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겹 접어 봉인한 300년 전 편지..뜯지 않고 읽다

곽노필 입력 2021. 3. 3. 08:26 수정 2021. 3. 3.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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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이 300년 전 유럽의 한 편지를 새로운 컴퓨터 알고리즘을 이용해 봉인을 뜯지 않고 읽어내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은 이런 방식으로 한 편지의 내용 전체를 읽어내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이 알고리즘을 이용해 완벽하게 파악한 편지는 1697년 7월31일 프랑스어로 쓴 것이다.

연구진은 그동안 훼손 우려 때문에 손대지 못했던 미개봉 편지들을 이 기술을 이용해 읽어내면 근대 이전 유럽의 다양한 문화와 생활에 관한 세세한 정보들이 드러날 것으로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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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선 단층촬영 기술과 컴퓨터 알고리즘 결합
복잡하게 접힌 상태에서 가상으로 펼쳐 읽어내
복잡하게 접힌 편지를 가상으로 펼친 순서. Unlocking History Research Group 제공

과학자들이 300년 전 유럽의 한 편지를 새로운 컴퓨터 알고리즘을 이용해 봉인을 뜯지 않고 읽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를 통해 옛 사람들의 통신 보안 기술은 무력화됐지만 사료 보존에선 대단한 기술적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편지 봉투가 없었던 당시에는 종이접기처럼 여러 겹으로 편지를 접은 뒤 실로 꿰매거나 왁스로 봉인해 보내는 것이 관행이었다. 유럽에서 편지 봉투가 널리 사용된 것은 180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였다.

워낙 여러번 복잡하게 접은데다 봉인까지 했기 때문에 편지의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편지를 잘라야 했다. 이에 따라 불가피하게 사료 가치가 높은 편지들이 손상되는 경우가 많았다.

어떻게 하면 이 유물들을 훼손하지 않고 그 내용을 파악할 수 있을까? 엑스선 촬영 기술과 디지털 기술이 결합해 이 오랜 고민을 해결했다.

미개봉 편지의 겉면.

미국과 영국, 네덜란드 공동연구진이 2일(현지시각)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이번에 미개봉 상태로 읽어낸 편지는 시몬 드 브리엔이라는 이름의 헤이그 우체국장 소유 트렁크에 들어 있는 3148개의 편지 ‘브리엔 컬렉션’(Brienne Collection) 가운데 하나다. 이 편지 꾸러미는 1680~1706년 사이에 유럽 전역에서 헤이그로 보낸 것들이다. 이 가운데 약 600개는 아직 미개봉 상태로 남아 있다.

당시엔 우표가 없었다. 또 우편 요금은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아닌 받는 사람이 부담했다. 따라서 수령인이 사망하거나 수령을 거부하면 요금을 받을 방법이 없어 편지가 배달되지 못했다.

네덜란드 헤이그 우편박물관에 소장된 편지 트렁크.

연구진은 먼저 편지 전체를 엑스선 스캐너로 단층촬영한 뒤 이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했다. 이 장비는 원래 치과에서 치아를 촬영하는 데 사용하는 장비다. 연구진은 대신 치과용 스캐너보다 훨씬 더 강력한 엑스선을 사용했다. 그런 다음 새로 개발한 알고리즘을 이용해 편지에서 각각의 접혀진 층을 식별해냈다. 이어 접힌 부분의 두께를 분석해 어떤 순서로 접었는지를 알아냈다. 접힌 부분이 두터울수록 나중에 접힌 것이다. 연구진은 이런 방식으로 한 편지의 내용 전체를 읽어내는 데 성공했다. 다른 몇개의 편지에선 일부 내용을 알아냈다. 뭔가의 연유로 주인에게 배달되지 못한 편지들이 현대 과학기술의 힘을 빌려 300년만에 후손들에게 배달된 셈이다.

가상으로 펼쳐서 드러난 편지 내용.

연구진이 알고리즘을 이용해 완벽하게 파악한 편지는 1697년 7월31일 프랑스어로 쓴 것이다. 프랑스 릴의 법률전문가 자크 세나크(Jacques Sennacques)가 헤이그에 있는 그의 사촌(Pierre Le Pers)에게 또 다른 친척(Daniel Le Pers)의 사망 통지서 등본을 요청하고 안부를 묻는 내용이었다. 전체 200자로 길지 않고 특별한 내용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17세기 유럽인의 생활 단면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준다. 이 편지는 총 8겹으로 접혀 있었다.

지금까지 한두번 접힌 사료를 읽어낸 적은 있었지만 이번처럼 복잡하게 접힌 것을 읽어낸 건 처음이라고 한다. 연구진은 보도자료에서 “가상의 펼침 기술을 이용해 지금까지 한 번도 빛을 보지 못한, 그리고 수령인에게 도달하지 못한 내밀한 이야기를 읽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경험"이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그동안 훼손 우려 때문에 손대지 못했던 미개봉 편지들을 이 기술을 이용해 읽어내면 근대 이전 유럽의 다양한 문화와 생활에 관한 세세한 정보들이 드러날 것으로 기대했다.

개인 서명처럼 다양한 편지 봉인 방식

연구진은 편지를 훼손하지 않고 읽어낸 것 말고도 옛 유럽인들의 ‘편지 봉인 기술’을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데 처음으로 성공했다. 연구진은 25만개의 편지를 분석한 결과 편지 모양은 12가지로, 접기나 끼워넣기 같은 봉인 방식은 64가지로 나눌 수 있음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각각의 봉인 형태에 보안 점수를 매겼다.

연구진의 일원인 영국 킹스칼리지런던의 대니얼 스미스 박사는 “봉인 기술이 매우 다양해서 각각의 봉인 방식은 거의 개인 서명 역할을 했다고 볼 수도 있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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