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마음을 성적 쾌락에 이용하는 나쁜 어른을 알아볼 수 있도록[플랫]

플랫팀 기자 twitter.com/flatflat38 2021. 3. 2.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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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우리 집의 열 살과 열두 살 두 아이는 그림책을 읽어주던 시기에서 벗어난 뒤 스스로 책을 선택하는 일이 많아졌다. 책 한 권이 재미있으면 작가의 이름을 검색해서 도서관에서 그 책을 모조리 빌려오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책을 읽고 나면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을 신나게 말해주기도 한다. 아이에게 책에서 일어나는 일은 머릿속에서 ‘진짜 세상의 모습’으로 자리 잡은 것처럼 보인다. 아이는 책을 쓴 사람을 존경하고 어린이를 위해 재미있게 책을 써준 어른을 쉽게 믿는다. 아이는 책을 재미없어하거나 재미있어하는 선택은 할 수 있지만 그것이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올바른’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은 아직 할 수 없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책을 줄 때 이미 해야 할 일이지 아이가 판단하여 선택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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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책을 ‘종이 거울’이라고 말한다. 책은 읽는 사람 자신을 비춘다. 책 속에 나오는 인물의 마음이나 행동을 보며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등장인물의 감정을 함께 경험하게 된다. 한편 책은 세상을 비춘다. 어른들에 비해 사회적인 경험이 부족한 아이들은 책을 읽으면서 또래의 등장인물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며 세상을 살아나가는 방법을 알게 되기도 한다. 물론 그것은 비단 책뿐 아니라 아이가 보는 드라마, 영화 등 수많은 미디어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미디어와 달리 책읽기는 굉장히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활동이며 인지적인 노력이 많이 드는 일이다. 미디어에 나오는 인물은 시선을 떼지만 않으면 저절로 움직이는 반면, 책에 나오는 인물은 읽는 사람이 ‘읽으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전혀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책읽기는 머릿속에서 좀 더 많은 다양한 사고와 상상이 더해져서 읽는 사람의 머리와 마음속 깊이 ‘내면화’되기 더 쉽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어린이가 아닌 어른이면서 감히 어린이의 마음에 가 닿고자 하는 어린이책 작가들은 어린이들이 좋아할 수 있는 글에 대한 고민과 함께 어른으로서 내 삶에 대한 책임감 또한 무겁다. 혹시라도 내가 어린이를 잘 모르거나 어린이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닌지, 내 글 어딘가에 어린이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 있지는 않은지, 어린이의 삶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인지 끊임없이 성찰하는 것이 일반적인 어린이책 작가의 태도일 것이다. 그러므로 어린이책 작가인 한예찬씨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몹시 충격적이며 그의 책을 금지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예찬 작가가 쓴 많은 책에 나오는 주인공은 10~11세 여자 아동이고 당연히 이 책을 읽는 독자도 또래 어린이들이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어른과 주인공의 로맨스를 아름답게 그린 책을 읽으며 아이들은 그러한 ‘그루밍 범죄’에 해당하는 서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물론 이 세상 많은 책 속에는 사회적으로 ‘올바른’ 내용만이 나오지는 않는다. 어린이문학에는 어른들에게 반항하고 대립하고 사건을 저지르는 수많은 아이들이 있다. 하지만 그 책을 읽으며 어린이들이 경험하는 것은 억눌린 어른들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감정을 해소하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힘이지, 결코 어른들의 범죄를 그럴듯하게 포장하거나 당연시 여기도록 하는 은밀한 주입은 아니다.

어린이책이 다양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수많은 아이들이 책에 자신을 비추어보며 다채로운 삶을 경험하면 좋겠다. 등장인물들과 함께 여러 가지 감정을 겪으며 시야를 넓히면 좋겠다. 하지만 아이들이 어른들이 어린이의 마음을 이용해 성적인 쾌락을 얻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책을 읽어서는 안 된다. 설령 아이들이 그런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그것이 범죄임을 바로 알 수 있는 책을 읽어야만 할 것이다.


장희정 어린이 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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