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한국일보

[젠더살롱] 28년 전 '신 교수 성희롱' 사건·미투 운동.. 배울 기회는 충분했다

입력 2021. 02. 27. 04:30

기사 도구 모음

음성 기사 옵션 조절 레이어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7>'부드럽게 가르쳐라'가 어불성설인 이유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과학을 읽습니다. 역사 에세이스트 박신영 작가는 '백마 탄 왕자' 이야기에서 장자상속제의 문제를 짚어보는 등 흔히 듣는 역사, 고전문학, 설화, 속담에 배어 있는 성차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번갈아 글을 쓰는 하미나 작가는 과학사 전공자답게 2030 여성의 건강문제, 덜 눈에 띄는 여성의 산업재해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정의당 젠더인권본부를 맡고 있는 배복주 부대표(왼쪽)가 지난달 25일 국회 소통관에서 김종철 대표의 성추행 사건 관련 긴급기자회견 도중 눈물을 닦고 있다. 오른쪽은 정호진 대변인. 오대근기자

지난 1월에 정의당 김종철 대표의 성추행 사건이 있었다. 인권 의식과 젠더 감수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남성조차 성폭력 가해자였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기사의 댓글과 SNS 글들을 살펴보던 나는 흥미로운 의견을 발견했다. ‘우리 같은 중년 남성들은 옛날 사람이어서 배울 기회가 없었다. 예전에는 다 그랬기에 친밀감을 표현하려다가 실수할 수도 있다. 여성들은 이 점을 고려해서 공격하지 말고 부드럽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라는. 그러고 보니 미투 운동 이후로 이런 말을 꽤 많이 들었다.

별일이다. 평소에는 ‘오빠라고 불러다오’를 외치던 중년 남성들이 왜 갑자기 못 배운 늙은이인 척할까? 이해되지 않는다. ‘배울 기회가 없었다’라니? 지금의 중년 남성들이 20~30대이던 1990년대에는 ‘서울대 신정휴 교수 사건’이 있었는데 말이다. 중년분들은 30년 가까이 흘렀지만 다들 이 사건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아, 당시는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 사건’이라고 불렀기에 ‘신 교수 사건’이라고 하면 모를 수도 있겠다. 지금은 여성가족부와 한국기자협회가 만든 ‘성폭력·성희롱 사건보도 실천요강’에 의해서 ‘서울대 신정휴 교수 성희롱 사건’이라 부른다. 피해자의 이름으로 사건을 칭하면 피해자를 주목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2차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1993년 11월 24일 한국일보가 신 교수 사건의 첫 법정 심판을 보도한 당시 기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신 교수 사건 1심 판결에 '이것도 삼천만원이냐' 조롱하던 남성들

1993년, 서울대 화학과 실습실에서 일하던 우 조교는 신 교수가 단둘이 있을 것을 여러 번 제안하고 상습적으로 신체 접촉을 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 후 재임용에 탈락하자 우조교는 8월 대자보를 붙여 신 교수의 성희롱 사실과 임용 탈락의 부당함을 고발한다. 처음부터 우 조교가 신 교수를 고소한 것은 아니다. 신 교수가 먼저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자 우 조교가 맞고소한 것이다. 이렇게 우리나라 최초의 직장 내 성희롱을 문제 삼아 제기된 민사소송 사건이 시작된다.

10월, 우 조교는 신 교수와 서울대 총장, 국가를 상대로 서울민사지법에 5,000만원을 배상하라는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낸다. 서울대가 국립대였기에 국가에도 책임을 물은 것이다. 여성단체와 서울대의 여성문제 동아리, 대학원 학생회 등은 이 사건을 ‘직장 내 성희롱’으로 규정하고 공동대책 위원회를 소집하여 대처했다. 이때 피해자 측 공동 변론에 나선 변호사 중 한 사람이 고(故) 박원순 시장이다.

다음해인 1994년 4월, 1심 판결이 나왔다. 서울지법 민사합의18부는 “신 교수는 우씨에게 3,0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에 대하여 사제 간의 정과 인간애가 사라지게 되었다는 논평이 많았다. 판결 소식을 접한 남성들의 항의가 잇따랐다. 동료 여성들을 만지는 척 손을 뻗다가 “아이쿠, 무서워라. 이것도 삼천만원이냐?”라며 조롱하는 남성들도 있었다. 직장 여성들은 “이렇게 하면 나도 고소할 거냐?”라는 상사의 시험에 들었다. 사건의 본질과 상관없이 3,000만원에 흥분한 반응이었다.

신 교수는 항소했다. 1995년 7월, 서울고법 민사9부(부장 박용상)는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판결문에는 어처구니없게도 ‘성희롱 개념을 도입하면 남녀관계를 적대적인 경계의 관계로만 인식하여 그 사이에서 일어난 무의식적인 또는 경미한 실수를 모두 법적 제재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으므로 경계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성희롱이 성폭력의 일종이라는 것을 일반 남성들은 물론이고 법관 남성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현실은 '한국여성민우회'가 1993년 11월 500여 명의 직장 여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87%가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었다는 결과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2년 반이 지난 1998년 2월, 대법원의 상고심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민사1부는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판결문에는 신 교수의 지위를 언급하며 이는 일상생활에서 허용되는 단순한 농담이나 호의적인 언행이 아니라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해 인격권을 침해하는 행동이라고 적혀 있었다.

