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소민의 슬기로운 예술소비] 20세기 최고의 페미니즘 작가 '130센티 작은 거인 루이스 부르주아'

데스크 2021. 3. 3.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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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pider sculpture 마망 Maman, 루이스 부르주아 Louise Bourgeois, 구겐하임뮤지엄 Guggenheim Museum Bilbao Spain, 1999년, 927.1×891.5×1023.6cm, 청동·대리석·스테인리스 스틸ⓒ출처: By Dider Descouens- Won work, CC BY-SA 4.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6558204


“이 작품은 작가가 어머니를 기리며 만든 작품이다. 절망감에 시달리면서도 자식을 거뒀던 자신의 어머니를 쉴 새 없이 실을 지어내며 새끼(대리석 알을 품고 있다)를 보호하는 거미에 빗대 표현했다” - wikipedia 참조


130센티 작은 거인으로 불린 루이스 부르주아는 20세기 최고의 페미니즘 작가로 자리매김한 현대미술의 대모이다. 70세가 넘은 다소 늦은 나이에 국제적 명성을 얻었고, 80세에 베니스 비엔발레에 작품을 출품하여 황금사자상까지 거머쥔 20세기 가장 주목받는 조각가 중 한 명이 됐다.


루이스 부르주아는 1911년 12월 25일 프랑스의 태피스트리(tapestry·융단) 사업을 하는 중산층 가정에서 삼 남매 중 둘째로 출생하여, 파리 남쪽 비에브르 근처의 앙토니 에서 성장했다. 1938년 27세에 미국인 미술사학자 로버트 골드워터(Robert Goldwater)와 결혼하면서 뉴욕으로 이주했는데 후에 미국 국적을 얻고 추상 표현주의 조각가로 활동했다. 여성으로서의 자아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함과 미국 뉴욕이라는 열린 곳에서의 예술 활동 가능성에 기대를 건 선택이었다..


아트스튜던츠 리그오브뉴욕(Art Students League of New York)에서 계속 미술 공부를 했고. 당시 미국으로 망명한 미술가들인 프랑스 초현실주의 창시자 앙드레 브르통(Andre Breton), 독일 화가 막스 에른스트(Max Ernst; 1891~1976), 프랑스의 다다이스트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 등과 교류했다.


60년 가까이 무명 시절을 보냈지만 그녀만의 독창적인 작품성과 예술성으로 1970년대 들어서며 비로소 주목받기 시작했다. 1982년 70세의 나이에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회고전을 열며 큰 명성을 얻었고, 1999년 이탈리아 베니스비엔날레에서는 황금사자상의 영예까지 안는 쾌거를 이뤄냈다.


미술로 자신의 아픔을 치유한 작가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은 자서전적 성향을 띠고 있어, 고백 예술(confession art)이라고 불리는데, 주제에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부르주아의 예술은 그녀의 무의식 속 의식 그 자체였다. 그녀는 자신의 트라우마(외상)를 작품 속에 정직하고도 대담하게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순순히 드러냈고, 그 기억의 공간들을 '밀실연작' 과 같은 작품 속에서 가감 없이 표현했다.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업은 그녀의 무의식에 억압되었던 트라우마가 의식의 표면으로 올라와 예술작품으로 표출되는 일련의 과정으로서 그녀의 트라우마와 화해하기 위해 분투했던 결과물로 해석되고 있다. 그녀에게 있어서 ‘트라우마’는 작업의 원동력이었고 특히 '모성'은 작품세계를 지배하는 주된 요소였다.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 중에서 가장 크기도 하지만, 그 만큼 유명세로 사랑받는 조각은 거미 ‘마망(Maman)’(1999)일 것이다. 작품의 이름인 ‘마망’은 프랑스어로 ‘엄마’를 뜻하는데, 그녀는 “알을 품은 암컷 거미를 통해 나의 어머니가 지닌 모성을 형상화한 것”이라며 “어머니는 거미처럼 실로 태피스트리(tapestry)를 짜던 사람”이라고 회상했다.


그녀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자신의 가정교사와 한 침실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아버지를 증오하고 어머니를 연민하게 되는데, 아버지는 자신의 외도를 어린 그녀에게 숨기지 않았고, 10여년의 세월을 그녀의 어머니는 묵묵히 받아들이기만 했다. 병으로 일찍 돌아가셨던 어머니는 태피스트리(tapestry) 작업장에서 열심히 실을 잣곤 했는데, 거미가 거미줄로 집을 짓는 모습과 유사하다고 생각하여, 자신의 어머니를 청동 거미로 상징화하게 된 것이었다.


