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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진의 돈과 세상] [9] 전쟁 중에도 장수를 바꾼다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입력 2021. 03. 0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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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1916년 제46대 미국 재무장관을 지낸 윌리엄 맥아두(1863~1941). 세계대전을 계기로 내치부터 외교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 재무부 수장이었지만, 준수한 외모와 단순 명료하고 자기 확신 강한 성격과 달리 국가 경제 운용에 있어서는 원칙이 부족했다는 평을 받았다. /위키피디아

경제부총리와 한은 총재의 만남은 뉴스거리다. 미국은 그렇지 않다. 재무장관과 연준 의장이 워낙 자주 만나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에는 그 만남이 수평적이지 않았다. 법률상 연준위원회의 의장인 재무장관이 연준(Fed) 전체를 자기 휘하인 것처럼 다뤘다.

그 연준법을 만든 맥아두 재무장관은 현직 대통령 윌슨의 막내 사위였다. 그런 배경에서 연준 위원과 지역 연준의 임원들도 맥아두가 점찍었다. 훗날 자신의 대선 출마를 염두에 둔 ‘내 사람 심기’였다. 지역 연준의 위치도 그가 정했다. 그의 입맛대로 고른 12개 지역 연준의 위치는 아주 무원칙하다.

역사상 연준을 가장 혹독하게 다룬 재무장관은 스나이더다. 트루먼 대통령의 친구였던 스나이더는 연준에 국채 매입 규모와 금리 수준까지 시시콜콜 지시했다. 한국전쟁 때문에 재정 적자가 급팽창하여 물가와 시장 금리가 빠르게 뛰는데도 금리 인상을 허락하지 않았다. 참다 못한 연준이 스나이더의 부당한 지시를 언론에 슬쩍 흘렸다. 정부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당시 트루먼은 맥아더 총사령관에게 시달리고 있었다. 한국전쟁에 개입한 중공군을 응징하지 않으면 공산주의에 항복하는 것이라면서 공개리에 핵 공격을 압박한 것이다. 군 통수권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런 판국에 연준 때문에 직권 남용과 국정 난맥이라는 말까지 나오니 난감했다. 일단 스나이더를 불러 질책했다. 연준에 당장 사과하고 통화 정책을 존중한다는 각서를 쓰라고 명령했다. 스나이더는 마뜩잖게 그 지시를 따랐다.

70년 전 오늘 그 화해 각서가 공개되었다. 그것은 재무부와 연준 간의 수평적 관계를 상징하는 기념비가 되었다. 그러나 트루먼은 임기가 1년 남은 연준 의장에게 사표를 요구했다. 판사 출신인 트루먼은 그때 법률상의 임기 보장을 개의치 않았다. 인플레이션과 전쟁 중이라는 사실도 무시했다. 보름 뒤에는 공산군과 전쟁 중인 맥아더도 전격 해임했다. 미국을 놀라게 한 두 인사 충격 혹은 국정 수습 노력은 한국전쟁이 만든 나비효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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