숨기려던 '업무상 과실', 즉 퇴선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은 죄가 아니라고 했다. 2월 15일 세월호 참사 당시 해경 지휘부가 받은 1심 판결은 모순적으로 들린다.

'현장'만 문제라는 해경 지휘부 1심 판결

세월호 참사 이후 해경은 자신의 잘못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국정조사와 감사원 감사를 앞두고 교신 녹취록의 일부를 삭제하고 함정일지를 조작했다. 승객들이 스스로 탈출할 수 있는 경사각이 얼마인지 조선사에 묻기도 했다. 구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주장할 근거만 찾은 것이다. 참담한 결과를 두고 반성도 평가도 없었다.

검경합동수사본부도 거들었다. 현장지휘관이었던 123정장을 제외한 누구도 수사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다행히 해경 123정장에 대한 판결은 "승객 구조 소홀에 대한 공동책임"이 해경 지휘부에도 있음을 짚었다. 2019년 11월 출범한 검찰 '세월호 참사 특별 수사단'이 뒤늦게 해경 지휘부를 수사하고 기소했다. 그러나 오래 기다린 판결은 오히려 면죄부를 주었다.

재난에서 '꼬리 자르기' 처벌은 반복되어온 문제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참사 당일 9시 10분경 해경의 각급 구조본부와 상황실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현장 상황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대응의 기본이다. 해경 123정장은 세월호와 교신을 유지하지 못한 죄로, 진도 VTS 센터장은 세월호와 교신한 정보를 제대로 전파하지 않은 죄로, 각각 형사처벌과 정직처분을 받았다. 그런데 해경 지휘부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것은 오히려 무죄의 근거가 되었다. 상황을 몰라서 대응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재난 현장에서 교신 확보에만 골몰하는 구조대원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와 같은 결론은 매우 부적절하다. 구조본부는 상황 파악을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인력과 자원이 훨씬 많았고 다양한 경로로 교신을 확보할 수도 있었다. 더 많은 권한을 가진 단위에 더 많은 책임을 물을 때, 더 나은 결과를 기약할 수 있다.

해경 지휘부는 구조적 책임도 모면했다. 재판부는 해경이 구조업무를 능숙하게 처리하지 못한 이유로 교육, 경험, 장비 등의 부족을 들었으나 그에 대한 책임을 조직의 간부들에게 묻지 않았다. 세월호에 탑승하지 않았던 또 다른 선장이 승무원들의 안전 교육과 훈련을 소홀히 한 죄로 처벌받았던 것과도 대조된다.

책임의 배분과 정의

재난은 불운이나 불행으로 설명되어왔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는 재난을 부정의의 문제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피해자의 권리로서, 사회가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으로서 포괄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사회의 과제가 되었다. 재난의 구조적 원인까지 찾는 조사를 통해 종합적 결론을 내리고 권한의 크기를 고려하여 책임을 합당하게 따지는 일이 필요하다. 이번 판결은 정의에 대한 기대를 다시금 좌절시켰다. 그런데 정의가 지연되는 이유가 판결 때문만은 아니다.

재난의 진상 규명이 시작부터 '성역'에 가로막힐 때 책임 배분은 어려워진다.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정부는 성역을 만들어왔다. 청와대 홍보수석(이정현)은 방송사에 해경 비판을 자제하라고 했고 법무부장관(황교안)과 청와대 민정비서관(우병우)은 해경 123정장의 구속영장에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빼라고 수사에 개입했다. 정부는 대신 선박과 선사, 선장과 선원에 관심을 집중시켰고 검찰은 400명 가까이 입건하여 광범위한 수사와 기소를 진행했다. '선체의 침몰', '선장과 선원의 도주'가 세월호 참사 원인의 전부인 것처럼 눈길을 끄는 동안 해경은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뒤늦게 해경 지휘부가 심판대에 서자 앞서 밝혀진 사실들이 죄를 덜어주었다. 퇴선을 지시했더라도 선장과 선원이 거짓말하거나 묵살했을 가능성이 높다거나, 선체의 수밀문(바닷물이 유입되었을 때 침수를 제한하기 위한 장치)이 열려있어 침수 속도가 빨랐다는 점을 재판부는 무죄의 근거로 들었다.