무게 2.5t의 대형 거미 조각은 보는 사람을 압도할 만큼의 높이 9미터, 지름 10미터 가량의 거대 거미로 원형 바닥위에 8개의 가늘고 긴 거미 다리가 세워져 있다. 자기 배에 품은 알들을 보호하기 위해 강인한 모성애를 보이지만, 상대적으로 가늘고 약한 다리는 상처받기 쉬운 여성으로서의 불안한 내면을 표현하였다는 작가의 작업 이야기다.


'거미 엄마(Spiderwoman)'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그녀의 말을 인용하자면,


“거미는 내 어머니에게 바치는 시와 같습니다. 어머니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어요. 어머니는 거미처럼 직물을 짜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태피스트리를 복원하는 사업을 하고 있었고, 어머니는 그 일을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거미처럼 매우 현명하였습니다. 거미는 친절하게도 모기를 잡아먹어 없애주죠. 우리는 질병을 퍼뜨리는 모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거미는 나의 어머니처럼 도움을 주며 보호해 줍니다.” - wikipedia 중에서


루이스 부르주아는 프랑스 출신의 조형 예술가로 특히 천을 이용한 바느질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태피스트리(tapestry)라는 벽걸이 천의 수선을 가업으로 삼은 집안에서 태어난 덕에 늘 햇빛 아래에서 쉴 새 없이 바느질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자랐고, 여덟 살이 되면서부터 일찌감치 가업에 참여한 것이 훗날 그녀의 작업 세계에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실이 가늘고 끊기기 쉬운 반면, 찢어진 것을 꿰매고 헐거워진 부분을 단단히 옭아맬 수 있는 도구이자 다치기 쉬우면서도 때로는 용감하고 위협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이 마치 어머니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모성으로 느껴졌다고 한다.


밤하늘의 별자리를 더듬으며 삶의 물음표를 더해 가던 루이스는 대학에 진학해 수학과 기하학에서 그 답을 찾고자 1930년 19세에 소르본에 입학 했지만, 좀처럼 만족스러운 답을 찾지 못했고. 1932년 그녀가 사랑하고 존경하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그 충격으로 돌파구를 찾아 미술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현대 예술가들은 게으른 낭비자라며 그녀를 지원해 주지 않았고, 그럼에도 그녀는 통역 일을 하며 자신의 공부를 계속해 나아갔다. 1935년에 소르본을 졸업하고 연이어 파리의 에꼴 데 보자르(Ecole des Beaus-Arts)와 에꼴 드 루브르(Ecole du Louvre)에서 공부하였다. 수학 대신 예술을 선택함으로써 그녀는 자신의 정체감을 형성할 수 있었고, 자신의 고통과 두려움을 일기를 쓰듯 작품에 풀어냄으로써 조금씩 아픔을 치유해 나갈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시절, 아버지와 가족에게서 받은 상처가 오랜 세월 그녀를 지배했고, 그러한 정신적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서 그녀가 선택한 것은 조각이었다. 부르주아는 “조각은 몸이며, 내 몸은 조각(For me, sculpture is the body. My body is my sculpture.)이다”라고 말했는데 ‘마망’(Maman)은 그녀 자신이자 그녀의 어머니 이기도 했던 것이다. 자신이 겪은 고통의 체험을 돌을 쪼고 나무를 깎는 거친 작업과, 천을 꿰매어 인체를 만드는 부드러운 작업의 양면적 방법을 통해서 스스로 심리적 치료에까지 나선 것이었다. 이 즈음 프랑스 화가 페르낭 레제(Fernand Leger; 1881~1955)를 만났는데, 그는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을 보고 화가를 넘어선 조각가라고 칭했다.


미술로 자신의 아픔을 치유한 작가 루이스 부르주아를 두고 오스트리아의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정신분석학(pyscholanalysis)에 따르면, 어릴 적 겪었던 힘든 사건들, 예를 들어, 부모의 폭언이나 폭행, 독재 등은 회상하기가 고통스럽기 때문에 무의식으로 깊숙이 내려앉게 되는데, 루이스 부르주아처럼 마주하기 어려운 어린 시절의 아픔을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끌어올림으로써 자아는 현실을 수용하고 용기를 얻으며 정신적으로 건강해진다고 말한바 있다. 무의식으로 억압된 괴로움과 불안을 표현하도록 격려하는 데에 미술 치료(art therapy)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루이스 부르주아의 ‘마망(Maman)’은 오늘날까지도 일컬어지고 있다.


