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전국민 천원씩 1억원 협박이 관객 관심 끌지 못한 이유

듀나 칼럼니스트 2021. 3. 2. 14:4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고백', 조금 더 치밀했다면 그 결과도 더 좋았을 터인데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영화 <고백>의 감독 서은영의 전작 <초인>을 재미있게 본 기억이 난다. 청소년을 다룬 최근의 영화들과는 달리 비폭력적이고 따뜻한 접근법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도서관과 책을 진지하게 다룬 드문 한국 영화이기도 했다. 영화나 드라마 속 한국 사람들은 책에 대해 거의 이야기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협찬 받은 이상한 에세이 책에 괴상하게 과몰입하거나 둘 중 하나인데, <초인>은 달랐었다. 진지하고 성실했지만 소재의 무게에 치이지 않는 작품이기도 했다.

차기작 <고백>도 냉소 없이 진지하고 성실한 작품이다. 단지 영화가 다루는 소재는 <초인> 때보다 훨씬 절실하고 어두우며 이를 다루는 방법도 직설적이다. 아동 대상 폭력이 중심에 있고 스토킹, 학교 폭력 등이 주변에 펼쳐져 있다.

주인공은 두 명이다. 박하선이 연기하는 오순은 사회복지사로 폭력적인 아버지에게 학대당하는 여자아이 보라(감소현)를 지키려고 한다. 하지만 법의 테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고 오순은 점점 정신적으로 위태로워진다. 하윤경이 연기하는 지윤은 열성적인 신입 경찰로, 우연히 만난 오순에게서 수상쩍은 기운을 읽는다.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연결하는 것은 예고편에도 나오는 유괴사건으로, 유괴범을 자처하는 이 인물은 모든 국민이 천 원씩 계좌로 보내 일주일간 1억 원을 채우지 않으면 자신이 유괴한 여자아이를 죽이겠다는 편지를 언론사에 보낸다.

<초인> 역시 반전과 미스터리가 있는 영화였지만 <고백>은 그 때와는 달리 정통추리물이다. 그리고 이 영화의 가장 큰 약점은 이 장르를 아주 능숙하게 다루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도입부의 유괴사건을 보자. 두 주인공을 연결하고 주제를 꾸준히 상기시키며 후반 반전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부분이지만, 관객들은 곧 이에 대한 관심을 잃는다. 유괴사건은 관객들이 아이의 안전을 걱정할 때에만 집중력이 있는데, 일단 아이가 화면에 나오지 않고, 이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확신도 없다. 이 영화에서 관객들이 걱정하는 아이는 보라뿐인데, 이 아이는 끔찍한 위험에 빠져 있지만 적어도 유괴사건 때문에 다치지는 않을 것 같다. 영화 전체를 지탱하는 유괴사건이 이렇게 약하다면 구조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나머지 부분들도 느슨한 편이다. 두 주인공과 관련된 초반 이야기를 끌고 가기 위해 영화는 서술 트릭을 시도하고 있는데 이게 아주 자연스럽게 붙어 있지 않다. 사건의 진상이 밝혀진 뒤에는 뭔가 해결되었다는 느낌이 드는 대신 어리둥절해진다.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훨씬 쉬운 방법이 있는데, 이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은 오히려 일을 만들면서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종종 사람들은 비논리적으로 행동한다. <고백>에서 일어나는 일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하지만 추리물에서 관객과 독자들은 보다 논리적인 행동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장르물로서 영화는 두서없고 흐릿하며 정돈되어 있지 않다.

이 정돈되지 않은 느낌의 일부는 영화의 장점과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고백>이라는 영화의 스토리가 유려하게 흐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이 영화가 다루는 이슈가 결코 쉽게 정리되거나 해결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기 때문이다.

두 주인공들은 모두 일 때문에 마주치는 폭력과 공권력의 무능함에 분노한다. 척 봐도 힘 없는 아이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끔찍한 어른들이 있고 이들을 처벌하면 속 시원한 '사이다' 결말을 맞을 것도 같다. 하지만 영화 <고백>은 그 어떤 것도 그렇게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영화의 가해자들은 길게 연결되는 사슬 중간에 있는 피해자이기도 하다. 보라를 티끌 하나 없는 가련한 피해자로 묘사하면 모든 게 쉬워지겠지만 영화는 보라 역시 그 어두운 상황 속에서 가해자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 정신적 상흔 때문에 종종 폭주하는 오순 역시 완벽하게 결백하지는 않다. 장르 액션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상처받고 일그러진 남자 주인공이 더 나쁜 악당들을 쓸어버리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건 사이다 폭력의 핑계일 뿐이고, 이를 통해 해결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사방이 꽉꽉 막힌 갑갑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영화는 출구를 찾는다. 단지 이 출구는 '아동폭력범 척결'에서 멈추는 대신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진실을 똑바로 바라보고 이를 하나씩 정리하는 어려운 길을 택한다. 추리물은 이 주제를 살리는 이상적인 도구였다. 조금 더 치밀했다면 그 결과도 더 좋았을 것이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고백>스틸컷]

Copyright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