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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타워] 대법원장은 국무위원이 아니다

장혜진 입력 2021. 03. 03.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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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남부지방법원 청사 5층, 치안법원 주법정 판사석 바로 뒤에는 나무로 만든 세 개의 회전원통이 있다.

행사가 시작되자 문 대통령이 박수를 받으며 중앙 통로를 통해 입장했고, 바로 뒤를 김 대법원장이 따라 걸어들어왔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달 17일 대법원을 항의 방문한 국민의힘 의원들의 사퇴 요구를 명확히 거부했다.

그러나 대법원장은 문재인정부의 국무위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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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권분립 한 축의 수장으로서 본연의 역할해야

미국 뉴욕남부지방법원 청사 5층, 치안법원 주법정 판사석 바로 뒤에는 나무로 만든 세 개의 회전원통이 있다. 잠금장치가 달린 원통에는 각각 A, B, C라는 표식이 있다. 재판 기간에 따라 분류한 것이다. 공소장이 제출되면 담당 치안판사는 원통을 돌려 고루 섞은 다음 밀봉된 봉투를 하나 집는다. 봉투 안에는 사건을 담당할 판사의 명함이 들어있다.

‘월가의 저승사자’로 불린 프릿 바라라 전 뉴욕남부지검장은 이 회전원통 관행이 “눈에 보이지 않는 정의를 공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특히 형사소송은 “신체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는 사안인 만큼 이러한 공정성이 더욱 요구된다”는 것이다. 그가 쓴 ‘정의는 어떻게 실현되는가’의 한 대목이다.
장혜진 정치부 기자
유엔의 후원으로 여러 나라 법관 그룹이 인도 벵갈루루에 모여 의결한 내용을 펴낸 법관행동준칙(The Bangalore Principles of Judicial Conduct)은 각국의 법관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공중의 눈에 어떻게 비칠 것인가?(How will this look in the eyes of the public?)” 법관윤리의 제일 기본 원리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법관이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여부가 아니라, 법관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에 관하여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라는 것이다. 정치적 중립에 대해 스스로 얼마나 올바른 생각을 가졌는지 몰라도, 중립성을 의심받는 외관을 만들어냈다면 이미 판사로서 중대한 결함을 갖게 된 것이란 얘기다.

삼권분립의 세 축 중 사법부를 대표하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최근 정치권 논란의 한복판에 섰다. 문득 2018년 9월 문재인 대통령 뒤를 따르던 김 대법원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서초동 대법원청사 중앙홀에서 열린 ‘법원의 날 70주년 기념식’에 문 대통령이 참석했다. 행사가 시작되자 문 대통령이 박수를 받으며 중앙 통로를 통해 입장했고, 바로 뒤를 김 대법원장이 따라 걸어들어왔다. 이를 지켜본 한 판사는 “대법원에서 열린 법원의 날 행사에 대법원장이 자기 자리에 서서 대통령을 맞이해야지, 대통령 뒤를 졸졸 따라 걸어들어오는 모습이 보기 좋지 않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축사에서 수사가 진행 중이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사법농단’과 ‘재판거래’ 의혹”으로 규정하며 “반드시 규명돼야 하며, 잘못이 있다면 사법부 스스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해 12월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에 대한 행정법원의 첫 심문일 당일에도 문 대통령의 간담회 요청을 받고 청와대로 향했다. 지난달 법관인사에서는 친정권 성향이란 평가를 받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 형사사건 재판장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 재판장을 콕 집어 이례적으로 유임해 ‘인사 농단’ 논란이 일었다. 임성근 전 부장판사 사표 반려 과정에 대한 거짓말이 들통나며 ‘거짓의 명수’라는 야당의 비아냥도 사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달 17일 대법원을 항의 방문한 국민의힘 의원들의 사퇴 요구를 명확히 거부했다. 그가 정치권의 압박에 결연히 맞서는 순간은 야당 정치인을 상대할 때뿐이다.

김 대법원장에게는 분명 4년 전 춘천지방법원장이던 자신을 사법부 수장 자리에 발탁해준 문 대통령에 대한 고마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장은 문재인정부의 국무위원이 아니다. 박범계 법무부장관이야 스스로를 “문 대통령의 참모”, “법무장관에 앞서 여당 국회의원”이라 말한다지만 일국의 대법원장은 그래서도, 그렇게 보여서도 안 된다.

장혜진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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