루이스 부르주아는 평생 모성애를 담은 작품에 전념했고 자신처럼 불행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누군가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건 사고와 문제들, 어려움과 난관, 그리고 불행과 슬픔을 극복하고 치유하기 위해서는 모성애와 같은 여성적인 따뜻함, 부드러움, 포근함 등이 필요하다고 여겼고, 이런 생각들을 작품 속에 투영하려 평생 노력했다.


2008년에는 그녀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제작되기도 하였는데. 영화제목은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The Spider, the Mistress and the Tangerine)’(미국)로, 마리온 카조리와 아메이 윌러치가 감독했다.


미술치료를 통해 모든 것을 용서한 루이스 부르주아는 100세가 되던 2010년 5월 31일 미국 뉴욕에서 심부전으로 사망하였다. 이로써 그녀의 치유작업인 예술기록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녀에게는 입양한 아들과 1940년 출산한 아들 장-루이 부르주아(Jean-Louis Bourgeois), 1941년 출산한 아들 알랭(Alain)이 있는데 모두 엄마의 성을 따랐다.


BONUS NOTE:


‘마망(Maman)’은 총 6점(edition)이 전 세계 명소에 설치 되어있는데, 위 사진 속 거미 작품은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에 설치된 ‘마망(Maman),927.1×891.5×1023.6cm’의 모습이다. 이 밖에도 일본 도쿄 롯폰기 모리빌딩, 캐나다 국립미술관과 서울 삼성미술관 리움 등에 있다.


부르주아는 ‘마망(Maman)’보다 작은 거미 작품을 ‘스파이더(Spider)337.8×668×632.4cm’라고 명했는데 역시 6점(edition)이 제작됐고, 그중 2점이 한국에 있다. 1996년 ‘스파이더’가 먼저 만들어졌고, 이어서 엄마에 해당되는 ‘마망’이 탄생했다. 2000년 런던'테이트모던 미술관'개관 전에 세트가 나란히 출품되기도 했다.


리움이 소장한 ‘마망’(Maman)은 총 6개의 에디션 중 6번째 작품이었고, ‘스파이더’(Spider)는 4번째 에디션으로 2005년인 15년 전 구입당시 세트가 100억 원을 훌쩍 호가 했다고 한다. 이후 신세계 이명희 회장 역시 ‘마망’을 구입하고자 했으나, 앞서 리움이 구입한 것이 마지막 에디션 이었던 터라 도수 없이 ‘스파이더’(Spider)로 아쉬움을 달랬다는 후문이다. 신세계 백화점 본관 옥상에 설치 됐던 ‘스파이더’는 당시 구매가가 40억 원대로 알려져 있다. 이후 부르주아의 조각은 지금까지도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가격이 뛰었는데, 성공적인 투자였음은 물론, 현재까지도 한국이 3점이나 소장하고 있다니, 왠지 내꺼인양 우쭐하기 까지 하다. 한편, ‘스파이더’의 경우 크기를 달리 하거나 여러 모양(벽에 달라붙는 형태도 있다)으로 변주되어 5개의 시리즈로 작품이 더 있다.


필자는 비로소 그녀가 말했던 “예술은 정신적 온전함을 보증하는 것이다. 예술은 정신적 외상의 경험이거나 재경험이다.”라는 것에 공감할 수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예술은 심리적 압박의 고통을 완화하는 상처받은 자아의 치유와 성장을 위한 도구였다. 오랜 세월을 예술에서 재현하려고 했던 ‘자아 찾기’와 ‘삶의 해답 찾기’를 위해 탄생된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들은 ‘병든 나르시시즘’과 부모와의 관계에서 받은 상처에서 치유되어 ‘건강한 나르시시즘’을 찾기 위한 노력이었던 것이다,


예술가들에 의한 창작행위로 안녕을 기원하는 활동은 인간 역사의 태동과 더불어 행해져 왔고, 종교적, 정신적인 치유의 의미를 내포해 왔다. 때문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고단한 삶 속에서 예술은 톡톡히 치유자의 역할을 해낸다.


예술소비 1단계인 예술작품 감상을 통해서 우리는 치유의 시간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의 메마른 가슴에 단비를 뿌리며 삶의 희망이 되어주는 예술 한 점과 그 아름다운 힘에 대한 이야기는 나의 건강한 삶을 위한 척도이자 슬기로운 예술소비지가 될 것이다.


홍소민 이서갤러리 대표 aya@artcorebrow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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