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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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의 진보 청구서 AOC[글로벌 이슈/하정민]

하정민 국제부 차장 입력 2021. 03. 03. 03:01 수정 2021. 03. 03. 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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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 제로(0), 부유세 등 강경 진보 정책을 주창하며 공화당은 물론이고 민주당 내 온건파, 백악관과도 날을 세우고 있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 사진 출처 AOC 인스타그램
하정민 국제부 차장
세계 최고 권력자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중간이름이 ‘로비네트’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미 언론이 그를 이름 약자인 ‘JRB’로 부르지도 않는다. 대문자 이니셜로 불리는 정치인은 전무후무한 4선 대통령인 프랭클린 델라노 루스벨트(FDR), 젊은 대통령의 기수로 꼽히는 존 피츠제럴드 케네디(JFK) 정도다. 미 전역의 도로 다리 공항 등에 ‘FDR’ ‘JFK’ 이름이 붙은 것은 미 사회에서 차지하는 둘의 위상을 보여준다.

이를 감안할 때 미 언론이 집권 민주당의 푸에르토리코계 신예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뉴욕)을 이름 약자 ‘AOC’로 부른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19년 1월 워싱턴 중앙정계에 입성한 32세 재선 의원이 유명 대통령에 맞먹는 급으로 대우받는다고 볼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 AOC의 힘은 소셜미디어에서 나온다. 트위터 추종자만 1260만 명에 인스타그램(890만 명), 페이스북(176만 명)까지 더하면 몰고 다니는 사람만 2326만 명. 1월 출범한 117대 미 하원의원 435명 중 이 정도의 인지도와 유명세를 보유한 사람은 없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에서 18∼24세 유권자로부터 65%의 높은 지지를 얻은 것도 AOC 같은 젊은 진보 성향 의원의 바이든 지지에 기인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자금 동원, 의제 설정 능력도 뛰어나다. 지난달 ‘사막의 땅’ 텍사스에 유례없는 한파가 몰아쳐 주 전체가 마비됐다. 불과 4일 만에 소셜미디어를 통해 470만 달러를 모았고 현지로 날아가 생필품을 나눠줬다. 보수 텃밭인 텍사스가 지역구인 공화당 중진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이 멕시코 휴양지 칸쿤 여행을 다녀온 것과 대조적이었다. ‘바이든 행정부도 주정부도 못한 일을 AOC 혼자 했다’는 호평이 나왔다.

백악관을 향해서도 부쩍 날을 세운다. 최근 바이든 행정부가 멕시코 국경지대에 13∼17세 불법이민 청소년 700명을 수용할 캠프를 재개관하자 그는 “어떤 행정부와 정당에서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며 즉각 폐쇄를 주문했다. 대선 때는 열악한 시설과 인권 침해로 비판받은 불법이민자 캠프를 없앤다더니 집권 후 돌변했다는 힐난이다. 공화당은 물론이고 민주당 내 일각에서도 반대해 의회 통과 여부가 불투명한 최저임금 인상안은 “무제한 토론에 따른 의사진행 방해(필리버스터)라도 해서 반드시 관철시키겠다”고 벼른다. 본인의 멘토인 ‘진보 대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당초 하마평과 달리 바이든 행정부의 노동장관 등에 기용되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한다.

당내 보수 성향 의원에 대한 비판 수위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공격할 때 못지않다. 낙태를 반대하고 총기 소유를 지지하는 조 맨친 상원의원(웨스트버지니아)이 최근 원주민 출신 데브 할런드 내무장관 지명자, 인도계 니라 탠든 백악관 예산관리국장의 진보 성향을 문제 삼아 인준에 반대할 뜻을 밝히자 70대 백인 남성 맨친이 유색인종 여성에게만 가혹한 잣대를 들이댄다며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냐는 취지로 비판했다.

그의 보폭이 넓어질수록 머리가 아픈 쪽은 백악관이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상원 100석을 꼭 50 대 50으로 나눠 가진 상황이라 당내 갈등이 커질수록 가뜩이나 더딘 내각 인준이 더 늦어지고 경기부양안 같은 핵심 정책의 통과도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1일 진보 노장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위헌 논란이 있고 실현 가능성도 낮은 부유세 법안을 발의하며 AOC 하나로도 버거운 백악관에 또 부담을 안겼다. 애초부터 반(反)트럼프 외에 공통점이 없는 양측이 잘 지내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허상에 가깝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들 진보파가 막후 타협, 주고받기 등 현실정치 문법을 거부한 채 ‘모 아니면 도’를 외친다는 점도 44년간 상원의원과 부통령을 지내며 워싱턴 정계에서 잔뼈가 굵은 새 대통령을 곤혹스럽게 한다. 미얀마 이란 중국 등 대외 문제가 산적하고 여전히 보수 유권자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상대하는 일도 힘에 부치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진정한 시험대는 나라 밖도, 상대편도 아닌 집 앞마당에 있는 듯하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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