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천안함 함장 최원일 "이 악물고 버틴 10년.. 전우들 명예회복에 생 바칠것"

김은중 기자 2021. 3. 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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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함장 최원일 '울분의 전역사'.. 첫 심정 토로

북한의 천안함(PCC-772) 폭침 도발 당시 함장이었던 최원일(53·해사 45기) 예비역 해군 대령은 1일 “승조원 104명과 천안함의 명예를 온갖 억측과 허위로부터 지켜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긴 세월 이를 악물고 버텨왔다”며 “인생 2막은 천안함과 사랑하는 전우(戰友)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 살겠다”고 했다. 폭침 이후 오랜 기간 비(非)전투 임무를 수행하다 최근 30년 군 생활을 마친 그는 “사무실 벽에 권토중래, 와신상담 글자를 붙여 놓고 절치부심했지만 끝내 적(북한)에게 복수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절망했다”고 했다.

전역을 앞두고 천안함 전사자들이 안장된 국립 대전현충원 묘역을 찾은 최원일 함장. /천안함생존자전우회 제공

최 함장은 이날 본지에 공개한 A4 용지 다섯 장 분량의 전역사에서 “한반도 평화라는 이름 아래 사랑하는 전우들을 희생시킨 원수들과 손잡는 것을 볼 때 분통이 터져 잠들지 못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최 함장은 천안함 폭침에 따른 지휘 책임 때문에 인사 때마다 승진에 탈락하다가 지난 28일 전역

최원일(가운데) 전 천안함 함장(예비역 해군 대령)이 2010년 4월 7일 성남 국군수도병원에서 천안함 폭침 사건 12일 만에 열린 생존 장병 기자회견에 참석해 마지막 질문에 답변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10년 4월 24일 서해에서 인양 중인 천안함 함수. /이덕훈 기자
지난 2008년 11월 부임 후 전우들과 함께 천안함 함수에서 찍은 사진. (왼쪽부터) 고 이상민 하사, 전준영씨, 함장 최원일 중령, 고 이재민 하사, 고 이용상 하사, 전 주임원사. /조선일보DB

<</b>본지 2월 27일 자 A6면 보도>을 앞두고 대령으로 명예 진급했다. 천안함 폭침 이후 침묵을 지키던 그가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재인 정부는 천안함 폭침을 기획·실행한 것으로 알려진 북한 김영철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2018년 2월 평창올림픽 참석차 방남했을 때 국빈급으로 대우해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는 지적을 받았다. 정부·여당 인사들은 천안함 도발을 ‘불미스러운 충돌’ ‘우발적 사건’이라고 했다. 최 함장은 “분통이 터져 잠 못 든 날들도 많았지만 우리의 희생이 헛되지 않기를 기대하며 견디고 또 견뎠다”고 밝혔다.

최 함장은 “천안함을 둘러싼 온갖 억측과 허위 사실의 유포는 1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고,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장에서 살아 돌아온 장병들은 수치심을 느껴야 한다’던 어느 사령관의 교육 ▲‘넋 놓고 있다가 천안함처럼 당한다’고 했던 모 전대장 ▲‘모든 것은 함장의 잘못’이라 역설하던 예비역 제독의 초빙 강연 같은 구체적인 사례를 언급했다. 군내(軍內)에서조차도 천안함을 향한 따가운 시선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언제 끝날지 모를 고난과 고통의 날들, 끝이 보이지 않는 암흑의 긴 터널을 지나왔다”고 했다.

최 함장은 “우리는 선조들이 피땀 흘려 일군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지시된 위치에서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고 했다. 이어 “천안함 사건이 국민들에게 점점 잊혀 간다는 것이 더 참담했다”며 “평화는 공짜가 아니다. 언제 또 깨질지 모를 평화를 지키기 위해 숭고한 희생을 기리고 ‘항재전장(恒在戰場·항상 전쟁터에 있다)’의 각오로 적과의 일전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최 함장은 원래 언론인을 꿈꿨다. 하지만 투병 중이던 부친이 “네 이름은 초대 해군참모총장인 손원일(1909~1980) 제독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며 입대를 권했다고 한다. 최 함장은 “유언일지도 모르는 말씀에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드리고자 꿈을 접고 운명적으로 해군에 입대했다”고 했다.

최 함장은 “대양 해군의 지휘관을 꿈꿨지만 2010년 3월 26일 사랑하는 전우들과 희망찬 미래를 모두 잃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술과 담배에 의지하며 버텨오던 기나긴 세월 동안 눈물로 지켜준 사랑하는 아내, 당시 중3·초6이라는 어린 나이에 따가운 시선과 눈총만 받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잘 자라준 아들과 딸에게 미안하고 고맙다”고 했다.

최 함장은 “해군에서 오랜 항해를 마쳤고 사회에서 다시 천안함 가족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긴 항해를 시작하려 한다”며 “현역의 신분으로 천안함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힘들었던 부분들을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는 전역과 동시에 ‘Forever 772′라는 블로그도 개설했다. 그간 속에만 담아 놓고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하나둘씩 풀겠다고 한다.

최 함장은 1일 올린 글에서는 “천안함 전우들아 기죽지 마라. 그대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철저히 근무했다”고 썼다.

◇ 최원일 前 천안함 함장 전역사 전문

먼저,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것이 멈춰버린 일상과 힘든 시기를 잘 극복하고 계신 유가족, 전우 여러분을 비롯한 천안함을 사랑해주시는 모든 분께 깊은 위로와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2021년 2월 28일 부로 34년 간 다사다난했던 해군 생활의 오랜 항해를 마치려 합니다. 지난 2월 23일 참모총장님께 전역 신고를 드렸고, 현충원을 찾아 하늘에 있는 46명의 전우들에게도 전역 신고를 마쳤습니다.

