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판 'N포 세대' 극단적 선택 잇따르는 까닭

김중회 프랑스 통신원 2021. 2. 28.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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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 의대생까지 자살 소식에 술렁..
'희생당한 세대'들, 피켓 들고 거리 나서

(시사저널=김중회 프랑스 통신원)

최근 프랑스에선 청년들이 연일 거리로 나서 정부에 반발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국가가 우리만 희생시키고 책임은 지지 않는다"며 자신들을 '희생당한 세대(Génération sacrifiée)'라고 표현한다. 희생당한 세대란 단어는 한국의 'N포 세대'(사회·경제적 압박으로 인해 연애·결혼·주택 마련 등 많은 것을 포기한 세대를 지칭하는 용어로 포기한 게 너무 많아 셀 수도 없다는 뜻)와 비슷한 프랑스의 신조어로 청년층 사이에 삽시간에 퍼지며 주목받고 있다.

애초 마크롱 정부가 들어선 이후, 재정 적자를 감당하기 위한 복지 축소와 대규모 노동법 개정, 대학 평준화 정책의 장기적 폐기 등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오히려 청년층의 빈곤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며 반발을 불러왔다. 빈곤 지역에 사는 청년들의 "일자리가 없다"는 호소에 "일자리가 없으면 취직하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고 말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에게 청년층은 불만을 품었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이 청년들에게 큰 타격을 가져왔다. 특히 지난 1월13일, 파리의 명문대에 재학 중인 의대생의 투신자살 소식은 '희생당한 세대론'의 분수령이 됐다. 해당 학생의 사촌을 인터뷰한 한 프랑스 언론에 따르면, 어릴 때부터 외과의사가 꿈이었던 이 학생은 어려운 환경에도 평소 가족들과 친구들을 앞장서서 돕고, 항상 우수한 성적을 받아 주위의 관심과 지지를 받아왔다. 그러나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한 정부의 강력한 방역 지침에 따라 모든 대학이 1년 넘게 폐쇄되자, 수업이나 학생에 대한 복지 수급에 차질이 생기면서 '낙제'라는 성적표를 받게 됐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렀던 것으로 전해졌다.

자신들을 '희생당한 세대'라고 표현하는 프랑스 청년들의 분노가 마크롱 정부를 향해 분출되고 있다.ⓒ연합뉴스

'#희생당한 세대' 태그 운동 유행처럼 일어

이미 빈곤 문제 등으로 인해 지난해부터 청년들의 연이은 자살 소식이 전해지며 프랑스 사회는 동요해 오던 상황이었다. 2019년 11월8일 리옹 시내 대학 부설 학생식당 앞에서 한 대학생이 분신자살을 한 데 이어, 2020년 4월엔 명문 비즈니스 스쿨인 HEC에서 23세 대학생이, 8월말에는 라로셸대학의 25세 대학생이, 9월초에는 뉴칼레도니아에서 두 명의 대학생이 함께 목숨을 끊었다. 아울러 올해 명문대 의대생의 투신자살이 있기 이틀 전이었던 1월11일에도 리옹 시내 법대 학생이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학생들의 잇단 자살 혹은 자살 시도 소식에 이어, '명문대 의대생마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프랑스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각종 언론과 전문가들은 격해지던 빈곤 문제와 함께 프랑스 정부가 내렸던 강도 높은 방역 지침, 특히 '사회활동 영역이 넓은 청년들'이 전파의 원인이라는 판단이 커다란 부작용을 낳았다고 진단했다.

이러한 다수 청년층의 분노는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번졌고, 청년들은 매주 '정부가 청년들을 죽인다'는 구호와 함께 거리로 나서 행진하며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SNS를 통해 정부를 비판하며 '#희생당한 세대'라고 태그를 다는 운동이 유행처럼 일었다.

지난해 말 프랑스 여론조사기관인 '오독사(Odoxa)'와 일간지 '르피가로(Le Figaro)'가 15~30세 프랑스 청년 689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이 같은 분위기가 여실히 드러났다. 응답자의 85%가 '스스로 희생당한 세대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예'라고 답했다.

특히 응답자의 75%는 코로나19의 유행이 만들어낸 사상 초유의 경제위기 이후, 모든 일상이 망가졌다고 대답했다. 이들 중 인턴 합격이라는 반가운 소식 뒤에 결국 임용이 취소되었다는 연락을 받은 청년들이 55%, 해고를 당한 사회초년생들이 70%, 월세를 내지 못해 집에서 쫓겨나거나 간신히 버티고 있는 청년들이 81%, 예정된 해에 졸업을 못 하게 되거나 자퇴를 결정한 대학생들이 82%, 가족과의 관계가 무너진 이가 74%, 친구와 헤어진 이가 68%, 연인과 헤어진 이가 75%라는 응답 결과가 나왔다.

함께 공개된 빅데이터 조사 결과에선 '부당함' '고독함' '우울함' '어려움' '시위' '그만' 등의 단어가 프랑스 청년들이 코로나 관련 SNS에 가장 많이 남긴 키워드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부의 강도 높은 코로나 방역 이후, 청년층은 자신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았다고 느끼고 있으며 이들의 불만이 크게 쌓인 결과라는 분석을 내놨다. 이런 배경에서 '스스로 모든 희생과 피해를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억울함을 바탕으로 한 '희생당한 세대론'이라는 화두가 극단적인 상황들과 함께 청년들 사이에서 급부상했다는 게 현 상황에 대한 언론 및 각계의 해석이다.

프랑스 청년들이 1월26일 파리 시내에서 정부 규탄 시위를 벌이며 행진하고 있다. 사진 속 한 청년이 든 피켓엔 '나는 환영받지도 못하고 희생도 요구당하는 세대입니다'라고 적혀 있다.ⓒ김중회 프랑스통신원

"프랑스 사회에 대한 '시한폭탄'과 같다"

이런 상황에 대해 프랑스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은 다양한 비판적 시각과 함께 코로나19 방역 대책 이후의 여러 가지 후속조치를 주문하는 상황이다. 지난 1월 프랑스 정신의학과 전문의들은 일간지 르몽드(Le Monde)를 통해 "현재 청년들을 둘러싸고 있는 이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들이 프랑스 사회에 대한 '시한폭탄(Bombe à retardement)'과 같다"고 밝혔으며, 대학의 교수진들 또한 '사면초가(être enfermé entre 4 murs) 상태'에 있다고 지적했다.

프랑스 정부도 이 같은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는 분위기다. 이미 지난해 12월10일 장 카스텍스 총리는 담화를 통해 "코로나 유행에 따른 엄격한 방역 조치로 인해 수많은 청년이 심리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해 진심으로 유감을 표시한다"고 밝힌 바 있다. 아울러 정부는 학생들의 생계 부담을 줄이기 위해 1월25일부터 '1유로(약 1350원) 식당'을 프랑스 전역에 400여 곳 열고, 2월8일에는 모든 학생식당 운영을 재개한다고 발표하는 등 후속 대책 마련에 힘쓰기도 했다.

문제는 그럼에도 청년층의 분노가 꺾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정부가 내놓는 대책들이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여전히 매주 거리로 나서고 있다. 특히 강한 코로나19 방역 지침에도 직접적인 시위 등으로 분노가 표출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코로나19 팬데믹' 장기화와 더불어 2022년 대통령선거까지 앞둔 프랑스에서 추후 청년층이 어떤 방식으로 여론을 형성할지에 대해 프랑스 사회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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