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아무리 선거에 이성을 잃었다 해도 어떻게 이런 막장 法을

조선일보 2021. 2. 27.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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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5일 부산에서 열린 '동남권 메가시티 구축 전략 보고'에 참석, 가덕도 공항 예정지를 어업지도선을 타고 선상 시찰하며 이병진 부산시장 권한대행으로부터 관련 보고를 청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구체적 입지나 건설 계획조차 정하지 않은 채 무조건 가덕도에 공항을 지으라고 명령하는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토부·기재부·법무부 등 모든 관련 부처가 나중에 문책당할 것을 우려해 반대 입장을 표명했지만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국회가 법을 만들면 정부는 따르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선거가 목전인데 불법이니 뭐니 따지지 말라는 것이다.

공항·항만·도로를 포함한 모든 사회 기반 시설은 정부의 사전 타당성 조사를 통해 입지를 정하고 사업비 등을 개략적으로 추산한 뒤 그에 기반해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그런데 가덕도법은 섬 위 어느 특정 장소에 어떤 방식으로 공항을 지을지 변변한 밑그림조차 없다. 비용 대비 경제성을 따지는 예비 타당성 조사도 면제할 수 있도록 했다. 국토부가 추산한 최대 사업비 28조원도 4대강 사업을 뛰어넘는 정부 수립 후 최대 규모지만 난공사 특성상 실제 사업이 진행될수록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그런데도 국민 세금이 얼마나 들지는 아예 따질 생각도 말라는 것이다.

이 법은 군사시설보호법·물환경보전법·하천법·하수도법·농지법·대기환경보전법·산림보호법·항만법· 화재소방안전법 등 31법에 따른 각종 인·허가, 승인 절차도 다 건너뛸 수 있도록 했다. 예컨대 가덕도 일대는 군사 시설 보호 구역으로 지정돼 있어 국방부가 심의 절차를 통해 해제하지 않으면 공항을 지을 수 없는데 생략됐다. 환경부의 폐수 배출 시설 허가 절차나 산림청의 보전 산지 해제 절차 등도 건너뛸 수 있다. 행정 부처가 국민 안전과 복리 차원에서 검토해야 할 모든 절차를 면제해준 것이다. 그야말로 ‘닥치고 가덕도법’이다. 국가적 사업은 실제 일을 하는 행정부가 구체적 입지, 방법을 정하고 국회는 이를 뒷받침하는 입법을 해야 하는데 이 경우는 행정부의 업무 전체를 생략해버렸다. 이런 황당한 경우는 없었다.

수도권 신공항 사업은 1969~1983년에 세 차례에 걸쳐 사전 타당성 조사를 했고 1989년 정부 추진위원회가 4차 타당성 조사 끝에 기본 계획을 짰다. 이에 따라 총 22곳을 예비 조사해 후보지를 압축하는 과정을 거쳐 1990년 영종도로 최종 결정한 뒤에야 이듬해인 1991년 특별법을 제정했다. 이게 정상적 국책 사업 과정이다. 지금 정권이 아무리 선거에 목을 매고 이성을 잃었다 해도 어떻게 가덕도법과 같은 막장 법을 밀어붙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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