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서재] "중위계층의 선호 경향을 보라"

입력 2021. 3. 4.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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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패픽 《정치로 읽는 α수익》
"모든 투자 결정 요인을 제약하는 건 政治
양극단 아닌 중위투표자의 세계관 읽어야"

투자 분석에서 정치적 요인에 대한 판단은 선택일까 필수일까? 2015년 아르헨티나에서 우파 기업인 출신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이 당선됐다. 오랜 기간 포퓰리즘으로 만신창이가 된 경제를 바로잡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고개를 들었다. 새 대통령은 경제 개혁을 적극 추진했고, 글로벌 투자자 사이에 아르헨티나 투자 열풍이 일었다. 이때 저자 마르코 패픽은 정권 교체만으로는 결코 그 나라 경제의 향방이 바뀌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투자에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결국 마크리 정부의 모든 노력은 무위로 끝난 채 경제난이 가중됐고 유권자들은 2019년 다시 좌파 포퓰리스트를 선택했다.

미국의 대체투자 전문기업 클록타워그룹의 수석전략가 마르코 패픽은 《정치로 읽는 α수익(Geopolitical Alpha)》에서 “정치야말로 모든 투자 결정 요인들을 최상위에서 지배하는 강력한 제약(constraint)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정치적 제약이 작동하는 순간, 인공지능 기법을 비롯한 정교한 퀀트 분석과 다채로운 경제·사회 분석이 다 무력해지며, 영원히 굳건할 것 같던 사업 기반도 한순간에 붕괴된다. 가까이는 개성공단 사태에서도 경험하지 않았던가? 정치를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투자분석가, 특히 국제정치 역학을 외면하는 경제 또는 금융교육 관행은 분명히 잘못됐다.

마크리 대통령 사례에서 보듯이 많은 투자분석가가 정치인의 발언이나 표방하는 이념에 현혹돼 그가 가진 정치적 자본의 물리적 제약을 냉철하게 보지 못한다. 푸틴 같은 독재자가 이따금 일으키는 도발 사건이나 각종 발언에 가려 그들이 처한 현실의 물리적 제약, 즉 국제교역 구조와 정치적 지지 기반을 냉철히 살펴보지 못하면 정말로 소비에트 연방이 재건될지도 모른다고 막연히 예상하기 쉽다. 이런 오판에는 언론과 소셜미디어의 오도가 한몫한다. 특히 TV 토론자나 소셜미디어의 논평가로 자주 등장하는 ‘가짜 전문가’들의 폐해가 크다.

제대로 된 정치 분석을 하려면 고도로 훈련된 데이터 해석 노하우와 풍부한 역사·사회·문화 지식이 필요하지만, 저자는 누구나 쉽게 적용할 수 있는 한 가지 지침으로 중위투표자 분석을 제시한다. 양극단 정파의 지지자가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를 보지 말고 그 사회의 중위계층이 어떤 선호에 기울어져 있는지를 보라는 것이다. 어디서나 우파든 좌파든 자신이 추종하는 이념이나 희망하는 정책대로 세상이 굴러가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을 경우 세상이 잘못됐다고 비판한다. 사실 모든 시대마다 이게 오판의 출발점이었다.

마키아벨리식으로 표현하면, 정치인들이 아무리 자신의 ‘비르투(virtu)’, 즉 특정 정책을 관철할 의지와 역량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를 둘러싼 ‘포르투나(fortuna)’, 즉 거역할 수 없는 물리적 제약을 결코 극복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 제약은 한 사회 안 중위투표자의 세계관에 대체로 반영돼 있다. 시진핑이 한때 부패 척결에 이어 최근 환경오염 방지에 골몰하는 것은 그가 도덕적 지도자여서가 아니라, 중국이 개혁개방 이후 고소득자가 대거 증가한 상황에서 중위계층의 지지를 유지하기 위한 포석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지금 중국이 처한 포르투나를 고려하면, 지금까지 보여온 미국을 향한 대립각은 누그러질 수밖에 없다. 세계화 퇴조와 국익 우선주의가 대두한 이유는 도널드 트럼프 개인의 선호라서가 아니라 미국 중위계층 시민의 시계추가 그리 기울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오판이 2020년 이후 코로나 사태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고 저자는 일침을 가한다. 과거 에볼라를 비롯한 여타 감염병 데이터, 그리고 실제 국가별 코로나 확진자와 사망자 데이터를 냉철히 분석해 보면, 이 사망률은 주로 한쪽 극단인 노년층 고위험군에게 문제 되는 현상이며 중위계층에게는 의외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와 언론이 조장하는 보편적 공포는 너무 과장돼 있다. 포르투나의 물리적 제약은 결코 바이러스에 있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삶과 경제에 있다는 사실을 정책가와 유권자 모두 망각하고 있다. 근거 없는 공포에 바탕을 둔 과도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격리 통제는 그 의도와 달리, 오히려 자기실현 과정을 거쳐 경제 위기로 사람들을 더 죽이고 마는 우책(愚策)이 아닐까?

송경모 <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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