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에 덫 놓은 갭투기..그냥 보고만 있을 건가요?

김윤주 입력 2021. 2. 26. 19:46 수정 2021. 2. 27.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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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친절한 기자들][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 전봇대에 붙어 있는 갭투자 홍보물.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지난해 4월 이사 갈 전셋집을 알아보다 마음에 쏙 드는 신축 빌라를 발견했습니다. 부동산에선 “아직 분양이 끝나지 않은 건물”이라며 “우선 지분을 공유하고 있는 건축주 3명과 계약하면, 새 임대인이 세입자 전세금에 자기 돈을 합쳐 건축주에게서 집을 살 예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미 통용되는 “흔한” 거래 방식이라고 했지만 꺼림칙했습니다. 실제 계약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은 이유였습니다. 그 빌라가 ‘갭투기 매물’이었다는 걸 최근에야 알게 됐습니다. 이런 유의 설명을 듣고 집을 계약했다가 사실상 전 재산인 전세금을 잃을 위기에 놓인 사람들의 모임도 있더군요. 그렇게 피해를 입었다는 회원만 수백명에 이르렀습니다.

안녕하세요. 갭투기 피해자들을 취재하고 보도한 김윤주입니다. 부동산의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이 같거나 오히려 전세가격이 더 비싼 주택을 대량 매입해 세입자에게 피해를 주고 금전적 이득을 보는 거래를 ‘갭투기’(또는 갭투자 기획파산)라고 합니다. 매매가와 전세가 차이만큼의 투자금액으로 주택을 매수해 시세차익을 노리는 일반적인 갭투자와 성격이 다릅니다. 유사한 거래 사례가 뜸해 시세 파악이 어려운 신축 빌라 등을 도구로 삼아 임대인, 부동산 중개업자, 건축주, 분양대행사 등이 공모해 세입자를 속이는 겁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시세 1억4천만원인 빌라 한칸을 전세 1억6천만원으로 소개합니다. 계약이 성사되면 매매가격과의 차익 2천만원은 임대인과 중개업자의 주머니로 들어갑니다. 건축주(신축인 경우)나 기존 임대인(신축이 아닌 경우)은 집을 임대사업자에게 팔게 되는 거고, 이 임대사업자는 자기 돈 한푼 들이지 않고 수백채를 가질 수 있습니다. 세입자를 제외한 모두가 이득입니다.

주택 591채를 가진 임대사업자 진아무개씨, 586채를 가진 김아무개씨 등이 이런 방식으로 갭투기를 했습니다. 중개인은 단기간에 폐업하는 ‘기획부동산’인 경우가 많습니다. 애초 보증금을 돌려줄 여력도, 생각도 없었던 임대인은 계약 만기가 다가오면 세입자의 연락을 피합니다. 피해는 고스란히 전세금을 돌려받을 수 없는 세입자의 몫으로 돌아옵니다.

<한겨레>가 ‘갭투기대응시민모임’을 통해 확보한 서울·수도권 갭투기 피해자 108명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피해자 대부분은 20~30대 사회초년생과 신혼부부였고 피해금액은 1억~3억원대였습니다. 신혼 첫 보금자리, 상경해 직장 근처에서 찾은 첫 자취방, 월세만 살다 열심히 돈을 모아 마련한 첫 전셋집은 한순간에 ‘깡통’이 됐습니다. 피해자들은 “설레는 공간이었는데, 이젠 집에 들어서는 순간 한숨부터 나온다”고 말합니다.

피해자 대부분(81.5%)은 금융대출을 받아 전세보증금을 마련했습니다. 대출금을 반환하지 못해 신용불량 위기(17.5%)까지 내몰리는 이유입니다. 응답자의 82.4%는 전세보증금반환보증에 가입하지 않아 뾰족한 대책을 찾지 못했습니다. 결국 법적 대응을 하거나, 울며 겨자 먹기로 집을 매수하는 과정을 밟으며 최소 수백만원의 비용을 추가로 지출합니다. 이렇게 집을 사면 무주택자, 각종 생애 첫 주택 취득 등의 혜택을 포기해야 합니다. 피해자들은 우울증, 가정불화, 주택청약 당첨 뒤 포기 등의 정신적·금전적 피해를 호소했습니다. 임대인은 이 틈을 한번 더 파고듭니다. ‘소송과 경매에 시간과 돈을 쏟느니 집을 사는 게 이득’이라며 피해자들에게 웃돈을 내고 집을 사라고 제안합니다. 더 비싼 전세금을 내고 들어올 세입자를 구해 오면 전세금을 돌려주겠다는 제안을 하기도 합니다. 또 다른 세입자에게 피해를 떠넘기는 ‘폭탄 돌리기’입니다. 피해자들은 잘못된 일인 걸 알면서도 “빨리 돈을 되찾고 이 집에서 나가고 싶다”는 생각에 마음이 흔들린다고 털어놨습니다.

피해자를 속인 갭투기꾼의 당당한 태도는 피해자를 더 힘들게 합니다. 피해자 장아무개(33)씨는 폐업한 공인중개사를 수소문해 찾아갔다가 “나는 리베이트를 160만원밖에 안 받았으니 (리베이트를 더 많이 챙긴) 나의 옛 상사나 임대사업자를 찾아가 따지라”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전세금을 날리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었다는 장씨는 “화가 났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갭투기는 고의성을 입증하기 어려워 사기죄로 형사처벌하기도 쉽지 않다고 합니다. 현행 법·제도에서 갭투기 피해를 미리 막을 방법도 마땅치 않아 언론의 지적이 이어지고 있는데도 피해는 계속됩니다. 전문가들은 매매와 전세 가격 차이가 크지 않은 매물은 피하고 전세보증금반환보증 상품에 가입하는 게 최선이라고 조언합니다. 피해자들은 “부동산 정책과 제도를 책임지는 정부와 국회가 법·제도를 정비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김윤주 사건팀 기자 k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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