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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자박자박 소읍탐방] 하늘에서 거대한 불덩이가..5만년 비밀 벗은 별똥별 마을

최흥수 입력 2021. 03. 03. 04:30 수정 2021. 03. 03.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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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합천 초계·적중면 초계분지와 옥전고분군
합천 초계면과 적중면은 둥그렇게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이다. 한국지질연구원은 지난해 시추 조사를 통해 5만년 전 거대한 운석이 충돌하면서 이렇게 독득한 지형이 형성됐다고 밝혔다.

우주의 비밀이 하나씩 밝혀질 때마다 신비의 영역은 그만큼 줄어든다. 달에 계수나무가 자라고 토끼가 떡방아를 찧는다는 이야기는 이제 유치원생에게도 먹히지 않는다. 꿈 하나가 사라진다. 대신 그 아이들은 화성에서 살 수도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꿈꾼다. 지난달 미국의 탐사로버 퍼시비어런스가 화성에 착륙하는 순간을 담은 동영상은 과학을 모르는 사람도 가슴 뛰게 하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현대과학이 아무리 발전했다고 해도 우주는 여전히 넓고 신비로워 완전히 주술을 떨쳐내지는 못한다. 별똥별을 보며 소원을 비는 행위는 요즘도 계속된다. ‘유성우가 쏟아진다’는 기사가 나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빛 공해가 없는 지역을 찾아 나선다. 인류에게 아직까지 꿈과 낭만이 남아 있기 때문이리라. 소행성이나 혜성에서 떨어져 나온 암석과 얼음조각이 지구 대기권에 진입하면서 엄청난 마찰열로 불타오르는 것이 유성, 즉 별똥별이다. 그 중 일부는 다 타버리지 않고 땅에 떨어진다. 운석이다. 최근 운석과 관련한 한반도 지질의 비밀이 또 하나 밝혀졌다.


하늘에서 거대한 운석이...5만년 만에 밝혀진 초계분지의 비밀

합천읍 남쪽 초계면과 적중면은 거대한 산중 분지다. 동서 8㎞, 남북 5㎞의 타원형 분지가 해발 200~600m 산줄기에 빙 둘러싸여 있다. 화채 그릇을 닮았다고 해서 일명 펀치볼로 불리는 양구 해안분지와 비슷한 모양이다. 그러나 생성 과정은 딴판이다. 해안분지가 차별침식으로 생성된 지형이라고 알려진 데 비해 적중-초계분지(이하 초계분지)는 운석 충돌의 흔적임이 밝혀졌다.

한국지질연구원은 지난해 12월 보도자료를 내고 “그동안 지질학계의 미스터리로 남았던 초계분지가 한반도 최초의 운석충돌구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5만년 전 호수였던 이곳에 거대한 운석이 떨어져 지금과 같은 독특한 지형이 형성됐다는 설명이다. 충돌구의 지름을 현재 분지의 절반 크기인 4㎞로 가정하면 떨어진 운석의 크기는 지름 200m로 추정되며, 이때 발생한 에너지는 1,400메가톤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8만7,500배에 해당하는 위력이다. 지금까지 보고된 운석 충돌로 생긴 분화구 형태 지형은 전세계에 200여곳이며, 동아시아에서는 중국 랴오닝성의 슈옌에 이어 두 번째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러나 슈옌 충돌구가 지름 1.5㎞인 점을 감안하면 초계분지의 규모가 훨씬 크다. 연구 결과는 ‘한반도 최초 운석충돌구 발견’이라는 제목으로 지구과학 저널 ‘곤드와나 리서치’ 최신호에 발표됐다.

운석 충돌 때 발생하는 강력한 충격파로 만들어진 원뿔형 암석 구조. 정점에서 방사상으로 홈이 나 있다. 충돌 바닥에 해당하는 지하 142m까지 시추해 발견했다. 한국지질연구원 제공.

초계분지의 서쪽, 대암산(591m) 정상에 오르면 운석 충돌이 빚은 둥그런 지형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고만고만한 산줄기로 둘러진 분지 내부는 경남 서북부 일대에서 보기 드물게 넓은 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미지의 세계에 첫발을 디딘 듯 낯설지만, 가슴이 뻥 뚫릴 정도로 시원한 풍광이다. 하늘에서 불덩이가 떨어진 날은 말 그대로 생지옥이었을 테지만, 산 능선에서 부드럽게 흘러내린 골짜기며 그곳에서 연결되는 대지는 한없이 평화롭다. 대지 위로 열린 하늘에 별이 총총 박히고 별똥별이 가로지르는 밤이면 미처 알지 못하는 신비한 우주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다.

