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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의 미국행이 차등의결권 때문?

박누리 입력 2021. 03. 03. 11:57 수정 2021. 03. 22.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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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이 단순히 차등의결권 때문에 미국으로 갔다는 논리는 너무 게으르다. 한국의 상장심사는, 쿠팡처럼 "목전의 영업손실은 일단 묻고 가는" 회사들이 원하는 기업가치를 받기가 매우 어렵다.
ⓒ연합뉴스쿠팡은 2월12일 뉴욕 증권거래소(NYSE) 상장을 위한 신고서를 제출했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쿠팡이 한국 대신 미국 증시(NYSE)에 상장하기로 발표하면서 이런저런 추측과 해석이 난무한다. 특히 김범석 의장이 1주에 의결권 29개를 행사할 수 있는 이른바 차등의결권을 도입했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그가 의도적으로 차등의결권 제도가 법적으로 허용되는 미국을 선택했다는 의견이 일부 언론과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쿠팡이 미국으로 간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양국 자본시장의 차이점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아니, ‘미국으로 간’ 이유가 아니라 ‘미국에서 시작한’ 이유라고 표현하는 쪽이 더 정확하겠다. 이번에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하는 회사는 한국의 사업법인이 아닌, 미국 델라웨어주에 설립된 쿠팡의 지주회사 격인 ‘쿠팡 LLC’이기 때문이다. 델라웨어주는 주 법상 다양한 경영권 방어장치와 세제 혜택, 유연한 지배구조를 허용하고 있어서 수많은 기업이 델라웨어주에 법인을 등록한다. 이런 기업들을 ‘델라웨어 법인(Delaware Corporation)’이라고 부른다.

먼저 시장의 철학부터 다르다. 미국 증시는 기본적으로 “충분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했을 경우 투자 판단은 각각의 투자자가 하고, 그 결정에 대한 책임도 투자자 본인이 져야 한다”라고 본다. 시장을 주도하는 주체가 대형 기관투자자들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크고 투자자 저변이 깊은 미국 증시의 큰손은 연기금과 기관들이며, 이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운용 인력과 정보접근성을 자랑한다. 어느 나라 증시나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미국 증시는 개인투자자, 이른바 ‘개미’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초고도화된 자본시장이다. 이 때문에 미국인들은 펀드를 통한 간접투자로 자산을 관리하며, 미국 증시에서 개인투자자의 비중은 일 거래량의 25%에 못 미친다. 그것도 코로나19로 인해 전례 없는 유동성 마켓이 펼쳐진 2020년의 숫자이고 그전에는 10%대에 불과했다.

이러한 철학은 IPO(기업공개) 시장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미국에는 엄밀히 말해서 한국과 같은 ‘상장심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상장 희망 기업은 일종의 증권 신고서인 S-1(쿠팡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미국의 지주회사를 상장시키는 형태여서 S-1이고, 미국 법인이 아닌 해외 기업이 미국 증시에 상장할 때에는 똑같은 문서지만 F-1이라고 부른다)을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비공개 공시(initial confidential filing)’로 제출하고, SEC는 이 S-1을 검토한 뒤 수정 또는 보완이 필요한 부분을 짚어준다. 이렇게 SEC의 지시에 따라 S-1을 수정 또는 보완해서 재송부하는 절차를 평균 3차례 정도 거치면 SEC는 “더 이상의 수정이나 보완이 필요하지 않다”라고 확인해준다. 그러면 회사는 공개 공시(public filing)로 전환해서 그동안 제출한 공시 문서 일체를 공개하고 상장 일정을 발표한 뒤 본격적으로 마케팅 절차에 돌입한다.

그런데 이 과정이 정말 원칙적인 수준의 점검이어서, 한국처럼 광범위하고 세밀한 상장심사와는 거리가 멀다. 조금 과장하면 불법이나 분식회계가 없는지만 보는 수준이다. 설령 기업이 계속 영업손실을 내고 있는 적자기업이라 할지라도, 재무제표와 각종 경영지표를 충분히 투명하게 공개했다면, 그다음은 투자자의 판단이지 당국이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심지어 거래소는 민간기업이고, NYSE와 나스닥은 상장 희망 기업을 서로 유치하기 위해 영업하는 라이벌일 뿐 상장심사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시사IN 자료쿠팡 김범석 의장이 차등의결권을 도입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쿠팡의 미국행을 두고 논란이 커졌다.

