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무엇을 위한 기념일인가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 2021. 3. 4.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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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달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한 ‘이십공신회맹축(二十功臣會盟軸)’은 1680년 열린 회맹제를 기념하여 만든 문서다. 24m에 달하는 이 문서는 원형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으며, 관련 기록도 충실하여 문화재로서 가치가 높은 만큼 국보로 지정하기에 손색이 없다.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

회맹제는 공신과 그 자손들이 모여 공신 책훈을 기념하고 국왕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의식이다. 연례행사는 아니지만 국가 주관의 공식 행사인 만큼 오늘날의 국가기념일이나 다름없다. 회맹제의 절차는 이렇다. 날을 잡아 제단을 설치하고 국왕이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지낸다. 제사를 마치면 국왕은 짐승의 피를 입술에 바르는 삽혈 의식을 거행한다. 두말하지 않겠다는 맹세다. 의식을 마치면 잔치를 열어 즐긴다. 참석자에게는 푸짐한 선물을 하사한다. 1680년 회맹제에는 개국 이래 당시까지 20차례에 걸쳐 책훈된 공신 및 그 자손 412명이 참석했다. 회맹제 참석은 공신의 권리이자 의무다. 정당한 이유 없이 불참하면 처벌을 받는다. 하기야 국가기념일 행사에 국가유공자가 빠지면 모양새가 좋지 않다.

회맹제의 기원은 중국 한나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고조가 천하를 평정한 뒤 개국공신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맹세했다. “황하가 허리띠처럼 마르고 태산이 숫돌처럼 닳도록 나라를 길이 보전하여 후손에게 전하리라.” 황하가 마르고 태산이 닳도록 공신을 우대하고 자손만대 특권을 누리게 해주겠다는 약속이었다. 산하대려(山河帶礪)의 맹세라고도 한다. 애국가의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이라는 가사가 여기서 나왔다. 그냥 각서를 써주는 걸로는 부족했는지 이 맹세글을 철판에 주사(朱砂)로 써서 나눠줬다. 단서철권(丹書鐵券)이라고 한다. 하지만 한 고조는 오래지 않아 개국공신들을 차례로 숙청했다. 산하대려의 맹세도, 단서철권의 약속도 소용없었다. 과거의 약속은 당면한 현실 앞에 무력하기 마련이다.

조선의 회맹제는 1392년 9월28일 처음 열렸다. 개국공신의 책훈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이때 참석한 공신 중 상당수가 10년도 못 가서 왕자의 난에 연루되어 자격을 박탈당했다. 개국공신만이 아니었다. 조선시대 공신 책훈은 총 28차례였는데, 이 중 4분의 1이 논란 끝에 아예 무효가 되었다. 이 밖에 공신 자격을 획득하고도 처형당하거나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이십공신회맹축 역시 영원히 공로를 기억하겠다는 맹세가 얼마나 덧없는 약속인지 보여준다. 이 문서는 1694년 만들어졌다. 1680년 열린 회맹제를 기념하는 문서를 14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1680년 회맹제는 보사공신의 책훈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남인의 역모를 고발한 공로로 책훈된 서인 공신들이다. 이들은 기사환국(1689)으로 서인이 실각하자 자격을 박탈당했고, 갑술환국(1694)으로 서인이 재집권하면서 공신 자격을 되찾았다. 박탈한 자격을 돌려준 건 초유의 사건이다. 이처럼 영원히 공로를 기억하겠다는 약속은 권력의 향배에 따라 헌신짝처럼 버려지기도 하고, 슬그머니 다시 주워담기도 한다. 입술에 피를 바르며 맹세해봤자 소용없다. 약속을 실천하려는 의지가 없으면 과거를 기념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오늘날 국가가 국경일과 기념일을 기리는 이유 역시 단순히 과거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에 머물지 않는다. 과거에 그랬듯이 앞으로도 부당한 폭력에 맞서 싸우고, 압제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편에 서겠다는 약속이다. 국가의 존속과 발전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인류 보편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국제 정치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모르지 않지만, 외국의 민주화 시위에 번번이 소극적인 우리 정부의 태도는 그래서 아쉽다. 과거 우리가 경험한 사태가 어디선가 반복되고 있는데 남의 나라 일이라고 구경만 한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기념일이 과거를 반추하는 날에 불과하다면 성대한 기념행사에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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