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통방통] 6년만에 또 터진 '위안부 역사 전쟁'..배후는 일본 정부?

조효정 hope03@mbc.co.kr 2021. 2. 28.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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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의 위안부 논문에 대한 학계의 반발이 확산일로입니다.

미국 역사학계의 저명한 교수들이 잇따라 항의 성명과 논문을 발표한데 이어,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철회해야한다는 연판장에 서명한 학자들이 벌써 2300명을 넘어섰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이 서명에는 미국 학계 뿐만 아니라, 한국과 중국을 비롯해 전 세계의 연구자들이 적극 동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현직 교수들도 벌써 여러 명이 서명에 참여했다는 소식이 들릴 정도입니다.

일본에서도 일본사연구회 등 학술단체들과 시민단체가 다음 달 14일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비판하는 온라인 세미나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형이 거기서 왜 나와?"…경제학자들도 가세

특히 초반에는 주로 역사학자들이 사실과 근거에 기반해 반박에 나섰다면, 지금은 경제학자 교수들도 비판에 가세하는 상황입니다.

램지어 교수가 일본군위안부 계약이 경제학 모델인 '게임이론'의 기초에 해당하는 '신뢰할 만한 약속'이라는 논리를 반영했다고 썼기 때문인데요.

서명을 주도하고 있는 마이클 최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UCLA) 교수는 "끔찍한 잔혹 행위를 합법화 하기 위한 위장막으로 게임 이론과 법, 경제학을 이용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서명에는 게임이론으로 노벨상을 받은 하버드대 에릭 매스킨 경제학과 교수도 동참했습니다.

위안부 역사 연구와 밀접히 연관돼 있는 역사학, 인류학, 정치학에 경제학까지, 사회과학계 전반에서 램지어 교수에 대한 비판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피넬로피 코우지아노 골드버그 예일대 경제학부 교수는 문제의 논문이 10살 일본인 소녀의 전시 성매매계약 사례를 인용한 점을 들어 "램지어 교수가 아동 성매매를 노골적으로 지지한다"는 비판까지 내놨습니다.

회사법 전공자가 역사엔 왜?

사실 램지어 교수의 전공은 경제법, 구체적으로는 일본회사법 연구입니다.

주로 활동하던 분야도 대개 경제법 관련 학술지였는데요.

그러다보니 문제의 논문이 처음 알려졌을 때만 해도, 제가 취재한 국내의 위안부 관련 연구자들이 하나같이 "램지어가 대체 누구냐"고 되물었습니다.

램지어가 일본 쪽 연구에서 아예 '듣보잡' 학자는 아닙니다.

'Japan's Political Marketplace('일본의 정치 시장)', 'The Politics of Oligarchy- Political Economy of Institutions and Decisions('과두제의 정치- 제도와 결정의 정치경제')같은 책은 일본 연구자에게 널리 알려진 저작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램지어가 자신의 전공이 아닌 역사적 사실을 거론하면서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지 않았단 겁니다.

일본 비교정치를 전공한 국내 대학의 한 교수는 저에게 "램지어 교수가 실증을 기반으로 하는 역사학을 건드리면서 실증을 하지 않았고, 경제학에서도 이론으로만 존재하는 '합리적 선택을 하는 개인'을 역사적 인물과 사실들에 무리하게 끼워맞췄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제서야 사실 인정…논문 작성의 배후는 일본 정부?

이런 가운데 램지어 교수가 뒤늦게 자신이 실수했다고 인정했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같은 하버드 로스쿨에 재직 중인 석지영 교수가 미국의 대표적인 시사교양 잡지인 '뉴요커'에 기고한 글에서 밝힌 내용인데요.

램지어 교수는 석 교수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들이 쓴 계약서를 찾지 못했고, 일본 소녀의 사례를 잘못 인용한 건 자신의 실수라고 시인했습니다.

또 이에 대해 "당황스럽고 괴롭다"고 했습니다.

석 교수의 글에서 눈여겨 볼 만한 내용이 또 있습니다.

한일 문제 전문가인 대니얼 스나이더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일본 외무성의 고위 관리가 자신에게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한국 입장의 거짓 속성을 잘 보여주는 증거"라고 인용했다는 사실을 석 교수에게 폭로했습니다.

그런데 논문에 대해 역사학자들의 반박이 이어지면서, 이 일본 관리는 "일본 정부가 램지어의 주장을 포용하려는 의도는 아니다"라며 말을 바꿨다고 합니다.

일각에서는 램지어 교수가 일본 전범기업 미쯔비시 기금 교수인 점과, 극우성향 일본 산케이 계열 매체에 여러차례 일본 (역사) 수정주의자의 논리를 그대로 대변한 점을 들어, 이 논문 자체도 일본 정부 혹은 우익들의 의뢰를 받아 작성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 의혹이 사실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최소한 램지어 교수의 논문이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을 선전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뻔 했다는 사실은 확인된 셈입니다.

6년 만에 반복된 '위안부 역사전쟁'

그런데 저는 이번 사태에서 6년 전 미국 학계에서 벌어진 또다른 '위안부 역사 전쟁'을 다시 보는 듯한 기시감이 들었습니다.

