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받는 사람 따로, 이득 보는 사람 따로 [취재 후]

2021. 3. 3.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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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서울에 살다 보면 ‘밤’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휴대전화 어플을 통해 확인한 일몰 시각은 오후 6시 21분인데, 밤 8시 9시가 돼도 시내 중심가는 물론 주택가도 그리 어둡지 않습니다. 지난 1월 말,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를 찾았습니다. 일몰 시각이 지나자 정말 깜깜한 밤이 됐습니다.

양남면 나아리는 월성원전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입니다. 경주 월성에는 월성 1·2·3·4호기와 신월성 1·2호기가 있습니다. 월성 1호기는 가동이 중단됐습니다. 원전 직선거리 914m까지가 제한구역이고, 915m부터는 사람이 거주할 수 있습니다. 주민들 표현대로 원전을 ‘끼고 사는’ 수준입니다.

몇년 전 가족력이 없는 마을 중학생 2명이 백혈병에 걸려 사망했습니다. 대장암, 위암, 갑상선암 등 각종 암환자도 많다고 합니다. 원전과의 상관관계는 모릅니다. 다만 기준치 이하의 방사능은 안전하다고 하는데 기준치는 누가 정하는지, 충분한 연구는 이뤄졌는지, 정말 기준치 이하로만 방출되고 있는지 묻습니다.

이 질문에 정부와 원전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의 대답은 ‘안전하다’입니다. 뒷받침하는 기술적이고 의학적인 전문 용어가 쏟아집니다. 관련 연구도 많이 이뤄졌습니다. 화려한 답 앞에서 주민들은 할 말을 잃습니다. 그냥 “찜찜하긴 하지요”라는 말로 복잡한 상황과 심경을 대신할 뿐입니다.

하지만 인류가 인공방사능을 개발한 건 80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저선량 방사능에 장기간 노출됐을 때의 연구도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원전 인근 주민들의 삶을 설명할 수 있는 연구와 언어가 없는 셈입니다.

주민들의 몇년에 걸친 요구 끝에 정부는 올해 원전 인근 주민들의 건강과 관련한 예산을 편성했습니다. 10년 만에 이뤄지는 건강 역학조사입니다. 주민들은 이번 조사에서 상관관계가 조금이나마 밝혀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자신이 겪는 고통을 표현할 수 있게 되니까요.

지난 10년 동안 조사 한번 하지 않은 정부나,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말을 늘어놓는 한수원만 나쁘다고 비판하면 되는 일일까요. 원전을 포함한 발전소에서 나오는 전기 대부분은 대도시에서 소비합니다. 고통받는 사람 따로, 이득 보는 사람 따로 있는 셈입니다. 서울의 전력자급률은 3.92%(2019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경주에서 서울로 돌아온 밤, 서울은 여전히 ‘눈부셨습니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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