재난의 여러 원인이 사건에 미친 영향과 비중을 평가하려면 모든 원인을 포괄적으로 조사하는 것부터 보장되어야 한다. 검찰이나 경찰이 특정한 원인에 주목하며 수사 범위를 정하는 순간 정의는 훼손되기 시작한다. 밝혀진 여러 사실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핑계로만 활용될 때 누가 어떤 처벌을 받든 충분하지 않다는 감각만 남기게 된다.

검찰 수사는 재난 조사의 일부일 뿐

정의가 지연되는 이유로 하나 더 짚어져야 한다. 재난의 포괄적 조사에서 검찰 수사는 일부일 뿐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재난 조사는 검찰 수사와 거의 동의어였다. 사회적 공분이 높은 사건의 경우 검경합동수사본부가 구성되고 기소와 재판이 종결의 절차가 되었다. 무혐의 처분이나 무죄 판결은 '잘못 없음'으로 해석되고, 처벌을 하더라도 반성과 사과가 없어 정의에 기여하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처벌의 범위와 강도가 정의의 전부로 여겨져왔다.

현행법의 한계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검경의 수사는 재난의 진실을 밝히는 데 충분하지 않다. 법적 책임을 중심으로 재난에 접근하면 행위자의 의도나 명백한 과실을 찾아내는 것이 재난 조사의 목표가 된다. 조사의 과정도 법이 주도하게 된다. 그러나 재난은 단일한 원인으로부터 뻗어가는 인과관계로만 설명되기 어려운 사건이다. 재난의 직접 원인이 되는 기술적·인적 요인뿐만 아니라 그것에 영향을 미친 조직적·제도적 원인까지 밝힐 때 재난을 설명할 수 있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몇몇 개인이 악의를 품거나 과실을 범하더라도, 조직과 사회가 실패하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종합적인 결론이 내려질 때 진실과 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

세월호 참사에서 해경이 구조에 실패했다는 결과는 누구나 안다. 그러나 무엇이 문제였는지 해석은 분분하다. '의도적으로 구조를 방기했다'는 평가부터 '최선을 다했으나 능력이 부족했다'는 평가까지 혼재된 채 시간이 흐르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재난 조사를 위한 특별 기구가 처음으로 꾸려졌다. 그러나 특별조사위원회는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것 이상의 활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조사의 결론 내리는 일을 검찰과 사법부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가보지 않은 길, 끝까지 함께

특별조사위원회는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들부터 종합하여 사건을 해석하고 책임을 배분하며 변화의 방향을 찾기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개인의 역량, 조직의 쇄신, 제도의 개선 등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도 구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 속에서 법의 역할을 발견할 때 개인에게 물어야 할 법적 책임도 분명해지고 법의 개선 방향도 보일 것이다. 조사의 결론에 이르는 과정에서 피해자와 시민의 참여 방안을 마련할 필요도 있다.

세월호 참사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을 기억한다. 재난 조사에 관해서도 그래야 한다. 진실과 정의의 실현을 법적 책임을 묻는 것에 한정해서는 안 된다. 검찰의 수사와 법원의 판결이 재난 조사를 종결해온 역사와 단절하고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을지 아직은 막연하다. 그러나 앞선 역사에 갇혀서 안 된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재난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지, 진실을 어떻게 구성하고 정의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우리 모두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겠다는 약속은 이 길을 끝까지 함께 가겠다는 다짐이어야 한다.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으로 읽는 세상'은 <프레시안>과 <비마이너>에 공동게재됩니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humanrights@sarangbang.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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