대암산에는 아직 공식 등산로가 없다. 대신 산 너머 대양면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있어 차로 쉽게 올라갈 수 있다. 원당마을에서 지그재그로 연결되는 좁은 도로를 약 4km 오르면 고갯마루에 주차장이 있고, 그곳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산꼭대기에 닿는다. 산불감시초소와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지키고 선 산정은 만질만질하게 닳아 있다.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으로 이용하기 때문이다.

대암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초계분지. 미지의 세계에 발을 디딘 듯 낯설고도 시원하다.
초계분지 서편 대암산 정상은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발 아래로 드넓은 벌판이 펼쳐진다.
대암산 정상에서 북측으로 거친 산줄기 사이에 자리 잡은 합천 읍내와 황강의 모습이 내려다보인다.

정상에 서면 초계분지뿐만 아니라 반대편으로 합천 읍내와 황강도 멀찍이 내려다보인다. 문화재청에서 운영하는 국가문화유산포털에는 산성이 있다고 기록돼 있는데, 현장에서는 어떤 표지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초팔성으로 알려진(전초팔성) 성의 길이는 400m, 폭은 150m 가량으로 남서쪽 성벽이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다고 하지만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전혀 없는 상태다. 나중에라도 복원한다면 고대 석성에서 운석이 떨어진 지구 행성을 바라보는 명소가 될 듯하다.


관광자원은 없어도 자부심 가득한 '별똥별 마을'

봄의 길목인 현재 대암산에서 내려다본 들판은 대체로 누런 빛을 띠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옹기종기 마을이 형성돼 있고, 마을을 감싼 들판에 푸릇푸릇한 기운이 감지된다. 넓은 들 전체가 양파와 마늘밭이기 때문이다. 양파 수확이 끝나면 벼농사가 시작돼 여름이면 푸르름이 넘실대고, 가을이면 황금 들판으로 변신한다.

대암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초계분지. 파릇파릇한 기운이 올라오는 양파밭 곳곳에 마을이 형성돼 있다.
대암산 정상에서 본 초계분지. 마치 공중에서 헬기를 타고 내려다보는 느낌이 든다.
초계분지 들판은 온통 양파와 마늘밭이어서 요즘도 푸릇푸릇한 기운이 감돈다.

풍요롭게만 보이지만 관개수로를 정비하기 전까지 어려운 시절을 보내기는 마찬가지였던 듯하다. 대암산 바로 아래 원당마을에서 만난 한 노인(87)은 “들은 넓지만 물이 없어 농사짓기가 쉽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산골짜기에서 물지게로 물을 길어 오거나 우물에서 퍼 올린 물을 양동이로 이고 날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너른 들판을 제외하면 초계면과 적중면을 통틀어 딱히 내세울만한 관광자원이 없지만, 예부터 살기 좋은 동네였다는 자랑이 빠지지 않는다. 원당마을회관 앞 소공원에는 오래된 올벚나무 10여그루가 운치있게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다. 꽃피는 봄이면 마을주민뿐만 아니라 지나가는 객들도 함께 축제를 벌이는 곳이라고 한다. 마을회관 건립비에도 자부심이 가득하다. 현재 면 소재지에 자리한 초계향교도 처음에는 이 마을에 있었다고 한다. 고려 충숙왕 때 처음 건립했으니 도덕과 예절을 숭상한 유서 깊은 고을이라는 자랑이다. 큰길로 나서면 도로변 주택 담장마다 푸른빛이 유난히 강조된 벽화가 그려져 있다. 옛날 동네 이발관에 걸렸을 법한 그림이 연상되는 화풍인데,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시절을 회고하는 듯하다. 어느 농촌이나 그렇듯 빈집이 늘어나는 모습도 보인다. 벽화로 아무리 가려도 낡아가는 세월의 흔적은 다 감춰지지 않는다.

대암산 아래 원당마을 도로변에 산수유가 노랗게 피었다.
초계면 도로변의 주택 담장마다 벽화가 그려져 있지만, 허름함을 다 감추지는 못한다.
초계면은 너른 들판을 빼면 관광 시설이 거의 없다. 면소재지의 초계향교가 그나마 내세우는 자랑거리다.

