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지도자?.. 이발사·구두장이의 합작품일뿐"

양지호 기자 2021. 2. 27.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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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가 되는 법|프랑크 디쾨터 지음|고기탁 옮김|열린책들|496쪽|2만2000원

패색이 짙었던 2차 대전 후반, 독일에서는 종이도 배급을 받아 썼다. 이 시기 예외적으로 매달 약 4t에 달하는 종이를 받는 특혜를 누린 사람이 있었다. 하인리히 호프만, 총통 아돌프 히틀러의 전속 사진가였다. 히틀러는 자신의 사진을 전략 물품으로 간주했다. 독재 체제를 유지하려면 폭력에 기반한 공포보다 ‘개인숭배’(cult of personality)가 효과적이라는 판단이었다.

20세기에 잠시라도 권좌에 올랐던 독재자는 100여명에 이른다. 피비린내 나는 숙청, 교묘한 속임수, 각개격파 같은 전략으로 권력을 장악했다. 하지만 모두가 장기 집권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성공한’ 독재자는 무엇이 달랐을까. 중국 현대사 연구가인 프랑크 디쾨터 홍콩대 인문학 석좌교수는 신간 ‘독재자가 되는 법’에서 강력한 개인숭배가 그 비결이라고 말한다. 무솔리니, 히틀러,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 뒤발리에(아이티), 차우셰스쿠(루마니아), 멩기스투(에티오피아) 등 효과적으로 체제를 유지한 독재자 8명의 특징을 분석한 결과다. “(반대파를 숙청하면) 일시적이나마 권좌를 유지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불가능하다. 독재자들은 개인숭배가 가장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개인숭배의 목적이 단순한 설득이나 세뇌에 있지 않다는 것도 저자의 흥미로운 주장이다. 오히려 자신을 제외한 타인을 모두 믿을 수 없는 ‘거짓말쟁이’로 만들어서 정권 전복 시도를 막는 것이 더 큰 목표다. 지도자에 대한 개인숭배는 우선 국민 개인을 고립시킨다. 서로를 불신하고 감시할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반체제 투쟁보다는 독재자를 향한 충성 경쟁에 매달리게 된다는 주장이다. “모두가 거짓을 말하면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공모자를 찾아서 쿠데타를 일으키기가 더욱 어려워질 터”라는 구절은 조지 오웰의 ’1984′를 연상시킨다.

파시스트들은 이 사진이 1935년 에티오피아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뒤 로마의 베네치아궁 발코니에 선 무솔리니(왼쪽)를 찍은 것이라 선전했지만 실제는 과거 무솔리니 사진과 군중 사진을 짜깁기한 것이다. /열린책들

개인숭배 과정에 대해서도 세 단계로 구분해서 상술한다. 1단계는 언론 장악. 비판하는 목소리를 없애고 자신을 지지하는 매체를 전폭적으로 후원한다. 2단계는 독재자의 ‘영웅신화’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이다. 주로 어용 지식인을 통해 국민을 현혹하는 방법이 쓰였다. 미국 언론인 에드거 스노(Snow)가 ‘중국의 붉은 별’에서 마오쩌둥을 묘사한 구절이 대표적이다. “완성된 한문학자이며 닥치는 대로 읽는 독서광인 동시에 뛰어난 연설가이며 천재에 가까운 군사적, 정치적 전략가.”

지금 보면 낯뜨겁지만 1937년 미국에서 출간됐을 당시에는 한 달 만에 1만부 이상 팔리며 서방에, 곧바로 중국어로 번역돼 역수입되면서 마오를 세계에 알렸다. 물론 스노를 옌안으로 초대한 것도, 신화처럼 각색된 자신의 삶을 몇 달에 걸쳐 들려준 사람도, 스노의 모든 글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수정한 것도 마오였다. 비슷한 일은 북한에서도 벌어졌다.

마지막 단계는 편재(遍在)다. 독재자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무솔리니는 어디에나 존재하며 그는 사방에서 당신을 지켜보며 당신도 도처에서 그를 발견한다”는 말처럼, 이 단계에 이르면 독재자는 일신교의 절대자처럼 추앙받는다. 히틀러, 김일성, 뒤발리에, 멩기스투도 곳곳에 동상, 흉상, 배지, 지폐를 통해 존재를 드러냈다.

‘성공한’ 독재자 8명의 사후 운명은 극명하게 갈렸다. 히틀러, 무솔리니, 스탈린은 사망과 동시에 극성이던 숭배 현상도 자취를 감췄다. 동독 국민은 히틀러 사후 나치 깃발 대신 공산당 기를 들고 소련군을 반겼다. 스탈린의 이름은 장례식이 끝나고 한 달이 지나자 신문에서 이름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예외적인 독재자는 마오쩌둥과 김일성 두 명뿐. 저자는 “마오쩌둥은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등을 통해 당 지도부를 ‘공범’으로 만들었고, 김일성은 후계 세습을 완성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책은 19세기 영국 풍자 소설가 윌리엄 새커리의 풍자를 결론처럼 인용한다. “보다시피 우리가 숭배하는 신은 이발사와 구두장이가 만든다.” ‘짐이 곧 국가’라고 주장했던 절대군주도 가발과 화려한 의복을 벗기면 볼품없이 배가 나온 아저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독재자를 만드는 것도, 그를 숭배하는 것도 결국은 시민이고 지식인이라는 주장이다. 과연 지금 한반도는 여기서 얼마나 다른 것일까.

2011년 ‘마오의 대기근’을 쓰면서 철저한 사료 분석으로 학계 관심을 받았던 저자의 최신작. 다만 전문 분야인 중국 현대사에서 벗어나 20세기 독재자 전반을 다루다 보니 전작만큼의 깊이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점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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