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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진영논리'에 갇힌 공정

김기동 입력 2021. 03. 03.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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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주택자·검찰·대기업은 '악'
갈라치기·선동이 공정 훼손
주변 불공정·불의엔 눈감아
'희망고문'보다 선택·집중 필요

마트 계산대에 늘어선 줄 가운데로 누군가 슬그머니 새치기를 한다. 지하철의 한 남자가 다른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쩍벌’을 하며 시치미를 뗀다. 침대가 등장하지 않아 이상하긴 하지만, 요즘 TV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침대 브랜드 광고의 한 장면이다. 우리가 당연한 듯 여기던 규범이 흔들릴 때 사람들은 불쾌감을 느낀다. 업체는 ‘Manners maketh comfort’라는 카피 문구를 통해 편안함을 주는 침대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단어만 다를 뿐 ‘매너’는 새치기·쩍벌 등 반칙과 편법을 배척하는 문재인정부의 국정 슬로건인 ‘공정’과도 맥이 닿아있다.

지금 국민들은 편안할까. 적폐청산, 검찰개혁, 중수청, 부동산, 재난지원금 등은 모두 허울뿐인 ‘공정’ ‘정의’의 부산물이다. 결과는 어떤가. 언제 폭발할지 모를 지뢰밭처럼 국민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진영논리에 갇힌 공정이 불러온 한계다. 검찰, 다주택자, 대기업은 모두 공정을 가로막는 적이다. 공정과 평등은 엄연히 다르다. ‘정의론’의 저자 존 롤스는 “어떤 사회도 모두가 똑같이 대우받을 수 없고, 상이한 역할에 따른 기회와 다른 분배를 인정한다”고 했다. 절차적 하자만 없다면 불평등과 차등도 정당화해야 한다는 논리다. 공정한 사회는 반칙과 특권 없이 능력으로 평가받는 사회다. 그런데도 눈엣가시 같은 존재들을 싸잡아 ‘악’으로 규정해 팔을 비틀어 빼앗으려 든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인간의 원초적 본성을 악용한 사회주의 심보나 다름없다. 능력주의에서 오는 불평등을 정치인의 갈라치기와 선동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김기동 논설위원
재난지원금만 해도 그렇다. 코로나19는 현 정부에 내려준 단비 같은 존재다. 평소라면 국민에게 돈을 ‘퍼준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총선에서 단물을 빼먹은 정부가 공정을 내세워 또다시 15조원짜리 재난지원금을 뚝딱 만들어냈다. 5번째 빚잔치다. ‘포퓰리즘’이라는 지적에 여당 원내대표는 “민생을 포기하라는 얘기냐”고 반문한다.

경제적 타격을 입은 국민을 돕겠다며 ‘떡 본 김에 제사 지내듯’ 혈세를 마구 퍼내서 뿌린다. 진정한 복지국가의 실상은 거저 주는 게 아닌데도 다른 사람의 주머니를 털어 남의 떡으로 잔치까지 하려 든다. ‘국가채무비율 60%’라는 재정준칙안은 국가부채 급증을 합리화하려는 면죄부다. ‘나랏돈은 공짜’라는 환상이 번질까 걱정이다.

가덕도 신공항은 불공정의 끝판왕이다. 과거 정부와 연관된 것은 무조건 뒤엎는 파괴정치이자, 악성 포퓰리즘이다. 28조원의 세금을 쏟아붓는데도 공정·상식은 ‘선거’라는 괴물이 삼켰다. ‘오거돈이 죽은 가덕도를 살렸다’는 비아냥 속에 부산·경남 주민들마저 절차적 합리성에 의문을 품는다. 여기에 오거돈 전 시장 일가의 수상한 땅 매입 의혹은 불난 곳에 기름을 끼얹었다. 3기 신도시의 공공개발을 맡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으로 공공기관의 공정성마저 의심받기에 이르렀다. ‘판사 탄핵’이라는 패악정치로 사법부의 정치적 공정성을 위협하고, 대북전단금지법으로 국민의 입을 막더니 이젠 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언론까지 장악하려 든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여당 후보가 우리나라를 ‘문재인 보유국’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당황스럽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는 만들었지만, 결과는 180도 달랐다. 공정·정의를 표방하면서 주변의 불공정·불의는 외면했다. 통합을 약속하고도, 위기 때마다 분열·적대를 교묘히 이용했다. 그토록 자화자찬하는 K방역과 경제 선방은 정부 정책을 묵묵히 인내한 국민과 국가에 대한 희망을 접은 기업들의 처절한 자기혁신 덕분이다. 신념이나 선입관에 매몰된 ‘확증편향’에 집단사고가 더해진 진영논리가 대한민국을 좀먹고 있다. 공정이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임기 14개월을 남긴 문재인 대통령. ‘레임덕은 없다’고 강변하지만 선거 6개월 전 후보 선출 규정으로 보면 ‘정치적 임기’는 얼마 남지 않았다. 공약에 대한 조급함에 쫓긴 ‘희망고문’보다는 선택과 집중에 전념해야 할 시점이다.

김기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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