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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멋지다'는 서점 주인인데 죽겠습니다

김예지 입력 2021. 02. 26. 19:06 수정 2021. 03. 25.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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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줍일기] 스코틀랜드 중고서점 '더 북숍' 주인이 쓴 책 '서점 일기'

'신간'이라는 이름으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책더미 속에서 사심을 담아 알리고 싶은 책, 그냥 지나치긴 아까운 책을 오마이뉴스 라이프플러스 에디터가 골라 소개합니다. <기자말>

[김예지 기자]

어렸을 때 아주 잠깐, 사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렇게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었지만, 고요히 책장을 넘기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유유히 흐르는 도서관에 있는 걸 꽤 좋아했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을 마주하며 끊임없이 대화하지 않아도 되고, 책에 파묻혀 하루를 보내도 무방한 일. 이런 게 직업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이건 무척이나 순진한 착각이었다. 사서를 한다고 해서 여유롭게 앉아 책만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카페를 한다고 해서 늘 고소한 커피의 내음을 천천히 음미하며 시간을 보낼 여유가 생기는 게 아닌 것처럼. 그게 어떤 종류이든, 결국 일이라는 건 온갖 사람들을 상대하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일에 대한 이야기는 늘 애정과 증오가 뒤섞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혹, 소설 <1984>의 저자로 잘 알려진 조지 오웰이 한때 서점 직원으로 일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오웰은 1934년부터 약 2년간, <엽란을 날려라>를 쓰며 '북 러버스 코너'라는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오웰은 이후 쓴 수필 <서점의 추억들>에서 온갖 사람을 만나며 일했던 경험담을 반추하며 이렇게 자문자답한다.
 
나는 과연 서점 주인을 '업'으로 삼고 싶은가? 내가 일했던 서점의 주인은 내게 친절히 대해 주었고 서점에서 행복했던 날도 있었지만, 대체로 아니올시다.  
 
 숀 비텔 <서점 일기>
ⓒ 여름 언덕
 
마땅한 직업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서른한 살의 혈기왕성한 스코틀랜드 청년이 서점 직원으로서의 고단함과 일의 지난함에 대해 다룬 오웰의 이 수필을 먼저 읽어봤더라면, 그의 운명은 좀 달라졌을까. 
안타까운 일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그는 당시 <서점의 추억들>을 읽지 않은 상태였고, 덜컥 고향인 스코틀랜드 위그타운에 있는 한 중고서점을 인수한다.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서점이란 무엇인가' 매섭게 깨달아간 그는 뒤늦게 오웰의 수필이 날카롭고 정확한 현실을 담고 있다고 평하며 이렇게 말한다. 
 
... 사실 서점 주인의 일상은 그와는(사람들이 목가적일 것이라고 추측하는) 일상과는 전혀 딴판이다. 특히 "우리한테 오는 손님 중 대다수는 어느 곳을 가든 민폐가 될 사람들이지만, 서점에서는 더 특별한 기회를 노리는 부류"라는 오웰의 표현은 현실과 가장 딱 들어맞는 부분이다. (<서점 일기> p.8) 

자영업의 '매운맛'을 보여드립니다

책 <서점 일기>는 저자 숀 비텔이 자신의 중고서점 '더 북숍'을 운영하며 쓴 1년여간의 일기를 담은 책이다. '더 북숍'은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큰 중고서점이고, 영국 언론 <가디언>이 뽑은 '세상에서 가장 독특하고 멋진 서점' 3위에 오를 만큼 유명세가 있는 곳이다. 

하지만 <서점 일기> 속 숀 비텔의 하루는 '세상에서 가장 독특하고 멋진 서점'의 오너라는 수식과 어울리지 않게 피곤하고, 짜증 나는 일들로 가득 차 있다. <서점 일기>라는 서정적인 제목에서 잘 상상하기 힘든, 자영업자의 '매운맛' 현실이 가득 담겨있는 책이라고나 할까. "여태껏 읽어 본 중 가장 분노로 가득 차 있지만 가장 즐거운 서점 회고록"(뉴욕타임즈)이라는 평가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럼, 그를 분노케 하는 원인이 대체 뭐냐고? 대부분은 '사람'이다. 이를테면, 이런 사람들 말이다. 
 
3주 전쯤 아마존에서 주문받아 배송한 <오리엔트 특급열차 : 사적인 여행기>라는 책이 다음과 같은 쪽지와 함께 되돌아왔다. "유감스럽게도 기대했던 책이 아닙니다. 삽화가 좀 더 많은 책을 찾았거든요. 교환이나 환불 바랍니다." 혹시 이 손님은 우리 서점을 도서관이라고 착각하고 책을 읽은 다음 반납한 건 아닌가 싶다. (p.58)

서점에 쌓아놓은 책더미를 이유없이 무너뜨리고 나가는 손님, '책을 도둑 맞아 본 적이 있냐'며 의도를 알 수 없는 질문을 던지는 손님, 서점에 들어와 '사실 책엔 관심이 없다'며 자신이 하는 원자력 이야기를 들어보라는 손님, 그리고 업무에 필요한 아마존 배송 시스템을 익히길 극구 거부하고 지독하게 말을 안 들으며, 지각을 밥 먹듯 하는 알바생까지. 

