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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 화마로 '30여년 화업' 타버렸지만 그림으로 회생했어요"

김경애 입력 2021. 03. 02. 22:06 수정 2021. 03. 11.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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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짬] 세번째 개인전 여는 김종숙 화가

‘속초 화가’ 김종숙씨가 2일 서울 평창동 금보성아트센터에서 막을 연 세번째 개인전에서 대작 ‘용암’을 배경으로 섰다. 금보성아트센터 제공

“화재 사고 2년 만에 전시회를 한다고 하니까, 다들 묻더군요. 어떻게 그렇게 빨리 회복했느냐고. 생각해보니, 아들(하하)의 한 마디 덕분이었어요. ‘화가가 살아있으니 됐잖아, 그림은 다시 그리면 되잖아’. 그래서 그날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붓을 들었어요.”

새봄을 맞아 2일 세번째 개인전을 시작한 ‘속초 화가’ 김종숙(56)씨는 지난 1일 전시작품 45점을 싣고 강원도 고성 집에서 서울로 오는 길이라며 전화를 받았다. 평소 차분한 그답지 않게 목소리엔 설렘이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전시는 두 차례나 ‘돌발사태’로 연기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전시 제목 ‘러빙 속초 버닝 속초’도 예사롭지 않다. 도대체 지난 2년새 화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2019년 강원 고성 산불때 자택 전소
2년 준비한 전시작품 40여점 비롯
평생 소장해온 초기작·드로잉북도

“살았으니 다시 그려요” 아들 위로
이웃·숨은 팬들까지 전국서 ‘온정’
“작품으로 보답하고자 오직 그렸죠”

산불 사고 이전인 2018년 7월 김종숙(맨 왼쪽) 화가가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인흥리에 자리한 집과 작업실을 지인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김경애 기자
2019년 4월4일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인흥리 김종숙 화가의 집은 인근에서 처음 발화한 불씨가 강한 팬현상을 타고 날아와 뼈대만 남긴 채 전소했다. 김종숙씨 제공

“그날도 언제나처럼 혼자 집에서 내내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배가 고팠지만 대작 하나를 마무리하자는 욕심에 참고 그리던 중이었는데 조카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어요. 불길이 번지고 있으니 빨리 피하라고요.”

김 화가가 회상하는 그날은 바로 2019년 4일4일, 축구장 1700여개 넓이인 산림 1227㏊를 잿더미로 만들고 2명의 사상자와 1366명의 이재민을 발생시킨 2019년 강원도 고성·속초 산불 사고가 터진 날이었다. 그때 그의 집은 그날 오후 7시17분께 처음 발화한 지역인 고성군 토성면 인흥리에 있었다. 뒤뜰은 야트막한 야산에 싸여 있고 앞마당에 서면 동해 바다가 시선에 들어오는 해변에 자리했으나, 태풍 같은 강풍을 타고 춤추듯 날아든 불덩어리에 조립식 단층 주택 전체가 순식간에 타버렸다. 셋집이나마 생애 처음으로 작업실이 따로 있는 넓은 집이었다. 2018년 여름 방문했을 때, “대작도 마음껏 그릴 수 있어 좋다”며 뿌듯해했던 집이었다. “간신히 몸 만 빠져 나와서 뒤돌아봤을 땐 이미 속수무책이었어요. 그때 심정이요? 눈물도 나오지 않았어요. 그저 멍했죠.”

