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있는 놈이 더하다

최서윤 작가 2021. 3. 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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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노후대비’라는 말을 들을 때면 부정적인 감정이 먼저 떠오른다. 원룸촌에서의 경험 때문일 것이다. 다가구주택으로 구성된 원룸촌 집주인 대부분은 이미 노후의 삶을 살고 있거나 노후대비로 주택 임대업을 하는 중장년층이었다. 집도 노후해서 살면서 크고 작은 불편을 자주 겪었다. 그렇다고 임차료가 낮은 편도 아니었다. 나는 품질 좋고 교통편의성 높으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청년공공주택의 ‘대량’ 공급이 필요하다고 봤다.

최서윤 작가

물론 많은 집주인들은 환영하지 않았다. 노후대비를 위해 대학가에 주택을 마련해놨는데, 기숙사나 공공주택이 생기면 자신의 이익이 침해당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들에겐 청년들이 저렴하고 괜찮은 주거시설에서 안전하게 지낼 수 있을지 여부는 안중에 없어 보였다. 오직 자신의 손해가 걱정일 뿐. 거칠게 요약하면 ‘본인의 노후가 청년들의 현재보다 더 중요하다’ 정도 아니었을까.

어르신들 모두가 그렇다고 일반화하고 싶진 않다. 사실 집주인이 된 노인 자체가 소수에 속한다. 다수 노인들은 빈곤에 시달린다. 노인 빈곤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 이런 사회에서 개인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믿을 건 자산 증식뿐인가? 코로나 시국의 유동성은 ‘FOMO(fear of missing out)’, 한국식으로 풀어 말하면 ‘이러다 나만 X되는 거 아냐?’ 심리를 자극해, 안 하던 짓까지 하게 만들었다. 국민건강보험만 믿던 내가 암보험과 실비보험에 가입하고, 주식시장까지 기웃거리게 된 것이다.

한편으로는 노후를 ‘계획’이라도 해본다면,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에 속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내가 있다. 노후는커녕 지금 당장의 삶에 힘겨운 이들이 많다. 코로나19가 청년 자살률 상승폭을 더욱 가파르게 했다는 소식에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살아있는 매 순간이 경쟁인 사회에서 자존감을 지키며 사는 일이 쉽지 않다. 게다가 주거 문제로 고통받는 청년에게 주택 가격 급등 또한 희망을 꺾는 소식이었을 것이다. 주택을 증여해줄 부모에게서 태어나지 못한 청년은 평생 집주인의 레버리지 수단이 돼야 하는 걸까? 인구재생산을 거부하는 청년들의 선택은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러니 합계출산율이 0.84명으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다. 오히려 이 와중에도 노후 걱정을 앞세우는 사람이 놀랍다. 낮은 출생률을 보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걱정이 ‘국민연금 고갈되면 어쩌지’라면, 인성에 좀 문제 있는 것 아닌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의 청년마저 수단으로 보는, 그 시선을 숨기지도 않는 뻔뻔함이 거북하다.

행복한 노후를 위해, 자산을 증식하려는 개인의 노력도 어느 정도 필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거기에 매몰되어 시민성이 상실되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제도로서 안전망을 구축하는 일 못지않게, 개개인의 인식 개선과 실천이 중요한 시점이다. 적어도 있는 사람이 더한, 그런 꼴은 좀 덜 보고 살고 싶다. 그 시작은 누군가 코로나가 기회의 시기라며 자산을 증식할 때, 다른 누군가는 살아있음이 고통이라 ‘그만 살기’를 선택하고 있다는 이 간극의 비극을 감각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최서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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