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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회 뒤흔든 '1619년 건국' 논쟁

양수연 입력 2021. 03. 03. 11:56 수정 2021. 03. 22.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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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노예가 처음 도착한 1619년을 미국의 건국년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1년 넘게 미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미국은 자유와 노예를 동시에 건국에 포함한 역설의 국가다.
ⓒThe New York Times니콜 한나존스 기자는 노예제도 400주년 특집기사를 통해 건국년 논쟁을 일으켰다.

1619년 8월, 아프리카에서 생포한 흑인 20여 명을 실은 배가 미국 동부 버지니아주의 포인트 컴포트 해안에 도착했다. 이 아프리카 흑인들은 도착 직후 제임스타운에서 ‘판매’됐다. 이로써 대영제국 식민지였던 미국에서 노예제도가 시작되었다.

2019년 여름, 〈뉴욕타임스〉 매거진 편집회의에서 니콜 한나존스 기자는 노예제도 400주년 특집기사를 제안한다. 미국 건국년은 이 나라 전역에서 폭죽을 터뜨리며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선언’을 기념하는 1776년이 아니라, 흑인 노예가 처음 미국에 도착한 1619년이라는 주장을 담은 탐사 보도 시리즈 ‘1619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됐다. 1619 프로젝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른바 ‘애국 교육’과 갈등하면서 1년 넘게 미국의 정치·사회·교육계를 뒤흔들었다.

조 바이든 신임 대통령은 지난 1월20일 취임식 날, 이 논쟁을 일단락했다. 그는 취임식이 끝난 직후 애국 교육을 표방한 트럼프의 ‘1776 위원회’ 및 관련 자료들을 모두 폐기했다. 바이든 정부의 ‘트럼프 흔적 신속하게 지우기’의 상징으로 회자되고 있는 일이다.

1619 프로젝트는 흑인 노예의 공헌을 미국 건국의 중심에 두어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주요 논점은 △흑인들에 의해 비로소 민주주의가 탄생했으며 △노예의 전통이 미국 현대 자본주의에서도 지속되고 있고 △노예 정치와 현대 우익 정치 사이의 유사점이 있다는 것이었다. 1619 프로젝트 관련 기사들은 나오자마자 즉시 반발에 부딪혔다. 브라운 대학의 고든 우드 교수, 존스홉킨스 대학의 제임스 M. 맥퍼슨 교수 등 저명한 역사학자 다섯 명이 해당 기사에 대해 ‘역사적 이해보다 이데올로기를 우선한다’라며 공개적으로 수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 매거진의 제이크 실버스타인 편집장은 1619 프로젝트 관련 기사들을 옹호하며 수정을 거부했다. 이로써 논쟁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었다.

교육계에서도 파장이 컸다. 워싱턴 D.C.에 기반을 둔 ‘퓰리처 위기보고센터(퓰리처상과는 무관)’가 1619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학교 커리큘럼을 만드는 작업에 돌입했다. 시카고와 뉴저지 뉴어크, 뉴욕의 버펄로, 워싱턴 D.C.의 학군들이 1619 프로젝트를 교과로 채택해 지난해 말까지 3500여 개 교실에서 수업이 진행됐다. 공립학교가 아닌 콩코드 아카데미 같은 일련의 명문 사립 고등학교들도 1619 프로젝트를 가르쳤다. 대표적인 출판업체 ‘랜덤하우스’도 1619 프로젝트를 어린이 및 청소년용으로 그림책과 에세이로 묶어 출판했다. 한편 1619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주요 기사를 작성한 니콜 한나존스 기자는 지난해 퓰리처상을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 캠페인 열기가 뜨겁던 지난해 9월 “좌익 폭도들이 우리 건국 영웅들의 동상과 기념비를 허물고 폭력시위를 벌인 것은 좌파 교육에 세뇌됐기 때문”이라며 그해 5월 조지 플로이드 살해로 가속된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시위의 공범으로 1619 프로젝트를 지목했다. 트럼프는 1619 프로젝트 학교 수업을 “아동학대의 한 형태”라고까지 주장했다. 이와 함께 관련 교과를 채택한 공립학교들에 대해 연방 예산을 지급하지 않겠다고 위협했다. 그로부터 한 달여 뒤에 트럼프는 ‘미국 전통’의 수호자임을 자처하며 보수주의 운동가, 정치인 등 18명의 위원으로 구성한 대통령 역사 자문기구인 1776 위원회를 설립했다. 1619 프로젝트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AFP PHOTO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월20일 취임식에서 선서를 마친 뒤 연설하고 있다.