때론 신랄하고 냉소적인 그의 인물평들이 '너무하다' 싶다가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서서히 저자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같이 '저 인간'들을 욕하고 싶은 마음이라기보단, 소중한 내 일터를 마구 훼방 놓는 사람들을 마주하게 될 거란 걸 알면서도 매일 서점의 문을 여는 그 고단하고 짠한 마음을 약간은 알 것만 같아서다. 자영업을 해본 적은 없지만, 속상한 마음을 추스를 새도 없이 다시 일터에 나간다는 게 때론 참을 수 없이 버겁고, 힘들 거라는 건 안다. 

또, 21세기에 중고서점을 한다는 건 매순간 '사회의 변화'와 싸우는 일이기도 하다. 숀 비텔은 서점에 찾아온 다양한 손님들을 응대하고, 온갖 잡무와 행정처리를 하면서 동시에 '아마존'과 같은 온라인 판매 사이트나 '트립어드바이저' 등에 올라온 서점 리뷰까지 관리해야 한다. 

온라인을 매개로 만나는 손님들은 때론 근거 없는 악평을 남기기도 하고, 자신의 생각보다 책 배송이 늦다며 다짜고짜 화를 내기도 한다. 또, 굳이 '더 북숍'에 찾아와 설렁설렁 책을 구경하며 '킨들(아마존의 E북 리더기)로 읽는 게 더 좋다'며 떠드는 손님들도 상대해야 한다. 이런 극한 직업이 따로 없다.

하지만 그는 결코 책방을 '포기'하지 않는다. 분노로 가득 찬 문장을 읽다가도 웃게 되는 건 중간중간 책과 책을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의 애정이 동시에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는 책의 서두에서 '고객들이 속사포같이 쏟아내는 의미 없는 질문, 서점의 위태로운 경제 사정, 점원들과 끝도 없이 벌이는 사소한 언쟁, 진이 빠질 만큼 집요하게 책값을 깎으려 드는 손님'들이 지금의 괴팍한 자신을 만들었다 불평한다. 그러면서도 바로 이렇게 덧붙인다. "그럼 이런 일상을 조금이라도 바꾸고 싶으냐고? 아니올시다."

그래도, 서점 하길 잘했다
 
 책
ⓒ pixabay
 
오늘 온 손님 중 한 명은 나이 든 남자였는데, 뭔가 굉장히 신난 표정으로 책 한 권을 움켜쥐고 계산대로 왔다. "이 책 얼마면 되겠소?" 그건 라틴어 학교 교재였는데, 그는 황급히 책을 펼쳐 면지에 만년필로 적힌 이름을 가리키며 "이게 우리 아버지가 쓰던 책이오"라고 말했다. 가격은 4.50파운드였는데 나는 그 손님에게 그냥 가져가도 좋다고 말했다. 그 책이 어떻게 서점에 들어오게 됐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손님이 그 책을 발견하고는 너무 기뻐해서 그냥 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p.378)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중고 서점의 주인으로 사는 고단한 일상을 바꾸고 싶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이런 순간들에 있다. 지극히 냉소적이고, 스스로를 거의 '인간 혐오자'라고 생각하는 저자가 가끔 따스한 마음을 내보일 때가 있는데, 자신처럼 책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이들을 발견할 때다. 숀 비텔은 드물지만 진귀한 이런 경험들이 "애초에 왜 서점 주인이 되고 싶었는지,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서점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기분 좋게 상기 시켜 준다"고 말한다.  

<서점 일기>는 서점 주인의 낭만적인 일상을 그린 책도 아니고, 그렇다고 서점 운영을 위해 필요한 현실적이고도 유용한 팁을 전달하는 책도 아니다. 그보다는 하루에도 열 번씩 감정이 오락가락하는, 자영업자의 속내를 툭 털어놓은 솔직한 고백록이나 대나무숲에 가깝다. 아마 서점 운영을 꿈꾸는 이들이 잘못 펼쳐 들었다간, 괜히 속만 시끄러워지는 책일지도 모른다. 순수한 꿈을 해치고 싶지 않다면, 안 읽는 게 좋겠다. 

그렇지만 한 번쯤은 중고서점을 가본 사람들, 혹은 가보려는 사람들에겐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숀 비텔과 같은 이들을 그냥 '지친 서점 주인'이 아니라, 책을 너무 사랑해 평생 책더미에 파묻혀 온갖 사람들을 만나며 살기로 결심한, 용감한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그 귀중한 용기를 다 소진하기 전에, '왜 서점 주인이 되고 싶었는지' 떠올리게 해주는 손님이 되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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