초계면은 1914년 합천군에 통합되기 전까지 독립된 군이었다. 면사무소 앞에 역대 군수의 선정비가 줄지어 세워져 있다. 그 많은 군수가 모두 선정을 베풀었다면 아마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고장이 되지 않았을까. 없는 살림에 돈을 모아 비석을 세웠을 백성의 모습을 떠올리면 절로 '웃픈(웃기고도 슬픈)' 생각이 든다. 바로 앞에 권율 장군 도원수부 표석도 있다. 임진왜란 당시 도원수였던 권율이 머물렀던 곳이라는 표시다. 백의종군했던 이순신 장군이 인근 율곡면에 거처를 정하고 다섯 차례나 고갯길을 넘어 도원수를 알현하고 전략을 수립한 곳이라는 설명이 덧붙여져 있다. 하기야 전국 방방곡곡 이순신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어디 있겠는가.

초계면 사무소 앞의 역대 군수 선정비. 이 모두가 정말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푼 증거라면 얼마나 다행일까.

초계분지만큼 신비에 싸인 다라국의 비밀

고구려 신라 백제를 중심으로 한국고대사를 배운 세대에게 가야는 여전히 낯설고 신비롭다. 초계분지에서 북쪽으로 낮은 고개를 넘으면 쌍책면이다. 면소재지를 지나면 2004년 개관한 합천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지역을 대표하는 박물관이 한갓진 곳에 자리 잡은 이유가 있다. 박물관 뒤편 언덕에 옥전고분군이 있기 때문이다.

낙동강 지류인 황강변 구릉에 형성된 4세기에서 6세기 전반의 가야고분군이다. 전체 1,000기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 가운데 지름 20∼30m의 대형 고분 27기를 발굴한 후 복원해 놓았다. 둥글둥글한 봉분 사이로 산책로를 조성하고, 사진 찍기에 좋도록 소나무 몇 그루는 그대로 남겨 놓았다. 고대 무덤군이 대개 그렇듯 가벼운 나들이 겸 소풍 장소로 그만이다. 다만 봉분 곡선의 경사가 완만하지 않고 봉긋해 인위적인 느낌이 강하다.

합천박물관 뒤편의 옥전고분군. 가야 다라국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옥전고분군은 발굴 조사 후 산책하고 사진찍기 좋도록 정비해 놓았다.

‘구슬밭(玉田)’이라는 지명처럼 발굴조사에서 장신구를 비롯해 다양한 토기와 철제 무기, 갑옷과 마구가 나왔다. 특히 M2 고분에서는 2,000개가 넘는 구슬과 함께 가공 도구도 발견됐다. 화려한 귀고리와 목걸이를 만드는 세공기술이 발달되었음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23호분에서 출토된 관모는 맨 윗부분에 금동봉이 있어 국내에 예가 없는 희귀한 사료로 평가된다. 박물관 별관은 이 관모를 형상화해 지었다.

박물관 광장 분수에는 거대한 칼자루 장식물이 꽂혀 있다. M3고분에서 출토된 '봉황무늬 고리자루 큰칼'로 옥전고분군의 상징물이다. 최고 지배자를 상징하는 봉황무늬, 용무늬가 새겨진 큰칼은 모두 4자루가 나왔는데, 한 무덤에서 이렇게 많이 발견된 것도 처음이라고 한다. 이 외에 금동제 투구 13점, 갑옷 5 점 등도 최고 수장의 권위를 상징하는 유물로 평가되고 있다. 인근 고령의 대가야, 김해의 금관가야에 비하면 규모가 작은 편이지만 역사적 중요성은 결코 뒤지지 않는 유적이라고 자부하는 이유다.

합천박물관에 전시된 관모. 정수리에 금동봉이 있는 특이한 모양이다.
합천 옥전고분군의 상징과도 같은 봉황무늬 고리자루 큰칼.
합천박물관 광장 분수에도 다라국 지배층의 상징인 봉황무늬 고리자루 큰칼 조형물을 세워 놓았다.

합천박물관은 옥전고분군이 고대 가야문화권 중에서도 다라국 지배자들의 무덤이라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전시실 명칭도 다라문화관, 다라역사실이다. 신비에 싸인 가야문화, 그 중에서도 생소한 다라국의 비밀을 탐험하는 박물관이다. 다만 주요 유물은 국립중앙박물관과 경상대박물관이 소장하고 있고, 합천박물관은 주로 복제품을 전시하고 있다.

합천=글ㆍ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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