한국 보수 주장대로면 1789년 미국 건국

그동안 미국 역사나 교육에 대한 관심을 표방한 적이 없던 트럼프가 조지 플로이드 사건과 코로나19 대응 실패로 궁지에 몰리자 공화당과 보수 지지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보수의 가치와 관련 있는 전통적 주제를 끌어들였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 1월18일 나온 1776 위원회의 41쪽짜리 보고서는 진보주의적 역사 운동을 파시즘에 비유하며 1619 프로젝트를 역사 날조로 규정했다. 또한 미국 대학이 반미, 자국 비방의 온상이 되었다며 성토하고 미국의 건국 정신을 드높이는 애국 교육을 실시하라고 촉구하며 관련 예산 편성을 제안하기도 했다.

미국 건국년에 대한 담론은 1619년과 1776년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1619 프로젝트의 대안으로 영국 청교도들이 종교 핍박을 피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매사추세츠주 플리머스에 착륙했던 1620년을 건국년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필그림(청교도) 정신’이 미국의 건국 정신과 일맥상통한다는 문화적 전통의 차원이다.

그러나 미국이 연방정부를 출범시키며 국가의 정식 요소들을 갖춘 시기를 건국년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건국일로 통용되는 1776년 7월4일은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날일 뿐이다. 필라델피아 제헌 회의에서 미국 헌법이 탄생하고 초대 대통령으로 조지 워싱턴을 선출하여 미국 연방정부가 출범한 것은 그보다 13년 뒤인 1789년 9월24일이다. 〈뉴욕타임스〉 역시 1970년대에는 미국 건국년을 1789년으로 해야 한다는 견해를 고수한 바 있다.

1948년 8월15일을 대한민국 건국절로 삼아야 한다는 한국 보수의 입장을 미국에 적용하면 미국의 건국년은 흑인 노예의 기여도를 인정하는 1619년도, 청교도가 도착한 1620년도, 독립선언서가 나온 1776년(트럼프가 지지한 전통적 견해)도 아니다.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이 선출된 1789년이다.

‘모든 인간이 동등하다’고 천명한 미국의 독립선언서는 흑인 노예를 인간의 범주에서 제외했다. 분명히 결함 있는 문서다. 그러나 조 바이든 정부가 폐기한 1776 위원회의 보고서에도 새길 부분이 하나 있다. ‘독립선언서 자체로 보존할 가치가 있다’는 문장이다. ‘행복’이라는 단어가 처음 언급된 역사적인 문서이기도 하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미국의 단결과 화합을 강조했다. 미국은 오는 2026년에 건국 250주년(전통적 건국 연도인 1776년 기준)을 맞는다. 바이든 정부가 초당파적 차원의 전문가로 구성된 새로운 국가역사위원회를 설립해서 화합의 보고서를 마련하면 어떨까? 1776 위원회처럼 역사학자가 배제된 트럼프 재선용 이벤트나 1619 프로젝트같이 저널리즘 차원의 역사 운동이 아니라, 인종 갈등을 완화할 수 있는 미래지향적인 정부 보고서 말이다. 자유를 강조하는 1776년은 중요하며, 흑인 노예 없이 미국 건국 서사를 온전히 전달할 수 없다는 점에서 1619년도 매우 중요하다. 미국은 자유와 노예를 동시에 건국에 포함한 역설의 국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서로 반목했던 건국의 아버지들과 혁명가들의 미래를 향한 헌신에서, 미국은 화합의 실마리를 찾아 나가야 할 것이다.

양수연 (해외 언론인·<뉴스엠> 편집장)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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