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스토리의 진격 >'한국적 소재' '신파 감성' '선구적 창작자'.. 세계를 사로잡다

김인구 기자 2021. 3. 2.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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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나리’.

<上> ‘미나리’ 골든글로브 수상… 세계 매료시킨 한국 스토리의 비결

① 한국적 소재

‘기생충’ 반지하 ‘킹덤’조선좀비

서구 팬에 호기심 불러일으켜

특유의 서민밀착 형식도 한몫

② 신파 감성

‘승리호’도 신파 비판받았지만

보편적인 공감 얻고 위로 선사

인물 간의 밀도있는 묘사 강점

③ 선구적 창작자

봉준호 감독 등 ‘대중+예술성’

김은숙 작가 등 상상력 탁월

국내 콘텐츠 제작 생태계 탄탄

영화 ‘미나리’가 제78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연이은 쾌거다. 한국에서 한글로 만들어진, 그래서 ‘내수용’일 수밖에 없었던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가 ‘자막 1인치’의 장벽을 넘어 전 세계로 뻗어가고 있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다.

이런 커다란 변화의 바탕엔 ‘K-스토리’라는 초석이 든든히 자리 잡고 있다. 왜 전 세계가 동북아의 작은 나라 한국에서 비롯한, 한국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것일까. 세계를 매료시킨 K-스토리의 힘은 무엇이고 어디에서 나오는지 2회에 걸쳐 살펴본다.

◇글로벌 시장에 등장한 새로운 스토리텔링

미국 할리우드는 몇 년 전부터 소재의 고갈이라는 벽에 부딪혔다. 월트 디즈니와 워너 브러더스 같은 대형 스튜디오가 1923년 창립한 지도 이제 98년. 1975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죠스’ 이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시대가 펼쳐지면서 ‘스타워즈’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어벤져스’ 등 최고의 시리즈가 탄생했다. 고대 신화와 전설부터 먼 미래의 우주전쟁까지 인간이 상상해온 온갖 판타지를 보여줬다. 그러나 점점 비슷한 작품이 많아졌고, 자기 복제가 심해졌다. 더 이상 새로움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때 등장한 게 서양에 대비되는 동양, 아시아다. 미국보다 오랜 역사, 다른 문화를 지닌 아시아의 면모는 그 자체로 할리우드에 전인미답의 보고나 다름없었다. 그중에서도 드라마와 영화, K-팝으로 널리 퍼진 한류를 기반으로 한 K-스토리가 대체재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5000년이 넘는 역사 속에 숨은 이야기, 남과 북으로 갈린 분단국으로서의 정체성, 압축성장이 만들어낸 선명한 계층 격차 같은 동시대의 문제들, 여기에 글로벌 밀레니엄 전환기에 급성장한 한국의 정보통신 테크놀로지에 힘입어 K-스토리의 매력이 더욱 커졌다.

한국 전통의 역사와 현대 좀비가 만나 ‘킹덤’으로 태어났다. 좀비는 서양에서 익숙한 소재였지만 한국의 조선 시대와 융합하면서 이전에 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액션 스릴러로 재탄생했다. 해외 팬들은 조선의 왕과 궁궐, 갓과 한복에 열광했다. 오직 K-스토리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강점이었다.

6·25전쟁 이후 짧은 시간에 현대화에 성공한 한국은 전통과 첨단이 공존하는 환경 속에 더 풍부한 소재를 생산했다. 전후 분단국이라는 불안한 정체성은 오히려 세계 유일의 독창성으로 승화해 ‘사랑의 불시착’으로 이어졌다. 어디서도 보지 못한 소재와 배경에 일본과 동남아 팬이 호기심을 나타냈다. 봉 감독의 ‘기생충’은 동시대 가장 첨예한 계층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면서도 이 문제의식을 드러낸 기존 서구 스토리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새로운 이야기를 던지고 있다.

예를 들어 서양 관객들이 주목한 ‘반지하’(Semi-basement)는 매우 상징적이다. 반지하의 풍경은 계층문제의 상징으로 담아내는 ‘문제적 공간’인 동시에 드넓은 미국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래서 신비한 공간으로 다가갔다. 지난해 2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현지 취재 당시 외신 기자들이 반지하의 개념과 저택의 벙커에 큰 관심과 놀라움을 드러낸 것은 이 같은 맥락에서 풀이될 수 있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형식적인 측면에서 한국의 이야기는 서구식 영웅담과 달리 서민 밀착적이면서도 역동적이다. 또 일본의 잔잔한 서사와 달리 강한 기승전결을 갖는다는 특징이 있다”면서 “내용 면에서는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동시에 구성원의 힘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는 가족 공동의 개념이 상대적으로 덜한 서양이 요즘 직면하고 있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방안과 위로를 한국적 이야기에서 찾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러니한 신파의 힘과 밀도 있는 감정선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서 고질적으로 반복돼 비판받고 있는 ‘신파’가 K-스토리 진격의 한 축이라는 사실은 꽤 아이러니다. 돌아보면 1000만 영화 중에 신파가 아닌 것이 거의 없었다. ‘7번방의 선물’ ‘국제시장’ ‘부산행’ ‘신과 함께-죄와 벌’ 등은 모두 눈물겨운 부성애, 끈끈한 가족애에 근거한 것이었다. 만약 ‘7번방의 선물’에서 어린 딸 예승이(갈소원)를 향한 아버지 용구(류승룡)의 무조건적 사랑을 빼면 뭐가 남을까. ‘부산행’에서 일에 파묻혀 있던 아빠 석우(공유)가 결국 딸(김수안)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헌신이 없었다면 가슴을 울릴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이 같은 대중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눈물 짜게 만드는’ 신파극은 가부장적 틀, 지나친 가족주의, 게다가 아버지가 딸을 구하는 남성 중심적 구조는 세상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에서 꽤 시대착오적이다.

