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바키나에와 마과회통
[경향신문]
“모두 6남3녀를 낳았는데, 산 애들이 2남1녀이고 죽은 애들이 4남2녀니, 죽은 애들이 산 애들의 두 배이다. 아아, 내가 하늘에 죄를 지어 잔혹함이 이와 같으니, 어찌할 것인가… 나는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나은데 살아 있고, 너는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나은데 죽었으니, 이것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자식을 아홉 두었지만, 여섯이 요절했다. 1798년 9월에는 아들 삼동이가 죽었다. 먼저 낳은 구장이와 효순이를 천연두로 보낸 다산이었다. 그러나 곧 10월에 다시 낳은 아들도 열흘 만에 죽었다. 끝이 아니었다. 막내 농장이도 네 살 무렵, 역시 천연두로 죽었다.
그런데 다산이 자녀를 줄줄이 앞세워 보내던 그 무렵, 영국에서는 에드워드 제너가 여덟 살 소년의 몸에 우두 접종을 하고 있었다. 대성공이었다. 2년 후, 제너는 ‘바리올라에 바키나에(Variolae vaccinae)’ 제하의 논문을 발표했다. 백신(vaccine)이라는 이름이 세상에 처음 등장하던 순간이다. 다산이 삼동이를 땅에 묻고 있던 그해다. 제너의 우두법은 급속도로 전파되었다. 영국은 물론이고 유럽 대륙, 북미와 남미, 심지어 동남아시아와 중국 등에서 속속 접종이 시작되었다.
흥미롭게도 제너가 최초의 백신 논문을 발표하던 해, 다산은 <마과회통(麻科會通)>을 편찬했다. 홍역과 천연두의 치료법을 담은 책이다. 원래 다산은 초자연적 질병관과 자연주의적 질병관을 모두 비판했다. “무당을 불러 기도를 하거나 뱀을 먹으면 전염병이 낫는다는 거짓된 소문이 있으니”라고도 했고, “진맥으로 오장육부의 상태를 알아낸다는 주장은 마치 한강 물을 떠서 어느 지류의 물이라고 하는 것 같은”이라고도 했다. 이후 <마과회통>의 부록으로 ‘신증종두기법상실’이 덧붙여지는데, 바로 우두 접종에 관해 담고 있다. 접종 방법과 부위, 금기, 기구 등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 다산은 우두법을, 그리고 과학에 기반한 의학을 조선에 널리 알릴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았다. 그의 책은 별로 읽히지 못했다. 전 세계가 우두를 접종하고 있었지만, 조선에서는 여전히 천연두가 기승을 부렸다.
1879년, 지석영 선생은 부산의 제생의원으로 내려갔다. 일본이 세운 근대식 병원이었다. 그곳에서 우두술을 익힌 후, 두 살배기 처남에게 첫 우두 접종을 했다. 성공이었다. 제너의 접종 이후 무려 80년이 지나 이뤄낸 일이다. 그는 당시의 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평생을 통해 과거에 급제했을 때와 귀양살이에서 풀려 나왔을 때가 크나큰 기쁨이었는데, 그때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마 의사라면 누구나 이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지석영은 문과에 급제한 정4품의 벼슬아치였지만, 국가의 실정을 비판하다 귀양살이를 했다. 이후 평생 의사로 살았다. 아예 일본에서 본격적인 우두술과 종묘제조법을 배워왔다. 그리고 한성에 첫 종두장을 차리고 접종을 시작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몇 년 후, 임오군란이 터진 것이다. 서양에서 건너온 것은 모두 배척의 대상이 되었다. 천연두를 쫓는 굿을 하던 무당도 가세했다. 종두장은 불태워졌고, 지석영은 시골로 도망쳐야 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백신의 효과와 부작용에 관한 설익은 유언비어가 넘쳐난다. 때를 놓치지 않고 백신 반대론자가 목소리를 높인다. ‘음양의 조화’가 깨져서 코로나19에 걸린다고도 하고, 심지어 ‘신의 징벌’이라든가 ‘세계를 지배하려는 서구의 음모’라는 말까지 있다. 200년 전 조선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코로나19 백신 국내 접종이 막 시작되었다. 외국에서는 이미 수백만명이 접종받은 백신이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정약용과 지석영의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박한선 정신과 전문의·신경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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