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조선일보

[김성윤의 맛 세상] 봄철에 탱탱하게 살 오르는 가덕도 숭어 아시나요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입력 2021. 03. 04. 03:03 수정 2021. 03. 04.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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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과 바다 만나는 가덕도 숭어, 탱탱하고 기름져 최고로 대접
나무배 어부들이 잡던 '숭어들이'는 옛말.. 관광 프로그램만 명맥
꾸덕꾸덕 숭어찜 숭덩숭덩 숭어조림, 공항 생기면 다 사라질 운명

음식이 주 관심사인 나에게 부산 가덕도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숭어다. 숭어는 한반도 모든 바다에서 잡히지만 가덕도 숭어를 으뜸으로 친다. 낙동강과 바다가 만나는 가덕도 앞바다는 숭어의 먹이인 플랑크톤이 풍부하고 물살이 빠르다. 제철인 봄에 잡히는 가덕도 숭어는 육질이 탱탱하면서도 기름이 올라있다. 현지에선 “임금님 수라상에 진상됐다”고도 하지만 확인되지는 않는다. 그만큼 맛이 뛰어나다는 표현으로도 여겨진다.

가덕도 숭어가 맛있는 또 다른 이유는 ‘숭어들이’라는 독특한 어획법 때문이라고도 한다. 적어도 150년 넘게 가덕도에서 행해온 전통 어로 방식이다. ‘육소장망 어로법’이라고도 한다. 타원형으로 설치된 소형 어선 6척이 숭어가 다니는 길목에 그물을 쳐놓고 기다리다가, 숭어 떼가 지나갈 때 일제히 그물을 들어 올려 잡는다. 이렇게 잡은 숭어는 다른 방식으로 잡는 것보다 상처가 적고 스트레스가 덜해 맛이 뛰어나고 싱싱함을 오래 유지한다고 한다.

/일러스트=이철원

숭어들이는 이렇게 진행된다. 커다란 발동선 2척이 가덕도 앞바다 어장으로 작은 나무배 6척을 끌고 나간다. 동력(動力)이 없는 목선에는 선원 20여 명이 나눠 타고 있다. 발동선은 목선을 어장 근처까지만 데려간다. 여기서부터는 선원들이 노를 저어 가야 한다. 예민한 숭어들이 엔진 소리와 기름 냄새를 맡고 도망가는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어장에 도착하면 선원들은 배 6척을 둥그렇게 세우고 그 가운데 그물을 내린다. 어장 맞은편 벼랑 위 망대(望臺)에는 숭어들이를 총괄 지휘하는 어로장이 올라가 있다. 어로장은 숭어들이 경험이 많은 노련한 어부다.

이제부터 선원들은 숭어 떼가 오기를 기다린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지루한 기다림이다. 어로장은 숭어 떼를 놓칠세라 바다를 눈이 빠져라 지켜본다. 선원들은 배 위에서 잠자거나 낚시 따위 소일거리로 시간을 때운다. 밥도 배에서 먹는다. 어로장이 먹을 음식은 망대까지 밧줄로 연결된 도르래로 실어 올린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바닷물이 불그스름하게 색이 변한다. 숭어 떼가 왔다는 신호다. 망대에서 어로장이 “(어구) 봐라”라고 메가폰으로 고함을 지른다. 숭어 떼를 목격한 어로장이 선원들에게 그물 당길 준비를 하라는 지시다. 선원들이 번개같이 그물에 달려든다. 어로장이 다시 지시하자 선원들이 있는 힘껏 그물을 잡아당긴다. 순식간에 숭어 떼가 그물에 갇힌다. 배들이 거리를 좁히면서 그물을 끌어올린다. 그물 가득 잡힌 숭어를 배로 옮긴다. 모든 작업이 1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안에 끝난다.

부산 음식에 해박한 시인 최원준씨는 “가덕도에서는 숭어로 온갖 음식을 다 해 먹는다”고 했다. “회와 구이는 물론이고 찜, 조림, 수제비, 전을 숭어로 만들었죠. 숭어 한 토막에 직접 채취한 자연산 돌미역과 함께 끓이다 집간장으로 간한 숭어 미역국은 생선국이라 하기에는 비린 맛도 없고 삼삼하고 담담하죠. 돌미역의 향 뒤로 숭어의 담백한 육수가 파도가 일 듯 찰랑대지요. 맑은 숭어매운탕은 딴판입니다. 탕에 들어가는 모든 양념이 숭어와 어우러지며 진하면서도 개운하죠. 땡초의 알싸함에 웅숭깊은 시원함 또한 끝 갈 데가 없습니다. 꾸덕꾸덕 말린 숭어를 묵은지에 얹어 쪄 먹는 ‘숭어찜’과 숭어와 무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조려 먹는 ‘숭어 조림’은 숭어 요리 중의 일미(一味)지요.”

수십 명이 달라붙어 숭어가 가득 든 그물을 끌어올리는 장관은 이제 보기 힘들다. 신항(新港)이 생긴 뒤로 조류가 바뀌면서 가덕도 앞바다를 지나는 숭어가 크게 줄었다. 게다가 인건비가 올라 수지타산 맞추기가 어렵다. 그나마 선원 구하기도 쉽지 않다. 예전에 배 타던 이들은 고령으로 더 이상 타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젊은이들은 힘든 일이라 하려 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기계를 이용해 그물을 끌어 올리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전통 숭어들이는 마을에서 운영하는 관광객을 위한 체험 프로그램으로 겨우 맥을 이어가고 있다. 가덕도 신공항이 정말로 건설된다면 그마저도 힘들어질 것이다. 가덕도 숭어가 전설로 기억될 날이 멀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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