하지만 이 ‘낡았다’고 생각한 것이 해외 팬들의 눈엔 오히려 새롭게 다가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사건과 액션에 치중하는 할리우드물에 지쳐 있던 팬들은 K-스토리의 신파, 깊은 감정선에 잊고 있던 위로와 안식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공개 직후 넷플릭스 영화 1위에 오른 ‘승리호’의 의미 있는 성공도 신파의 ‘글로벌 대중적 힘’을 보여준다. ‘승리호’는 빼어난 시각효과(VFX)와 배우들의 연기에도 불구하고 진부한 신파로 비판받았다.

하지만 국내 비판과 달리 해외 팬들은 오히려 몰입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가족을 구성하는 이야기를 관심 있게 지켜봤다는 것이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신파는 결국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두가 알고 느낄 수 있는 보편타당한 이야기이기에 뻔하다고 느끼면서 동시에 공감을 사게 된다. 여기에 인간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한국적 정서가 더해지며 전 세계 관객들에게 위로를 전할 수 있게 된 것”이라면서 “하지만 동시에 기존 신파의 소재를 넘어 전 세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이야기를 개발하려는 노력이 동반돼야 한다”고 충고했다.

여기에 밀도 있는 스토리와 뛰어난 감정과 감수성에서 오는 공감은 K-스토리의 또 다른 매력이다. 이주현 성균관대 글로벌융합학부(컬처앤테크놀로지 전공) 교수는 “한국 콘텐츠의 힘은 ‘밀도 있는 묘사’로부터 비롯된다. 등장인물 간의 관계, 주변 환경과 내면에 의한 미묘한 변화 등을 다른 어느 나라의 콘텐츠보다 잘 잡아낸다”며 “한국이 동일한 문화를 공유하는 단일민족이고, 남들의 시선과 관계에 신경 쓰며, 치열한 경쟁에 내몰린 고밀도 사회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인간의 관계와 감수성과 감정에 집중하는 스토리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성공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연금술사’의 작가 파울루 코엘류가 ‘나의 아저씨’를 언급하며 “와우! 16편을 다 견딜 수 있을까 싶었는데 (해냈다)”라며 “어디 한 곳 흠잡을 곳 없이 인간사를 아우르며 묘사했다”고 한 것은 K-스토리의 위력을 보여준다.

◇앞서가는 창작자들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이듯, 주옥같은 K-스토리 뒤에는 뛰어난 창작자들이 버티고 있다. 한국영화는 1990년대 호황 이후 수많은 ‘월드 클래스’ 감독을 배출했다. 봉준호를 비롯해 박찬욱, 김지운, 윤제균, 김용화, 연상호 감독 등은 작품성은 물론 예술성까지 인정받으며 K-스토리의 지평을 크게 넓혔다. 봉 감독은 힘 있는 스토리와 블랙 유머로 아카데미를 정복했다. 그는 ‘기생충’을 이을 차기작 2편을 준비하고 있다. 이 중 한 편은 시나리오 작업을 마쳤다. 김지운 감독은 영화 거장 스탠리 큐브릭처럼 모든 장르에서 팔방미인 같은 연출력을 보여줬다. ‘반칙왕’(코미디) ‘장화, 홍련’(공포) ‘달콤한 인생’(누아르) 등 매 장르에서 성공을 거뒀다. ‘해운대’와 ‘국제시장’으로 연이어 10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은 윤제균 감독은 가족 이야기의 외연을 넓혀 큰 그림에 담아내는 솜씨가 빼어나다. 연상호 감독은 ‘부산행’으로 K-좀비의 서막을 열었고, ‘신과 함께’ 시리즈와 시각효과 회사 덱스터를 이끈 김용화 감독은 한국 영화의 영상미를 한 발짝 발전시켰다.

드라마 시장의 ‘3대 여왕’으로 불리는 세 작가의 상상력 또한 전 세계를 사로잡고 있다. 김은숙 작가의 ‘미스터 션샤인’은 2018년 넷플릭스에 사전 판매되면서 K-드라마를 알릴 수 있는 새로운 길을 개척했고, 김은희 작가는 ‘킹덤’ 시리즈로 한국형 장르물도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수 있다는 걸 입증했다. 박지은 작가는 ‘사랑의 불시착’으로 한국식 로맨틱 코미디의 정점을 찍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넷플릭스 한국 및 아시아 지역 콘텐츠 담당 김민영 총괄은 “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한국 콘텐츠의 위상이 높아졌음을 실감한다”면서 “국내 업계 생태계가 탄탄하고, 훌륭한 감독·작가가 많아서 다양한 스토리가 나온다”고 말했다.

김인구·안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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