그날의 참상에 대한 증언은 이번 전시 제목을 지은 박인식 작가 겸 평론가의 글이 훨씬 생생하다. 2015년 ‘30년 은둔 속초 화가’를 발굴해 첫 전시 때부터 기획과 작품 해설을 도맡아 해온 그는 2019년 6월로 예정된 김 화가의 세번째 개인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해 2019년 3월말 나는 ‘중독의 땅’ 속초행 버스에 올랐다. 새로 마련한 그의 작업실에서 세번째 개인전에 선보일 신작 속에 둘러싸인 나는 이미 근원을 알 수 없는, 마약과 같은, 그의 속초 사랑에 중독되어 ‘우리는 이미 속초다!’라고 다시 선언하고 있었다. 2017년 두번째 전시 이후 2년 사이 그는 진정의 절정에 오른 기량으로 자신만의 속초사랑의 모든 것을 불살라 150호 대작 ‘속초 연작’ 4점을 비롯해 40여점의 전시 작품을 빚어 놓았다.”, “그러나 누가 운명의 앞날을 알 수 있으랴. 그로부터 불과 닷새 뒤인 2019년 4월4일 밤, 그 산불이 났다. 몸만 간신히 빼내 내 달리는 그의 뒤로 작업실은 불타오르는 게 아니라 포탄 맞아 폭파되는 듯 눈 깜박할 새 화염에 휩싸였다. 불길이 진화되고 잿더미뿐인 현장을 바라보는 그의 허망을 나는 살아 숨쉬는 사람의 말로는 상상할 수 없다.”

그날의 화마는 전시할 작품 만을 태운 게 아니었다. 오로지 그림 만을 위해 살아온 지난 30여년 분신 같은 수백 점의 작품을 남김없이 없애버렸다. 첫 전시 때 ‘뜻밖의 완판’으로 작품을 모두 떠나보냈던 그는 두번째 전시 때는 여러 작품에 미리 ‘비매품’ 딱지를 붙여 집에 소장해 두기도 했단다. 특히 김 작가는 가장 애착을 갖고 오래 전부터 소장해온 50여 점의 원화를 안타까워했다. 그중에서도 ‘글과 그림 동호회’에서 함께 활동해온 박기범 작가의 동화 <그 꿈들>에 쓴 삽화들은 “작품의 진정한 주인인 이라크 아이들에게 되돌려주겠다”며 물감 살 여유도 없을만큼 어려웠던 무명 시절에도 고스란히 간직해왔던 그였다.

“전시 기획자로서 내가 가장 아깝게 여기는 것은 김 화가가 일찍이 중국·티베트·인도 등지를 방랑하며 드로잉한 일곱권 가량의 스케치북이에요. 작가의 필력과 내공을 한눈에 가늠케 했던 그 드로잉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소중한 작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보증서였기 때문이죠.”

박 작가는 “늘 그의 드로잉 만으로 벽면을 꽉 채우는 전시회를 꿈꾸고 있었는데…”라며 애석해했다.

김종숙 화가의 세번째 개인전 포스터. 제목 ‘러빙속초 버닝속초’는 고성 산불 사고를 연상시킨다. 더불어 전시 기획자 박인식 작가의 시집 <러빙 고흥 버닝 고흐>와 닮았다. 전시 기간은 애초 3월9일까지였으나 3월말까지로 연장됐다.

하지만 정작 김 화가는 이미 초탈한 듯 이번 전시를 통해 ‘재기와 회생과 희망’의 기운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선·후배 화가들의 권유로 화재 사고 원인을 제공한 한전을 상대로 제기한 미술품 손해배상 소송은 지지부진한 상태이고, 전셋집은 계약서도 없이 살았던 까닭에 아예 보상 받을 근거도 없다. 하지만 그는 언니네 빈 집에서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것 만으로도 다행스러울 뿐이다.

“너무나 많은 분들이 도움의 손길과 위로를 보내주셔서, 절망이나 낙담할 겨를조차 없었던 것 같아요. 이웃들은 물론이고 숨은 팬들이 무척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 온정에 보답하는 길은, 내가 잘 할 수 있는 그림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리고 또 그리고…그랬더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더라고요.”

이번 전시에 그는 화재 사고 직전 마무리했던 대작 한 점을 다시 그려 주제작 ‘용암’으로 내걸었다. 이어 ‘속초 화가’로 불리게 해준 ‘명태’ 등 속초 앞바다 물고기들, 작업실 앞마당에 피었던 꽃과 연잎들, 그리고 거리와 어판장에서 함께 일했던 속초 사람들의 초상과 노동하는 손까지, 자신의 작품세계를 복기한 듯 파노라마처럼 펼쳐놓았다. 금보성 아트센터 (02)396-8744.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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