1994년 4월 19일 신 교수 사건에서 3,000만원 배상하라는 1심 판결내용을 보도한 당시 한국일보 기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90년대를 관통한 '신 교수 사건', 직장 내 성희롱을 학습시키다

마침내 1999년 6월, 신 교수 사건의 파기환송심이 열렸다. 서울고법 민사18부는 ‘신 교수는 우 조교에게 5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일부 승소인 것은 성폭력 사건을 막을 책임이 있는 서울대학교 총장과 국가에 대한 피해보상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가해 당사자의 법적 책임은 분명히 하였으나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은 지우지 않은 부족한 판결이었다.

사건 재판이 진행되는 6년 사이에 직장 내 성희롱을 비롯한 성폭력 범죄에 대한 문제 의식은 꾸준히 확산되었다. 1994년 ‘성폭력 특별법’이 만들어졌다. 직장 여성들의 상담이 쇄도하여 2,000여건이 넘는 성희롱 상담 사례들이 접수되었다. 1998년 2월에는 ‘남녀고용평등법’이 개정되었다.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을 의무화하고, 가해자에 대한 징계규정을 두도록 하는 등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을 명문화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남녀차별 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다음해인 1999년 2월, 노동부는 남녀고용평등법에 성희롱 예방에 관한 내용을 법제화했다.

이렇게 성희롱을 제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들이 마련됨에 따라 성희롱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사람들은 직장 내 성희롱 문제는 개인 간의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직장 내 위계관계에서 발생하는 고용상의 불이익과 차별의 문제, 더 넓게 봐서는 성차별의 문제라는 점을 점차 알게 되었다.

신 교수 성희롱 사건은 장장 6년간에 걸쳐 법정 공방이 이어졌기에 1990년대를 관통한 큰 사건이었다. 텔레비전 뉴스에서도 신문 기사에서도 오랫동안 크게 다뤘기 때문에 아주 어린 아이가 아닌 이상,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사건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내가 성희롱해 볼까? 성희,,, 롱다리군”이라는 개그가 유행할 정도였다. 참고로, 롱다리라고 말하면 칭찬이어서 성희롱이 아닌 것이 아니다. 여성을 같은 인간으로 안 보고 부위별로 뜯어 포장육 등급처럼 평가하는 그게 바로 성희롱이다.

신 교수 사건 이후 30여년이 지난 2018년 8월 18일,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미투운동과함께하는시민행동 회원 및 참가자들이 제5차 성차별·성폭력 끝장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성이 부드럽게 가르쳐 달라'니요

30여년이 지났다. 신 교수 사건을 젊은 시절에 목격한 세대가 중년이 되었는데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저지르는 직장 상사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배울 기회가 충분히 있었는데도 30년 전과 똑같이 가해자를 두둔하는 말을 하는 중년 남성들이 많다. 겨우 어깨 정도 두드린 것으로 유난이다, 피해자가 아니라 꽃뱀이다, 여성 상위시대여서 남자들이 살기 힘들다 등등. 이상하지 않은가. 정말 여성 상위 시대여서 여성이 지목만 하면 남성이 억울하게 감옥에 간다면, 어떻게 이토록 많은 성폭력 사건이 여전히 발생할 수 있을까?

전에는 내 윗세대 남성들이 폭력적인 이유를 6·25 전쟁과 독재 등 폭력적인 시대의 영향을 받아서, 가난 탓에 교육을 받지 못해서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아니다. 고등교육을 받고 1993년 이후 ‘문민정부’ 시대를 살고 있는 이른바 86세대 남성들도 마찬가지인 것을 충분히 목격했기 때문이다. 남성들이 성폭력을 하는 이유는 ‘해도 되니까, 할 수 있는 권력이 있으니까, 사회가 용인해 주니까’다. 이러한 성차별적인 사회 문화에 젖어 반백년 뇌맑게 살다 보면 누구나 위력을 행사하여 성폭력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자, 87항쟁과 촛불 시위라는 두 번의 혁명을 이뤄낸 현재의 중년 남성들에게 기회가 왔다. 자신을 상대로 혁명을 할 기회가. 신 교수 사건에도 못 배운 중년 남성들을 위해 역사는 미투 운동이라는 배울 기회를 또 주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이라지만 근거가 없으므로 패러디해도 불경스럽지 않을 것이다. 신 교수 사건과 미투 운동, 이 모든 한국 현대사를 목격하고도 배우지 못하고 잊었다면, ‘역사를 잊은 남성에게 미래는 없다.’

참, 남성들은 잘 모르니 여성들이 부드러운 말로 가르쳐 주어야 한다고요? 스스로 배우세요. 여성에게 설명을, 구원의 여인이 되기를 요구하지 마세요. 물은 셀프, 구원도 셀프.

박신영 작가

박신영 작가

ⓒ한국일보 www.hankookilbo.com (무단복제 및 전재,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