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비·초밥·연어가 떨어졌다..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아무튼, 주말]
'엑시트'와 뷔페
그해 겨울, 주말마다 뷔페에서 접객을 했다. 군 복무 후 복학할 때까지 찾아 했었던 아르바이트 가운데 하나였다. 대학 후배의 부모님이 운영하던 아무개 뷔페는 서울 여의도 한복판 정당 사옥들 사이 어느 건물 5층쯤에 있었다. 홀이 따로 없었기에 결혼 피로연을 뺀 돌이나 환갑, 칠순을 비롯한 각종 생일 잔치 위주로 주말에만 영업했다.
영화 ‘엑시트’를 보니 뷔페 아르바이트의 기억이 떠올랐다. 용남(조정석)의 어머니 현옥(고두심)의 칠순 잔치가 가상의 미래 신도시 소재 연회장 ‘구름정원’에서 열린다. 이래저래 용남에게는 영 불편한 자리다. 취업에 실패해 집에서 허드렛일이나 도우며 누나에게 구박받다 못해 어린 조카에게도 무시당하는 처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구름정원 직원인 산악 동아리 후배 의주(윤아)까지 마주친다. 용남은 대학 시절 의주에게 고백했다 실패해 머쓱한 사이다. 그런 가운데 도심 한복판에서 탱크 로리를 활용한 가스 테러가 벌어지고, 도시는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가스 테러 같은 대참사 없이도 뷔페는 아수라장이다. 내 뷔페의 기억은 원래 나쁘지 않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쯤 경기도 수원 시내 어딘가에 있는 뷔페를 처음 가보았다. 먹성이 너무 좋아 부모님에게 과식을 못 하도록 종종 제지당했던 어린이에게 그곳은 천국이었다.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바닐라·초콜릿·딸기 3가지 맛 아이스크림도 훌륭했지만, 찬물에 동동 떠 있는 버터 조각과 다소곳한 롤빵이 인상에 더 깊이 남았다.
그토록 소중한 뷔페의 기억이 아르바이트 시작과 동시에 산산이 깨져버렸다. 뷔페 손님들은 맹렬했다. 특히 아무개 뷔페의 대표 메뉴 삼인방이던 소갈비찜과 광어초밥, 훈제 연어에 손님들은 열광했다. 자리에 가져다 놓기가 무섭게 동이 나 버리는 바람에 주방에서는 쩔쩔맸다. 단가가 높은 메뉴라면 최대한 늦게 보충해야 이익이 덜 깎이는데, 손님들은 음식이 사라지기가 무섭게 큰 소리로 닦달을 했다. “이봐요, 더 가져오라고!”
결국 버티지 못하고 보충 음식을 내보내면 손님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선취를 위한 각축전을 벌였다. 삼인방 가운데서도 소갈비찜의 인기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다만 질보다 양을 추구하는 뷔페인지라 갈비의 질이 썩 좋지 않아 종종 사달이 나곤 했다. “아니, 갈비가 왜 이렇게 질긴 거요!” 실망한 손님들이 일개 접객원인 나에게 종종 거세게 항의했다. “죄송합니다.” 나의 책임은 아니었지만 갈비가 질길 때의 배신감을 모르지 않는 나는 주방을 대신해 고개를 깊이 숙였다.
영화 내내 용남과 의주의 처지도 비슷하다. 안 그래도 될 일에 고개를 숙인다. 용남은 혼자 멋대로 행동하다 가스를 들이마신 누나를 구하고 산악 동호회에서 쌓은 실력을 바탕으로 건물을 타고 옥상에 오른다. 목숨을 걸고 가족을 구출하지만 패닉에 빠져 울부짖기만 하는 어른들에게 꾸지람이나 들을 뿐이다.
영화는 당연히 허구이건만 사건의 전개를 보고 있노라면 일상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서 고구마 100개를 물 없이 먹은 양 속이 꽉 막힌다. 취업과 독립, 정착의 길은 멀고 좁고 험난하다. 하지만 현실을 모르는 부모 세대로부터 ‘라떼는 이렇게 했는데 왜 너희들은 못 하느냐’며 끝없이 구박을 받는다. 어른들은 ‘개구리 올챙이 적 시절 모른다’는 속담을 잊어버린 걸까? 20~30대에게 필요한 건 ‘라떼’ 타령이 아닌, 따뜻한 격려의 말이나 밥 한 끼 혹은 격려금이다.
아무개 뷔페의 추억이 떠오를 때면 광어회나 훈제 연어를 사다 먹는다. 소갈비찜은 아르바이트하면서 얻은 트라우마 때문에 내키지 않을 때가 많다. 광어야 국민 생선이니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겠고, 훈제 연어는 아무래도 훈제 연어의 본고장 스칸디나비아 기업인 이케아의 ‘세라포르트(SJÖRAPPORT)’가 가성비로 나머지를 압도한다. 맛도 맛이지만 양식관리협의회(ASC) 인증 양식장의 연어만 써 환경 및 해양 생태계 훼손을 최소화했다. 200g 1팩 9900원.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어디든 사무실처럼, 가성비 휴대용 모니터
- 가까운 한국의 미래? 짧아진 근로 시간이 유럽 무너뜨렸다
- 스피커, 휴대폰 무선 충전, 시계, 라디오, 알람 다 되는데 1만원 대
- 족저근막염 걱정 없어, 연세대 정형외과 교수가 개발한 깔창
- 온열과 진동으로 눈 피로 싹, 5만원대 눈 마사지기
- ‘매일 生 블루베리’ 노화에 미치는 효과, 영동 직송 특가 공구
- 3만원으로 수십년 된 집도 최신 아파트 기능, 30억원 대박 아이디어
- 황선홍호, 신태용의 인니에 충격패... 올림픽 10회 연속 진출 좌절
- 마약 카르텔이 접수한 도시… 꼬마 메시가 공차던 300m 그 골목은 달랐다
- [단독] 3D업종에 머물던 외국 인력, 번듯한 직장까지 확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