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 이윤화의 오늘 뭐 먹지?]제주해녀 닮은 뿔소라.. 공연 보며 음식 나누는 '창고 다이닝'의 참맛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음식을 만드는 공간에서 여러 번 파티를 개최한 적이 있다.
평소 대량으로 음식을 준비하는 무미건조한 작업장이었지만 파티가 열릴 때는 특별한 다이닝 장소로 변신했다.
해녀들이 채취한 해산물을 공연과 접목해 음식으로 전달하는 방식이 무척 신선하다.
이러다 특정 공간에서 즐기는 음식의 감동이 가볍게 치부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들 때도 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제주에 갔다가 특별한 창고 파티를 경험했다. 제주 동쪽 끝에 있는 ‘해녀의 부엌’이라는 곳이다. 공연을 보고 식사를 하는 극장식 다이닝이었다. 열 살 때부터 우영밭(제주 방언으로 텃밭)의 박을 따서 속을 파내고 퐁당퐁당 물질 연습을 해온 권영희 할머니는 89세임에도 현역 해녀로 활동하고 있다. 식사 전 공연에서는 20대에 남편을 잃고 5남매를 키운 권 할머니의 해녀 인생을 그린 단막극이 펼쳐졌다. 공연 막바지에 할머니는 고객 테이블 사이를 느릿느릿 걸어 무대 앞으로 나온다. 그리고 무대 위에서 본인 역할을 한 ‘젊은 권영희’에게 말을 건네며 막이 내린다. 공연 후 권 할머니를 비롯한 해녀들이 따온 해산물과 해초로 구성된 메뉴가 펼쳐진다.
일반적인 소라와 다르게 제주 현무암에 박혀 있다 보니 뿔이 많이 생긴 뿔소라가 인상적이다. 뿔소라를 수조에 담가 두면 뿔이 점점 없어져 보통 소라처럼 된다고 하니, 강인하게 거센 자연에 맞서 견뎌온 세월의 증거를 제 몸에 두른 소라는 제주 바다에서 생존하는 해녀의 강건함에 비유되곤 한다. 즉석에서 짠 감귤주스, 우뭇가사리, 뿔소라와 적해삼, 고장초(해초)가 전채 요리로 등장한다. 거기다 뿔소라꼬치구이, 뿔소라미역국도 맛보게 된다. 바다 생물 군소는 해초를 뜯는 모습이 뭍의 검은 소가 풀을 뜯는 모습과 유사하다 하여 군소라 불렸다고 하는데 고급 능이버섯 식감을 연상케 한다.
식사의 감동이 끝날 무렵, 권 할머니가 옛이야기를 들려준다. 옛날에는 얇은 무명천 해녀복을 입고 물질을 했는데 30분 남짓 물질한 뒤 1∼2시간 몸을 녹여야 체온이 돌아왔다고 한다. 듣고 보니 이곳 음식 하나하나가 결코 예사롭지 않다. 바다가 해녀들의 부엌이라는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해녀의 부엌을 만든 김하원 씨도 만났다. 해녀 집안에서 성장한 제주 출신으로, 예술대학에서 공부한 젊은 대표다. 해녀들이 채취한 해산물을 공연과 접목해 음식으로 전달하는 방식이 무척 신선하다.
최근 코로나19로 외식의 형태가 배달로 재편되면서 외식업 종사자들은 본인의 음식이 배달 방식으로 바뀌지 못할까봐 조바심을 내기도 한다. 이러다 특정 공간에서 즐기는 음식의 감동이 가볍게 치부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들 때도 있다. 이런 시기에 제주에서 만난 창고 다이닝은 공간의 매력과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의 힘이 무한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니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할 뿐이다.
이윤화 음식평론가·‘대한민국을 이끄는 외식 트렌드’ 저자 yunaly@naver.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中인민검찰원-日帝 특별경찰 연상시켜”…‘중수청’ 검사 반발 확산
- 檢 “수사권 박탈땐 권력비리 무죄 속출” 與에 직격탄
- 윤석열의 마지막 전쟁? 檢수사권 대국민 여론전 뛰어들다
- 윤석열, 수사청 반발…“검찰 안굽히자 포크레인 끌고와”
- 靑, 윤석열 중수청 반대 의사 표명에…“국회 절차에 따라 의견 개진해야”
- LH직원들, 광명시흥 신도시 발표전 100억대 투기 의혹
- 檢 ‘김학의 불법출금’ 관련 차규근 출입국본부장 구속영장 청구
- 檢, ‘김학의 불법출금 의혹’ 사건 이르면 이번주 공수처로 이첩
- “윤석열, 3월이 결정적 순간” 김종인이 언급한 ‘별의 순간’ 오나
- 尹 중수청 반발에…맞대응 자제하는 與 속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