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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좀 봐.. 북한이 시작해서 남한이 완성한 다리

이영천 입력 2021. 03. 03. 11:09 수정 2021. 03. 0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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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잇는 다리] 민족분단의 상흔이 남아 있는 철원 승일교

[이영천 기자]

[기사수정 : 4일 오전 10시 27분]
 
▲ 나란한 세개 다리 먼 곳에서 부터 승일교, 한탄대교 상행선, 한탄대교 하행선이 연달아 서있다. 양 가장자리 둘은 철근콘크리트 상로식 역 로제아치고, 가운데 붉은 아치는 중로식 강재 로제아치다.
ⓒ 이영천
 
강원도 철원 한탄강에 아치교 3개가 나란히 한곳에 서 있다. 철원 명소인 고석정(孤石亭) 인근이다. 하나는 승일교(昇日橋), 나머지 둘은 상·하행선으로 나눠진 한탄대교(漢灘大橋)다. 동송읍과 갈말읍을 잇는 지방도 463호선이다. 승일교와 한탄대교 하행선은 철근콘크리트로 지은 상로식 역 로제아치, 한탄대교 상행선은 강재(鋼材)로 지은 중로식 2힌지 로제아치다.

한탄대교 상행선 중로식 강재 아치는 길이 166.8m, 폭 9,5m로 1999년에 지방도 선형개설 때, 하행선 상로식 철근콘크리트 아치는 길이 166.8m, 폭 12m로 2015년(2019년 준공)에 지방도를 4차선으로 확장하면서 만들어진다. 두 다리 길이가 같은 이유는, 한탄강의 특이한 형성과정과 지형 때문이다.

한탄강은 용암과 물 그리고 시간이 빚어낸 절벽으로 이뤄진 강이다. 화산활동이 일어난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지질학적 형상이 다 담겨있다. 한탄강은 '은하수처럼 큰 여울'을 한자로 바꿔 부른 이름이다. 은하수는 漢(은하수 한)으로, 큰 여울은 灘(여울 탄)을 썼다. 혹자는 궁예가 태봉(泰封)이란 나라를 세웠으나 왕건에게 빼앗긴 한이 서렸다 해서, 혹은 남북분단을 탄식하는 상징으로, '恨歎(한탄)'이라 부르기도 한다.

민족분단
  
▲ 철원 노동당사 1948년 남북에 시차를 두고 정부가 수립되면서, 우리민족은 분단된다. 분단의 상징인 철원 노동당사 전경이다.
ⓒ 이영천
 
1948년에 시차를 두고 남과 북에서 서로 다른 정부가 수립되면서, 우리민족은 분단된다. 1945년 2월 4일∼11일까지 열린 '얄타회담'에서, 일본패망 시 한반도 관리에 대해 처음 논의한다. 소련은 이 회담에서, 사할린과 쿠릴열도 영토 획득은 물론 러일전쟁 이전 러시아가 만주일대에서 장악하고 있던 경제·군사적 이권을 되찾아가는 성과를 얻는다. 짧은 기간 대(對)일본전에 참전한 대가다. 이 대가에 대한 협약은 회담에서 비밀리에 체결된다.

얄타회담 직후, 유럽에선 소련이 점령한 폴란드에 공산화(1945. 3)가 이뤄진다. 이를 목도한 미국이 다급해진다. 소련 참전으로 만주와 한반도 북부에서 긴박한 전황이 이어지자, 미국은 소련의 남하를 제지할 방안에 몰두한다. 이에 그어진 선이 북위 38°선이다. 38선을 획정한 것은 미국 3부(국무부, 육군부, 해군부) 논의 과정이라 알려져 있다. 그해 8월 10일 일본이 포츠담 선언을 수용하고, 항복한다는 의사를 밝힌다. 일본군 무장해제를 38선 이북은 소련이, 이남은 미국이 맡기로 한 것이다.

1945년 9월 2일 일본이 항복문서에 서명한다. 38선을 경계로 양측 군대가 한반도를 접수한다. 남쪽에는 '미군정청'이, 북쪽에는 '인민위원회'가 세워진다. 모스코바 삼상회의와 여러 번의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된다. 한반도에선 좌우익의 대결이 극한으로 치닫는다. 미국과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 후 패권을 놓고 다툰다. 핵무기가 시차를 두고 서로의 손에 쥐어진다. 그 대리전장이 한반도였다. 냉전의 서막이다. 전범국가가 아닌 피해국가 당한 억울함이다.