다른 점은 당시엔 일본 정부가 이같은 논쟁의 당사자였다는 점입니다.

미국판 '위안부 역사전쟁'의 1라운드는 2014년 11월 미국 '맥그로힐' 출판사의 고등학교용 세계사 교과서에 기술된 일본군위안부 기술을 수정해달라고 미국 뉴욕 주재 일본총영사관이 출판사 측에 요청한 데서 시작됐습니다.

해당 교과서에는 "2차대전 당시 일본이 10대에서 20대 여성 20만 명을 강제연행했으며, 여성들을 위안부로 만들어 일왕이 군대에 하사품으로 내려보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출판사 측이 수정을 거부하면서 일단락되는 듯 싶었는데, 일본 측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가 2015년 1월 중의원 회의에서 "일본군이 위안부를 강제 모집했다고 적은 미국 맥그로힐 출판사의 역사 교과서를 정정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겁니다.

이에 미국의 역사학계가 들고 일어났습니다.

이번 램지어 논쟁을 이끌고 있는 알렉시스 더든 미국 코네티컷대 역사학과 교수가 "미국 교과서를 상대로 한 일본의 역사 왜곡 행위는 학술 자유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라고 문제를 제기한 데 이어, 미국 역사학자 18명과 함께 집단으로 항의 성명을 냈습니다.

2015. 2. 6. 美 역사학자들 "日 역사 왜곡 시도에 경악"…집단 반대 성명(박범수) https://imnews.imbc.com/replay/2015/nwdesk/article/3637248_30279.html

그리고 4월 말 미국을 방문한 아베 전 총리가 끝까지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침묵하면서 학자들의 비판은 폭발했습니다.

미국과 유럽, 호주에서 활동하는 일본학 전공 역사학자 187명이 집단 성명을 내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는데, 이 성명은 외교경로를 통해 아베 총리에게도 직접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15. 5. 6. 세계 역사학자 187명 "일본군 위안부 인정하라" 성명 발표(문호철) https://imnews.imbc.com/replay/2015/nwdesk/article/3693724_30279.html

일본 역시 가만 있지 않았습니다.

도쿄대 교수 등 일본 우익역사 학자 50여명이 미국 역사협회의 학회지에 맥그로힐 역사교과서의 위안부 기술을 조목조목 문제삼았습니다.

하지만 이같은 시도는 미 캘리포니아주 교육국이 일본군위안부를 역사교과서에 싣는 것을 지침으로 정하면서 일본 측의 패배로 끝났습니다.

한·미·일 정부는 뒷짐만?

다시 2021년으로 돌아옵니다.

지금 학계가 떠들썩한 것에 비하면,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 정부는 한걸음 물러나 있는 형국입니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23일 정례브리핑에서 "민간학자 개인의 연구결과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구체적인 입장 표명은 자제하고자 한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위안부 피해의 역사적 사실은 수많은 피해자들의 증언과 국제기구 조사 등으로 이미 입증된 부분임을 지적하고 또 강조한다"며 원론적인 입장만을 피력했습니다.

미 국무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의한 성적인 목적의 여성 인신매매는 지독한 인권 침해"라고 밝히면서도, 일본 정부나 램지어 교수에 대해서는 별도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일본 정부 역시 6년 전의 기억이 뼈아픈지, 램지어와 관련된 논쟁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습니다.

이와는 별개로 한국과 일본은 지난 주 유엔 인권이사회 회의에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공방을 이어갔습니다.

2021. 2. 25. "위안부는 인권 문제"…일본 "수용 못해"(윤효정) https://imnews.imbc.com/replay/2021/nwtoday/article/6099554_34943.html

일각에선 한국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램지어 교수의 논문과 관련해 입장을 밝혀야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학문적인 논쟁에 뛰어드는 것과, 국제 무대 등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관된 입장을 밝히는 것은 구별해야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일본군위안부가 '전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라는 것은 이미 학계에서도, 미국이나 유럽은 물론이고 유엔 등 국제 사회에서도 공인된 사실입니다.

램지어 교수의 논문과 관련해 이미 학계에서 자정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데, 한국 정부가 섣불리 개입할 경우 여성의 인권이라는 보편적인 문제가 한·일 외교갈등으로 축소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한·미·일 협력을 중시하는 미국 정부 역시 어느 한쪽 나라를 지지할 수 없어 논쟁에서 발을 빼려 할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일본 정부가 물밑에서 일본군위안부 역사를 왜곡하고, 세계 각지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을 철거하려고 시도하는데 대해서는, 우리 정부도 적극 대응해야할 겁니다.

그 역시 공개적인 싸움보다는 양심적인 시민 사회와 손잡고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전 세계가 인정하는 보편적인 인권문제로 부각시키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어쨋든 램지어 교수는 이번 일을 계기로, 본인의 학문적 업적과 이력을 완전히 부정받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당분간은 학계에 공개적으로 나서지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학자의 양심을 걸고 위안부 역사 논쟁에 참여한 미국과 한국 등 전 세계 연구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조효정 기자 (hope03@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2021/world/article/6103648_3488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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