1987년 1월 23일 당시 병원에서 투병중이시던 어쩌면 마지막 모습일지 모르는 아버지께 인사드리고 버스터미널에서 눈물로 배웅하시던 어머니의 꼭 잡은 두 손을 놓고 해군사관생도가 되고자 옥포만에 들어왔습니다. 당시 일반대학에 진학해 언론인을 꿈꾸던 저에게 해군 수병으로 군 생활을 하신 아버지께서 “네 이름은 초대 해군참모총장이신 손원일 제독 이름을 따서 지었다”던 어쩌면 유언일지 모르는 말씀에 당시 가정형편을 고려하고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드리고자 꿈을 접고 그렇게 운명적으로 해군에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낯선 진해 옥포만에서 사관생도가 되어 멋진 해군장교라는 새로운 꿈을 키웠고 임관 후에는 눈부시게 푸르고 아름다운 동∙서∙남해와 광활한 태평양을 누비며 대양해군 지휘관의 꿈을 펼쳐 왔었습니다.

그러나 손원일 제독님을 동경하고 꿈 많던 40대 초반의 젊은 장교는 2010년 3월 26일 밤 한순간에 몸과 마음을 부대끼며 살아왔던 사랑하는 전우들과 희망찬 미래를 모두 잃게 되었습니다.

이후 시작된 10여 년, 언제 끝날지 모를 고난과 고통의 날들, 끝이 보이지 않는 암흑의 긴 터널을 그렇게 지나왔습니다. 한순간에 자식과 남편, 아버지, 형제를 잃고 눈물로 세월을 보내는 유가족들과 혼자 살아 돌아왔다는 죄책감에 자신의 고통을 호소조차도 못하는 생존 전우들에게 무거운 책임을 느끼며 해서는 안 되는 생각도 여러 번 했습니다.

정보와 작전의 실패를 천안함의 경계실패로 몰아가던 상황과 “전장에서 살아 돌아온 장병들은 수치심을 느껴야한다”던 어느 사령관의 교육, “넋 놓고 있다가 천안함처럼 당한다”고 했던 모 전대장, 초빙강연에서 “모든 것은 천안함장의 잘못”이라고 역설하던 예비역 제독, 온갖 억측과 허위사실의 유포는 1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고, 조금도 나아지고 있지 않습니다.

자신이 승조하던 함정에서 “천안함 장병들은 졸다가 당했다”는 교육을 받고 와서 해군에서 더 이상 복무할 수 없다며 목 놓아 울며 전역해 버린 생존 전우를 보며, 하늘에 있는 전우들을 포함한 승조원 104명과 천안함의 명예를 온갖 억측과 허위로부터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긴 세월 이를 악물고 버텨왔습니다.

사무실 벽에 권토중래, 와신상담 글자를 붙여 놓고 절치부심하기도 했지만 적에게 복수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음에 절망도 많이 했습니다.

또한, 한반도 평화라는 이름 아래 사랑하는 전우들을 희생시킨 원수들과 손잡는 것을 볼 때와 군내에서 조차 따가운 시선과 외부에서 말도 안 되는 의혹제기를 하는 사람들이 나올 때 마다 분통이 터져 잠 못 든 날들도 많았었지만 우리의 희생이 헛되지 않기를 기대하며 견디고 또 견뎠습니다.

하지만 더 참담한 것은 억측과 진실공방 보다 천안함 피격 사건이 국민들에게 점점 잊혀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평화는 공짜가 아닙니다. 긴 세월 외세의 침략에 맞선 호국영령들의 희생이, 한국전쟁 당시 생면부지의 땅에서 쓰러져간 연합군 장병들, 최근에는 천안함, 연평해전, 연평도 포격전 등에서 장병들의 숭고하고 값진 희생이 있었기에 현재의 평화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 또 깨질지 모를 평화를 지키기 위해 평소에 그분들의 희생을 기리고 항재전장의 각오로 적과의 일전을 준비해야 합니다.

불변한 진실은 우리 천안함과 104명의 용사들은 1953년 이후 정전상태인 한반도의 서해에서 국민들이 주말을 시작하며 편히 쉬던 금요일 밤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선조들이 피땀 흘려 일군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지시된 위치에서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해군에서 오랜 항해를 마치고 사회에서 인생 2막을 시작하며 영원한 천안함장이 되어 영광스러운 천안함과 사랑하는 104명 전우, 천안함 가족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다시 긴 항해를 시작하려 합니다.

또한, 그동안 현역의 신분으로 천안함의 명예를 회복하기 힘들었던 부분들을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평온하던 가정의 가장이 한순간에 죄인이 되어 숱한 조사를 받으며 온갖 비난과 악플에 시달리고 어느 누구도 도와주지 않고 외면하던 현실에 좌절하며 술과 담배에 의지하며 버텨오던 기나긴 세월동안 옆에서 눈물로 저를 지켜준 사랑하는 아내와, 당시 중3, 초6이라는 어린 나이에 아빠가 곁에 있어주지 못하고 주위의 따가운 시선과 눈총만 받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잘 자라준 아들과 딸, 자식에 대한 근심과 걱정으로 늙어가신 양가 부모님과 돌아가신 아버지께 죄송함과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아울러 고난의 시간을 잘 이겨내고 있는 전우들과 눈물의 세월을 함께 하시고 버티고 계신 우리 유가족들께 깊은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끝으로 천안함 유족과 장병들을 격려해 주시고 위로해 주신 국민들과 국군전우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한시도 잊은 적이 없는 그리운 하늘의 전우들이여! 이제는 평안히 함장을 기다리시오. 함장은 비록 군을 떠나지만 여러분의 영원한 함장으로서 천안함의 명예을 지켜 당당하게 다시 만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1년 2월 28일

천안함장 최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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