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로 수감됐던 오스카 와일드, '깜짝 벽화'로 나타났다?

김재현 기자 2021. 3. 2.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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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된 감옥에 밤사이 깜짝 벽화가 등장했습니다. 현지시각으로 1일 아침, 영국 남부 버크셔에 있는 레딩 감옥의 붉은색 벽돌 벽에 검은색과 흰색, 회색으로 그려진 낙서가 발견된 건데요. 줄무늬 죄수복을 입은 죄수가 매듭을 묶은 침대보에 매달려 감옥을 탈출하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현지시각 1일, 영국 버크셔 레딩 감옥(HM Prison Reading) 벽에 탈옥하는 죄수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사진=로이터〉
BBC에 따르면, 누가 그렸는지 확실치 않지만 그림 스타일을 볼 때 "새로운 뱅크시의 작품일 것"이란 추정이 나오고 있습니다. 뱅크시는 영국을 기반으로 신원을 밝히지 않고 그라피티 작업 등을 하면서 '얼굴 없는 작가'로 알려져 있는데요, 세계 곳곳의 거리, 벽, 다리 등에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낙서를 그리고 사라지는 걸로 유명합니다. 지난해 런던 지하철에는 '마스크 낙하산을 탄 쥐' 등을 그려 방역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보통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작품 사진을 찍어 올려 자신의 작품이라고 알리는데, 지난해 12월 마지막으로 작품을 올린 이후로 공식 활동은 없습니다.
'얼굴 없는 작가' 뱅크시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작품들. 위 두 작품은 런던 지하철에 그린 '재채기하는 쥐''마스크 낙하산을 쓴 쥐' 그림으로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탈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사진=뱅크시 인스타그램〉
이번 벽화를 가만히 보면 죄수가 매달린 침대보 끝에는 타자기와 타이핑된 종이가 연결돼 있습니다. 외신들은 이 죄수가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를 나타낸 거라고 보는데요. 실제로 와일드는 1895년부터 2년간 이 감옥에 수감됐습니다. 귀족인 알프레드 더글러스 경과의 동성애가 알려진 뒤 사회적으로 많은 비난을 받았고, 외설(Gross Indecency)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고 복역하게 된 겁니다.

와일드는 감옥에서 나온 뒤 자신의 수인번호 C.3.3.를 필명으로 〈레딩 감옥의 노래(The Ballad of Reading Gaol)〉라는 책을 냅니다. 감옥에서 겪은 고된 노동과 고립된 생활, 그리고 수감 동료가 교수형에 처해지는 내용을 담은 시들로 형벌이 인간에게 얼마나 가혹한지를 이야기하는데요. 그래서인지 타자기를 통해 탈출하는 이 벽화를 놓고 한 갤러리 관계자는 BBC와 인터뷰에서 "유머러스하면서도 정치적으로 신랄하다"고 평가했습니다.

레딩 감옥은 2013년 폐쇄됐고 지난해부터는 예술 공간으로 전환하려 하고 있습니다. 인근 지역 극단의 관계자는 "뱅크시가 레딩 감옥의 문화적 중요성을 알아차린 것은 놀랍다"며 한때 억압과 단절의 상징이던 이 감옥이 "수용과 다양성의 가치"를 보여주길 기대했습니다. 벽화가 등장한 첫날부터 레딩 감옥은 이를 감상하고 사진을 찍는 주민들로 붐볐습니다. 이번에 등장한 '깜짝 벽화'가 뱅크시의 진짜 작품인지 아닌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만, "'자기애'야말로 평생의 로맨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던 오스카 와일드의 비범한 생애를 다시금 상기시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현지시각 1일, 영국 버크셔 레딩 감옥(HM Prison Reading) 인근 주민들이 벽화를 감상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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