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병원 가기 무섭다.. 여긴 45만원, 저긴 200만원 '제멋대로'

정우진,이성훈,박성영 2021. 2. 28.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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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쑥날쑥 반려동물 의료비 격차] (상) 10곳 상담해보니.. "150만원 차이"
강아지. 픽사베이

반려동물을 기르는 인구가 1500만명을 넘어섰다. 4가구 중 1가구 꼴로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하고 있지만 동물병원 의료비가 병원마다 제각각인 탓에 보호자들은 혼란스럽다. 가격이 비싸면 ‘과잉진료는 아닌지’ 의심하게 되고, 가격이 싸면 ‘질 떨어지는 의료서비스가 아닐까’ 걱정하게 된다. 진단과 치료에 대한 표준화된 기준이 없는 탓이다. 반려동물 의료시장의 현실을 들여다보고 의료비 격차의 원인과 대안에 대해 살펴봤다.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동네마다 동물병원이 들어섰지만 의료비는 병원마다 천차만별이다. 같은 질환임에도 치료비는 최대 4배 이상 차이가 났고 중성화수술 등 그나마 표준화된 영역에서도 2배 이상의 차이가 벌어졌다. 반려동물 보호자들은 극심한 가격 편차에 불신이 쌓일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다. 경쟁 압박에 시달리는 수의사들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민일보는 지난 23일부터 28일까지 전국 12곳의 동물병원에 수술이 필요한 강아지 2마리에 대해 수술 내용 및 비용 상담을 받았다. 오른쪽 다리 슬개골 탈구 3기 진단을 받은 5㎏의 2살 말티즈 수컷과 종과 몸무게가 같고 중성화수술을 받으려 하는 12개월 암컷 강아지를 대상으로 했다.

슬개골 탈구의 경우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등 충격에 의해 흔하게 발생하는 질환으로 증상에 따라 다양한 수술법이 있다. 질병 예방을 위해 실시하는 중성화수술은 상대적으로 표준화된 수술이다.

슬개골 탈구 3기 치료 견적은 최대 4배 이상 차이가 났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동물병원은 최저가인 45만원을 제시했고, 강남구의 한 동물병원은 최고가인 200만원을 요구했다. 두 병원 모두 혈액검사 등 사전검사 비용과 입원·약처방 등 후처치 비용을 포함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가격 차이는 155만원까지 벌어졌다. 상담을 진행한 동물병원 12곳 중 수술부대비용까지 포함한 전체 치료비가 50만원 미만인 병원과 50만~100만원인 병원, 100만원을 초과하는 치료비를 청구하겠다는 병원이 각각 4곳씩이었다.

사전검사와 후처치 등 수술부대비용에 대한 판단도 달랐다. 수술 전 혈액검사비·마취비, 수술 후 입원비·약처방 등 후처치 비용을 모두 수술비에 포함해 가격을 책정하는 병원도 있었고, 각 항목을 수술비와 따로 취급해 청구하는 병원도 있었다.

수술비로 40만원이 든다고 안내했던 경기도 성남의 한 동물병원은 “입원비가 하루 5만원씩 별도로 청구된다”며 “수술 후 일주일은 입원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수술비와 엇비슷한 35만원가량이 입원비 명목으로 추가되는 것이다. 부산의 한 동물병원은 수술비로 44만원을 요구하고 진료비(2만원), 혈액검사비(20만원), 입원비(하루 6만6000원), 약값(하루 3000원) 등을 모두 따로 취급하기도 했다.

‘책임비용’이라는 명목으로 초진비에 재수술 비용까지 포함시킨 병원도 있었다. 80만원을 요구한 용산구의 한 동물병원은 “수술에는 수술비용과 책임비용이 포함된다”며 “증상이 재발했을 때 다시 와서 진료나 수술을 받을 수 있게 책임을 진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등포구에 있는 동물병원은 재검진시 할인을 적용해 11만원의 비용만 지불하면 된다고 안내하기도 했다. 나머지 10곳의 병원은 재검진·재수술 등에 대한 별도의 혜택은 없었다.

슬개골 탈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치료 행위 등이 표준화된 중성화수술도 가격 편차가 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경기도 김포에 있는 한 동물병원은 19만원을 요구한 반면 서울 용산구의 한 동물병원은 50만원을 요구해 2배 이상 차이가 났다. 12곳 중 10만원대 1곳, 20만원대 1곳, 30만원대 5곳, 40만원대 4곳, 50만원대 1곳으로 가격대를 특정하기 어려웠다.

동물병원을 이용하는 보호자들은 극심한 비용 격차에 불신이 쌓이지만 대안이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반려견을 키우는 직장인 양모(28)씨는 “병원마다 진료비 차이가 너무 커 혼란스럽다”며 “터무니없이 비싼 곳은 혹시 과잉진료를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되지만 강아지를 생각한다면 무작정 싼 곳을 골라 치료를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보가 너무 부족하니 결국 ‘단골이니까 잘해주겠지’라는 마음으로 처음 방문했던 병원을 믿고 다니는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한국소비자연맹이 지난해 10월 동물병원 이용 경험이 있는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서도 불신과 병원비에 대한 불만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과잉진료 의심’이 1위(16.7%)를 차지했고 ‘진료비 사전고지 없음’(15.8%), ‘진료비 과다 청구’(14.1%), ‘동일진료의 병원 간 과도한 비용 편차’(13.1%), ‘진료항목에 대한 정보제공 없음’(9.8%)이 뒤를 이었다.

반려동물 보호자의 입장에선 필요한 치료가 무엇인지, 예상 비용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고 발품을 팔아 직접 상담을 받아도 병원마다 비용 편차가 큰 까닭에 병원 이용 후에도 진료비가 과다청구됐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수의사들도 소비자의 불신이 쌓이는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서울시수의사회 관계자는 “적지 않은 보호자들이 진료 내용을 잘 모르기 때문에 비용에 대해 불만이 크다는 걸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병원들도 가격경쟁에 시달리다 보니 자꾸 가격을 낮추게 된다”며 “이로 인해 진료의 질은 질대로 떨어지고 수입은 불균형해지는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동물 의료 역시 사람처럼 진료체계에 대한 표준화 방안을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병원마다 서로 다른 진료 용어와 항목, 치료 행위 등을 표준화해 동물 의료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수의사회 관계자는 “동물 의료 행위는 정부가 민간병원에 완전히 맡겨 놓은 상황”이라며 “진료 항목, 진료 행위 등에 대한 기준이 없어 병원마다 비용이 다르고 소비자의 입장에선 당황스러울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20년 전에는 진료 항목이라고 해도 20가지 정도가 전부였지만 지금은 세기 힘들 만큼 다양해졌다”며 “협회 차원에서도 소비자들이 믿을 수 있게 진료 항목, 진료 행위의 표준화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우진 이성훈 박성영 기자 uz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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