미국에서도 차등의결권 각광받지 못해

바로 이 대목에서 왜 쿠팡이 미국 증시를 선택했는지 알 수 있다. 작게는 수십억 달러(수조 원)에서 수천억 달러(수백조 원)의 자본을 곳간에 쌓아두고 미국 증시를 쥐고 주무르는 큰손 기관투자자들은 상장하는 기업이 현재 영업이익을 얼마나 잘 내고 있는지보다 지금까지 재무제표와 경영지표가 어떻게 개선되어왔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성장할 것인지에 더 관심이 많다. 기관투자자들은 특정 기업이 공시하는 정보들을 해당 기업보다 더 정확히 분석할 수 있는 시스템과 펀드 매니저들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미국 증시에 상장한 테크 기업들 중에는 IPO 시점에 영업손실 상태인 회사들이 흔했다. 그럼에도 회사를 충분히 분석해서 미래의 성장잠재력이 증명되었다고 판단하면 투자자들은 망설이지 않고 투자를 단행했다. 물론 개중에는 투자 실패 사례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 개인투자자, 즉 ‘개미’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2020년 기준 국내 증권시장에서 개인투자자 거래 비중은 무려 75%가 넘었다. 기관에 비해 정보접근 능력도, 기업분석 능력도 현저히 떨어지는 개인투자자들이 소액(심지어 주식투자를 하기 위해 빚까지 내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본다)으로 대박의 꿈을 꾸는 곳이 한국 증시다. 이런 시장에서 자칫 사고가 나면 고스란히 정부의 정치적 부담이 된다. 당연히 상장 절차 전체가 거대한 규제 판이 될 수밖에 없다. 심사도 엄격하게 하고, 해당 기업이 영업이익을 꼬박꼬박 내서 망하지 않을 회사인지도 증명해줘야 한다. 미국에서 테슬라 상장을 통해 제도적으로 영업손실 기업이 상장할 수 있게 해줬지만, 기본적으로 한국의 상장심사는 쿠팡처럼 “눈부신 성장 스토리로 목전의 영업손실은 일단 묻고 가는” 회사들이 원하는 기업가치를 받기가 매우 어렵다.

이런 시장에서 쿠팡이 그 지난한 상장심사를 거쳐 원하는 ‘밸류(value)’로 주식을 팔아 자본을 마련할 수 있을까? 물론 차등의결권 같은 의결권 희석 방지 장치도 중요하긴 했을 것이다. 하지만 쿠팡이 단순히 차등의결권 때문에 미국으로 갔다는 논리는 너무 게으른 해석이다. 차등의결권은 ‘기업 때리기’ 정서가 충만한 한국만 뒤처지고 있는 ‘글로벌 스탠더드’가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차등의결권 제도가 활성화되어 있는 미국에서조차 최근 행동주의 펀드와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등의 가치를 반영하는 기업에 대한 사회책임투자)가 화두가 되면서, 주주의 경영 참여 권리를 심각하게 제한하는 차등의결권이 예전만큼 각광을 받지 못하는데, 무슨 차등의결권 때문에 한국의 스타트업이 미국으로 탈출하겠는가. 설령 한국에서 차등의결권 제도를 허용해줬다 해도, 처음부터 미국 법인인 쿠팡이 시장규모나 투자자 저변 관점에서도 ‘로컬’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 증시에 상장할 이유가 있었을까?

덧붙이면 쿠팡을 ‘미국에 뺏겼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비록 쿠팡이 상장하는 곳은 미국 법인이지만, 그 기업가치를 만들어낸 장소는 결국 한국이기 때문이다. “한국 시장은 작아서 안 된다”라는 편견을 뛰어넘어, 세계 최고의 자본시장인 미국 증시에서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가치를 인정받는 것, 그것이야말로 한국 소매시장의 저력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박누리 (스마트스터디 IR&기업전략 리더)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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