북한이 먼저 공사를 시작한 승일교

한국전쟁 전까지 철원은 38선 이북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속한 땅이다. 이에 북한 정권은 한탄강을 건너는 다리를 구상한다. 철원농업전문학교 토목과장으로 일하던 김명여씨를 설계책임자로 임명하여 다리공사를 시작한다. 1948년 8월로, 한탄교(漢灘橋)라는 이름으로 착공된다. 공사는 현 동송읍 장흥리와 갈말읍 대내리·문혜리를 연결하는 구간이다. 지역주민들이 동원된다. 성인 남성의 경우, 매월 20일 이상 공사에 참여해야만 했다. 사회주의식 동원 체제다.

공사는 동송읍 쪽 교대와, 교대에서 10m 폭의 제외지 통로역할을 하는 교각을 완성한다. 그 상부는 말굽 모양 아치를 달았다. 또한 한탄강 한가운데에 교각을 세웠다. 장흥리 방향에서 철근콘크리트로 상로식 2열의 긴 역 로제아치를 만든다. 한탄강 중간까지 완성된다.
 
▲ 승일교 북측 북한이 만든 승일교 북측 모습이다. 한쌍 아치 위에 겹으로 현수재 7개를 세워, 양쪽에 부드럽고 앙증 맞은 아치형하 8칸을 구성하였다.
ⓒ 이영천
   
이 구간은 2열 아치 위 양쪽에 상판을 떠받치는 기둥 7개씩을 세워 각 8칸의 작은 모양 아치 형하(桁下)를 만든다. 한 쌍의 로제아치는 수평재를 걸어 이어 붙인다. 큰 아치 위에 좁고 길쭉한 아치가 올려진 형상이 만들어 진다. 다소 촘촘하나 앙증맞은 아치다. 이때 한국전쟁이 터진다. 공사는 중단된다. 철원은 김화, 평강과 더불어 '철의 삼각지대'라 불리는 곳이다. 피아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수많은 젊은이들과 민간인들 무덤이 된 곳이다.

모양을 달리해 남한이 완성 시키고

전쟁 와중이던 1952년 미 79공병대가 갈말읍 쪽 교대와 교각을 완성하고 방치해 둔다. 1953년 7월 전쟁을 멈추고 휴전이 이뤄진다. 철원은 주인이 바뀌어, 이제 대한민국 땅이다. 다리 나머지 부분의 공사는 1958년 5월 우리 군대에 의해 시작된다. 62공병대가 착수하여 그해 12월에 나머지 아치부분과 제외지 통로역할을 하는 말굽아치를 완성시킨다.
  
▲ 승일교 남측 남한이 만든 승일교 남측 모습이다. 한쌍 아치 위에 겹으로 현수재 3개를 세워, 양쪽에 약간 넓은 말굽모양 아치형하 4칸을 구성하였다
ⓒ 이영천
 
우리 공병대가 완성한 상로식 2열 역 로제아치는, 각각의 아치 위 양쪽에 상판을 떠받치는 기둥 3개씩을 세워, 각 4칸의 말굽모양 아치 형하를 만든다. 역시 아치 위에 좁고 긴 아치가 서있는 모양을 하였으나, 북한이 만든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둘은 닮았으나 다른, 이질적인 느낌을 강하게 풍기고 있다. 그 다름은 남북분단의 상징이나 전쟁 상흔처럼 여겨지고, 또 그렇게 보여진다. 낙인 아닌 낙인이 되어 버렸다.
승일교는 총길이 120m에 높이 35m, 폭 8m로 만들었다. 역 로제교이나, 상판으로 거더를 따로 올린 방식은 아니다. 라멘교처럼 아치와 현수기둥, 상판을 일체화 시켜 만들었다. 이 방식은 구(舊) 소련에서 차용한 공법으로 알려져 있다. 예전 공사하던 사진을 보면 이를 확연하게 확인할 수 있다. 시공방법은 형하에 아치형 지보공을 만들고 그 위에 철근콘크리트를 타설한, 지보공 공법을 활용하였다. 이 역시 옛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다.
 
