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 생존 몸부림 "지원서만 내세요, 100% 합격 보장"

곽수근 기자 입력 2021. 3. 3. 03:01 수정 2021. 3. 3.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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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우석대는 지난달 이색적인 추가 모집 공고를 냈다. “수능 미응시자도 지원할 수 있고 신청하면 합격률 100% 보장한다”는 내용이다. 고교 졸업장만 있으면 다 받아준다는 식이다. 신입생 지원자가 정원에 300명 가까이 모자라자 고육책을 내놓은 것이다. 지난 1월부터 2월 말까지 6차례 추가 모집을 했지만 결국 정원을 다 채우지도 못했다. 270여 명이 미달된 채 새 학기를 시작해야 했다. 우석대 관계자는 “미달을 최대한 줄이려고 갖가지 아이디어를 냈지만 효과가 별로 없었다”며 “앞으로 학생 수가 더 줄어들 텐데 막막하다”고 했다.

수능 미응시자까지 추가 모집하는 지방대

이처럼 ‘원서만 내면 합격하는’ 대학은 우석대뿐이 아니다. 올해 부산과 충북, 대전 등 전국 지방대 곳곳에서 이렇게 ‘무조건 오기만 하면 받아준다’는 문구를 내걸고 추가 신입생을 모집했다. 학령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벼랑 끝에 몰린 지방대들의 현실이다. 그냥 ‘돈만 주면 가는 대학’을 넘어 이젠 ‘돈도 받고 가는 대학’도 늘고 있다.

우석대는 추가 모집에서 전원 50만원 현금 지급을 약속했고, 체대는 실기 시험 없이 입학할 수 있다고 했다. 부산 신라대는 미달 인원 495명을 채우기 위해 수능 미응시자 지원은 물론, 1년 학비 면제에 전과(轉科) 100% 보장을 내걸었다. 토익 수강비 지원, 국가고시 도서비 지원 등 250만원 상당 장학 패키지 제공도 내세웠다. 이런 노력도 무색하게 올 신학년 정원을 채우지 못해 개강 2~3일 전까지 추가 모집한 전국 대학은 130교, 미달 인원은 약 1만명에 달했다.

올해 전국 지방대학은 초유의 정원 미달 사태 속에 1학기 개강을 맞았다. 앞서 지난달 19일 마감한 정시모집 등록에서 정원을 채우지 못해 전국 162교가 2만6129명 추가 모집에 나섰다. 수험생들이 최대 3회까지 지원 가능한 정시와 달리 추가모집은 많은 대학에 두루 지원해도 된다. 또 수능 100%로 뽑든 학생부 100%로 뽑든 제한이 없어 수능을 치르지 않은 학생들을 뽑는 대학들도 많다.

수능 지원자가 49만3000여명으로 역대 최저였던 2021학년도 입시의 경우, 추가모집 규모가 급증해 미달 대학이 많게는 6차, 7차까지 추가모집에 나섰지만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전국적으로 미달 인원이 1만명 안팎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종로학원하늘교육이 각 대학 추가 모집을 집계한 바에 따르면, 지난달 27일에 마지막 추가 모집 지원 현황을 공개한 92개 대학 평균 경쟁률은 0.17대1에 불과했다. 1만1879명을 추가 모집했지만 지원자는 1983명에 그쳤다. 지방 거점 국립대 가운데 일부 캠퍼스에서도 대규모 미달이 잇따랐다.

지방 사립대들은 올해 학령 인구 감소의 심각성을 실감했다고 했다. 신입생을 한 명이라도 더 모으려고 온갖 방법을 썼지만 미달을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3차 추가 모집에서 146명을 뽑겠다고 밝힌 동명대는 등록생 전원에게 100만원을 학업 장려금으로 지급하겠다고 밝혔지만, 당시 지원자가 15명에 그쳤다. 4차까지 추가 모집한 선문대도 추가 모집 장학금 50만원 지급을 내걸었지만 미달을 막지 못했다. 목원대는 수능 미응시자도 받고 첫 학기 등록금 전액 지원에 아이팟 최신 기종을 준다고 했지만, 추가 지원자가 20명이 채 안됐다. 극동대도 수능 점수가 없어도 받아준다고 했지만 정원보다 지원자가 200명 이상 적었다. 신라대는 해외 연수든 국가고시 준비든 학생이 원하는 쪽으로 250만원 상당 비용을 지원하겠다고 내걸었지만 마찬가지였다. 이 학교 관계자는 “올해 학생들이 너무 줄어서 장학 혜택을 많이 늘렸는데 소용 없었다”며 “인구가 줄어드는 게 무섭다는 걸 느끼고 있고 극복하기 어려운 상황에 교직원 모두가 너무 힘들어하고 있다”고 했다. 전북의 한 대학 관계자는 “수도권 대학 정원을 대폭 줄이지 않으면 지방대학은 살아남을 수 없다”며 “대책이 시급하다”고 했다.

지방대 미달 사태가 확산되면서 학부모 카페 등에서는 “반드시 서울 소재 대학에 가야 한다”는 의견이 잇따르고 있다.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지방 대학에 가면 안 된다는 것이다. 대학 신입생 아들을 둔 충북의 한 학부모는 “지방 국립대를 빼고 집 근처 사립대는 죄다 미달이었고, 수능 안 본 사람도 검정고시 본 사람도 아무나 들어갈 수 있었다”며 “서울권 대학 못 가면 아무 소용도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추가모집에서 수능 8등급 성적으로도 합격하는 사례가 나오자 입시 체계가 사실상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지방대 붕괴가 눈앞으로 다가왔다고 지적한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가속화된 인구 감소 때문에 지방대는 이제 누구나 갈 수 있는 대학이 됐다”며 “서울로 몰리는 현상이 심화돼 지방대 존립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했다.

정부와 대학이 구조 조정에 무심해 예고된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정부 들어 대학 정원 감축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 걷잡을 수 없는 위기에 놓이게 됐다는 것이다. 2014~2017년 대학구조개혁위원장을 지낸 백성기 전 포스텍 총장은 “A~E등급으로 평가한 결과에 따라 하위 대학들 정원을 감축하고 재정지원을 제한했던 정책이 이번 정부 출범 이후 느슨하게 대응하며 주춤해 대학 구조조정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라고 했다. 김희삼 광주과기원 교수는 “무조건 뽑아주는 대학들 정원 감축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며 “지역 산업체와 연계한 평생교육기관으로 전환할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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