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수 칼럼]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이기수 논설위원 2021. 3. 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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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요 근래 부쩍 듣는 말이 있다. 여야 정객을 만나도, 지인들과의 밥자리에서도 오가는 얘기다. “대통령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정가의 뒷얘기를 곧잘 풀어주던 친문 원로도 도통 모르겠단다. 아는 거 없냐고 여기저기서 물어온다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짧고 모호한 말’과 ‘침묵’이 낳은 풍경이다.

이기수 논설위원

설 직후에 터진 신현수 민정수석의 사표 파동은 철회도 반려도 없이 3월을 맞았다.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은 국회에 나와 “나는 사표를 수리하면 안 된다고 건의했고, 아마 수리가 될 수도 있다”며 “(후임자 물색은) 설혹 하고 있더라도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알쏭달쏭 무슨 말인지…. 어차피 거취를 일임받고 아무 말이 없는 ‘대통령의 시간’임을 알린 것이다. 사태의 얼개는 나왔다. 인사안 보고부터 승인·발표·전자결재·발령까지 ‘통상절차’는 밟았다 하고, 박범계 법무장관이 조율 중인 인사안을 밀어붙이자 신 수석이 직을 던졌다는 게 골격이다. 사달은 신 수석이 윤석열 검찰총장 요구도 담은 인사를 중재하다 막판에 터진 걸로 짐작된다. 사표 내고 날린 “저의 동력을 상실했다”는 문자가 그것일 테다. 모종의 구상이나 역할이나 언약이 흔들렸을 때 하는 말이다. 그것이 뭘까. 법무장관의 인사안도, 민정수석의 중재도 어디까지가 대통령의 생각인지 알 길이 없다.

대통령의 진의 시비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으로도 번져 있다. “시행 중인 수사권 개혁부터 안착시켜달라”는 대통령의 말이 중수청의 ‘속도조절’을 주문한 것으로 해석되면서다. 유영민 실장은 대통령이 그 네 마디를 했다고 전했다가, 여당의 사실확인엔 ‘그런 취지였다’고 정정했다. 검찰의 6대 범죄 수사권도 넘겨 만들려 하는 중수청은 야당·검찰·경찰·공수처도 한마디씩 벼르고 있는 올해의 화약고다. 여권으로 좁혀도, 공수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을 대선공약 축으로 삼는 청와대와 한발 더 가겠다는 2차 검찰개혁파의 긴장은 풀리지 않았다. 임기 말 당·청의 시선은 미래(선거)와 현재(국정)로 갈라진다. 대통령의 짧은 메시지 후에 ‘중수청 내전’이 잦아들지 않는 것도 그렇게 읽게 된다.

2020년을 꽉 채운 ‘추·윤 갈등’과 2라운드 격인 ‘신·박 갈등’, 심지가 타고 있는 중수청 대치는 공통점이 있다. 대통령이 당사자 간 해결을 기다리는 ‘관찰자’의 위치에 서 있었다. 문제가 반복되니 레임덕 얘기도 불쑥 나오지만, 외려 혼선은 명확히 제때 전달되지 않는 대통령 메시지에 있을 수 있다.

대통령의 말이 흐트러져가는 것은 또 있다. ‘만사(萬事)’라는 인사다. 문재인 정부의 총리·장관 49명 중 현역의원 입각자는 18명(36.7%), 전직까지 합치면 22명(44.9%)에 달한다. ‘내각제 정부’와 다를 바 없다. 그렇다보니 정치인·전문가·관료가 정권의 세 토막을 나눠 맡으면 좋다는 관가의 ‘장관 3박자론’도 시도된 곳은 통일부(조명균→김연철→이인영)뿐이다. 한때 6명이 포진했던 여성 장관도 지금은 3명으로 줄며 대통령이 약속한 30%룰이 깨졌다. 첫 조각 때 61.2세였던 내각은 오늘도 60.8세이다. 4년 전 취임사에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널리 삼고초려하겠다”고 한 말은 무색해졌다. 왜 그랬을까. 권력 주변에선 인사청문회 벽을 먼저 얘기한다. 본인 고사로 열 사람 지나 만난 장관이 수두룩하고, 40고개를 넘기거나 “(청문회 없이)차관이면 하겠다”고 역제안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래도 인사는 결과로 말해야 한다. 사람도 메시지다. 그 흔들림이 계속되면, ‘정은경’ 석 자가 유난히 빛나는 문재인 정부에서 인사는 ‘아픈 손가락’이 될 수 있다.

“흔히들 임기 후반을 하산(下山)에 비유합니다.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끝없이 위를 향해 오르다가 임기 마지막 날 마침내 멈춰 선 정상이 우리가 가야 할 코스입니다.” 문 대통령이 2007년 3월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비서실장 취임식에서 한 말이다. ‘오르다 멈추자’는 이 말은 요즘 청와대 사람들도 곧잘 소환한다. 백신 장정도, 한반도 평화도, 부동산도 갈 길이 멀고 코로나19 끝에 대선과 만나는 정권의 운명이 그렇게 할 것이다.

그래도 달은 차면 기운다. 대통령의 시간도 예외는 없다. 국정과 여당을 쥐는 ‘그립(Grip)’이 하루하루 다르고, ‘맞을 매’와 ‘억울한 매’와 ‘공매’가 함께 쌓이는 것도 보게 된다. 그런 정권 끝일수록, 대통령의 생각과 말이 궁금한 세상엔 속설이 차오른다. 달리 왕도(王道)가 있을까. 가장 강력한 대통령의 이미지는 ‘지도자’이고, 대통령의 존재 이유와 힘은 거기서 나온다. 대통령의 메시지와 용인술은 분명하고, 빠르고, 획이 커야 한다.

이기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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