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경계 실패’ 이유 정말 모르나

원선우 기자 2021. 3. 4.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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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참모본부는 17일 오전 "우리 군이 어제 동해 민통선 북방에서 신병을 확보한 인원(귀순 추정)은 잠수복과 오리발을 착용하고 해상을 통해 GOP(일반전초) 이남 통일전망대 부근 해안으로 올라와 해안철책 하단 배수로를 통과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사진은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 인근 남측 해변. 2021.02.17.뉴시스

지난달 강원 고성에서 발생한 ‘오리발 귀순’ 경계 실패와 관련, 군 당국이 육군 제22보병사단에 대한 정밀 진단에 착수했다. 고강도 진단을 거쳐 부대를 ‘재창설’ 수준으로 바꾸겠다고도 한다. 서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17일 국회 국방위에 출석, “22사단만 이번 기회에 정밀 진단하겠다”며 “22사단은 철책과 해안을 동시에 경계, 작전 요소와 자연환경 등 어려움이 많다”고 한 데 따른 조치다.

서 장관이 ‘정밀 진단’을 강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서 장관은 지난해 9월 취임 직후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카투사 휴가 특혜 논란에 대해 “정밀 진단을 통해 개선점을 찾겠다” “부족한 부분이 군 전체 상황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번 22사단 사건에 대한 답변과 판박이다. 그러나 아직도 진단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문제는 말로만 ‘정밀 진단’ ‘실태 파악’을 외칠 뿐 달라진 게 없다는 사실이다. 현 정부 출범 후 2019년 6월 목선 귀순, 지난해 5월 태안 보트 밀입국, 7월 배수로 월북, 11월 철책 귀순에 이어 오리발 귀순까지 5번째 경계 실패가 이어졌다. 9·19 군사합의 이후 최전방 감시초소(GP)를 부수고 해·강안 철책을 대규모로 걷어낸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우려가 나온다. GP 철거 당시 군은 “CCTV 등 과학화 시스템을 갖췄기 때문에 경계에 문제가 없다”고 했었다.

CCTV 같은 장비가 아무리 발달한들 감시하는 사람이 즉각 대응하지 않으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 이게 최근 경계 실패의 핵심 원인이다. 태안 밀항은 13회, 목선 귀순은 3회, 배수로 월북은 7회 감시 장비에 포착됐지만 잡지 못했다. 철책 귀순 때는 북한 민간인 남성이 일반전초(GOP) 철책을 넘는 장면을 포착하고도 즉각 검거에 실패했다. 남성이 14시간 30분 동안 우리 영토 9km를 휘젓고 다녔는데도 서 장관은 “경계 실패가 아니다”라고 했다.

군 안팎에선 ‘서 장관의 그런 태도가 3개월 만의 경계 실패를 또 허용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번 오리발 귀순 때도 북한 남성이 8차례나 감시 장비에 포착됐다. 여당 의원들조차 “왜 매년 똑같은 사건이 반복되느냐”고 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서 장관은 “원인 조사가 우선”이라고 했다. 5번째 경계 실패에도 ‘진단’이 먼저라는 것이다.

프로이센 전략가 클라우제비츠(1780~1831)는 ‘전쟁론’에서 “전쟁의 수단은 오직 싸움(Kampf)뿐”이라며 “군인이 훈련하고 잠자고 먹고 마시는 것은 오로지 싸우기 위함”이라고 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55만 장병을 통솔하는 국방부 장관은 경계 실패의 근본 원인을 외면한 채 ‘정밀 진단’만 외친다. 군대가 병원, 장관이 의사라도 되는 양 말이다. 당장 내일 북한군이 도발하면 총기와 화포 대신 청진기와 MRI 장비로 맞설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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