▲ 두 얼굴의 승일교 하나의 강을 건너는 하나의 다리가 두 얼굴을 하고 있다. 시차를 두고 정부를 수립하면서 분단되었 듯 시차를 두고 만들어진 닮은 듯 다른, 우리 자화상 같은 다리다.
ⓒ 이영천
 
이 다리 '승일'이라는 이름은 참으로 많은 사연을 갖고 있다. 이곳 사람들 사이에 구전되는 말은 '김일성이 시작했다 해서 金日成(김일성)의 日(일)과, 이승만이 완성했다 해서 李承晩(이승만)의 承(승)을 합해 承日橋(승일교)라 부른다'는 설이 하나다.
또 하나는 '김일성을 이겨야 한다'는 의미에서 勝日橋(승일교)라 부른다는 설이 다른 하나다. 그러나 무엇보다 정설로 굳어진 것은, 한국전쟁에서 혁혁한 전과를 세우고 북으로 납북되어 행방이 묘연한 '박승일(朴昇日) 대령을 기린다는 뜻'에서 지어진 昇日橋(승일교)란 이름이다.
 
▲ 승일교 전경 다리 이름은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박승일 장군에서 연유한다. 분단을 슬퍼하는 한탄강의 다른 뜻 처럼 다리도 강 이름을 닮았다.
ⓒ 이영천
 
▲ 승일교 전경 동송읍에서 갈말읍 방향 '승일공원' 쪽 모습이다. 높이 35 m 웅장한 아치를 그려냈다.
ⓒ 이영천
 
찢겨진 땅 철원

철원은 궁예의 고장이기도 하다. 궁예는 태봉이라는 나라를 세워, 도읍을 개성에서 철원으로 옮긴다. 궁예가 세운 태봉국 도읍지가, 철원읍 홍원리 비무장지대 안에 있다. 한탄강 지류인 대교천 상류다. 군사분계선이 옛 궁성 한가운데를 동서로 지난다. 일제가 경원선 철도를 만들면서, 이 궁성 남북을 질러 가른다. 사방으로 갈기갈기 찢기었다. 전쟁 전에 발굴된 국보급 석탑이 전쟁과 함께 사라지기도 한다.

한반도 배꼽이라 부르는 철원은, 드넓은 평야를 끼고 있는 내륙 너른 분지다. 물산이 풍부하다. 한 나라 도읍으로 손색없는 배후지를 갖고 있다. 그러나 철원은 분단의 상징이다. 땅 한 가운데를 동서로 잘라 남북으로 갈라 세웠다. 전쟁 후 옛 철원 땅 약 40%가 북한에 속했다. 한반도의 분단과 전쟁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땅이다. 북한에서 발원해 남으로 흐르는 한탄강이, 파주 전곡에서 임진강과 합류한다. 북한에서부터 강화바다까지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이다. 흐르는 강물은 절대 나뉘지 않는다.

승일교는 곱게 늙어 품위와 고즈넉한 멋을 한껏 뽐내는 중후한 노신사 같다. 그러나 찡그린 얼굴이다. 다리엔 갈라섬의 아픔과 서로의 차이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 분단의 다리다. 두 얼굴로 나뉜 민족의 아픔이 절절하게 읽혀진다. 그 시대를 살아낸, 우리네 할아버지를 생각게 하는 다리다.

그 옆에 할아버지를 닮은 듯 다른 매무새의 한탄대교가 쌍으로 서있다. 마치 철부지 손자가 때때옷을 뽐내는 모양새다. 찡그린 승일교가 웃는 낯빛으로 이젠 평화와 통일의 상징이 되었으면 좋겠다. 과연 우리는 남북을 잇는 어떤 다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 승일교와 한탄대교 중후한 노신사 같은 승일교 옆으로, 때때옷을 입은 어린 손자가 자태를 뽐내는 모습이 연상된다. 붉은 한탄대교 상행선과, 승일교를 닮은 하행선 모습이 이질적이다.
ⓒ 이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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