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래군의 인권과 삶]'탈시설장애인당'을 지지한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2021. 3. 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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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4월7일 서울과 부산 시장의 보궐선거 일정이 다가오면서 선거판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서울시장 선거에는 아주 특별한 가짜정당의 활동을 소개하고 싶다. ‘탈시설장애인당’은 가짜정당이다. 보궐선거일 직전에 해산하는 가짜정당이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하지만 워낙 주변부의 정당이다 보니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장애인 단체나 시민사회에서나 조금 관심이 있을 뿐이다. 특히 거대 정당에서는 이들의 존재를 눈여겨보지 않는다. 이들은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정치’를 내세우고 있지만 장애인만이 아니라 소수자들은 선거철에는 더욱더 철저하게 외면당한다.

그런데 최근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가 이 가짜정당에 공문을 보내왔다. 정당법에 의해서 정당으로 등록되지 않았으니 정당이란 명칭을 쓰지 말고, 공직선거법에 의해 선거일 180일 이전부터 특정 후보자의 이름을 거론하는 등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는 행위는 법률 위반이므로 지금과 같이 특정 후보의 이름이 거명된 피켓이나 현수막 등을 사용하지 말라는 경고다. 이런 서울시 선관위의 공문을 받아든 장애인 활동가들은 고민에 휩싸였다. 자신들이 평소 활동하던 것을 집약한 요구들을 선거판에서 도드라지게 표현하는 활동을 중단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법률 위반임을 알고도 계속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다.

탈시설장애인당은 11가지 요구를 공약으로 내걸고 각각의 공약마다 한 명씩의 후보들을 내세웠다. 이 후보들을 앞세우고, 각 당 예비후보들을 찾아가고, 각종 행사장을 방문해서 유인물을 배포하기도 한다. 그런 그들의 활동이 유쾌하기 그지없다. 거대 정당들이 내세운 후보들의 입만 쳐다보던 상황과는 다르게 자신들의 요구를 공약으로 내걸고 활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탈시설장애인당이 내건 11가지 공약은 다음과 같다(자세한 내용은 탈시설장애인당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자, 모두가 평등하게 이동할 권리, 이것도 노동이다, K방역을 넘어 D방역으로, 탈시설이 백신이다, 장애인에게 교육이 생명이다, 보호와 통제로 허락된 안전을 거부한다, 건강해야 평등하다, 의사소통권은 선택이 아닌 권리, 서울시는 발달장애인이 스스로 살 수 있게 지원하라, 서울시 문화예술, 완전한 배리어프리 실현 등이다.

이런 요구들은 오랫동안 장애인운동이 제기해 왔던 문제들이다. 이동권을 주장하는 장애인들이 버스를 점거하고, 전철로를 점거하는 방법으로 이동권 투쟁을 벌인 결과 4년 만에 보편적인 이동권이 법적 권리로 승인받은 게 16년 전이다. 기초생활보장법상의 부양의무자 규정 폐지를 박근혜 정권 내내 농성을 통해서 사회 문제화했고, 그 결과 부당한 부양의무제는 폐지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 두 가지 사례는 장애인들이 자신들의 절실한 요구를 사회적 약자들의 보편적인 권리로 확장시켜 왔음을 보여준다.

지난해 코로나 상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가장 심각하게 인권침해를 당한 사람들은 장애인들일 것이다. 시설에 수용된 장애인들은 코호트 격리를 강제당해야 했다. 세계적으로도 장애인 거주시설과 같은 격리시설에서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했다. 그러자 국제사회는 긴급 탈시설 방침을 세웠다. 시설 자체가 인권침해라는 인식이 확고해지고 있지만, 우리는 예외다. 서울시의 신아원이나 안산의 한 시설의 장애인들은 코로나 상황이 진정되자 다시 시설로 되돌아가게 했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D방역, 탈시설이 백신이라는 말이 그래서 중요하다. 마침 지난해 세계인권선언일에 ‘장애인 탈시설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도 발의되었다. 이참에 가짜정당만이 아니라 국회가 세계적인 탈시설 요구에 응답하기를 바란다.

탈시설장애인당은 실정법상의 불법 여부를 넘어서 우리 사회가 외면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권리 실현 과정을 유쾌한 정치로 풀어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탈시설장애인당을 주목하고 있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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