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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만물상] 1000만 인구 깨진 서울

김태훈 논설위원 입력 2021. 03. 04. 03:18 수정 2021. 03. 04.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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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23일 오후 경찰청 헬기에서 내려다본 서울 테헤란로의 모습 삼성 본사(오른쪽 아래)와 롯데월드타워의 모습이 보인다./장련성 기자

“앞으로 오빠라고 부를 테니까 절 서울로 데려가 주시겠어요? (중략) 서울로 가고 싶어 죽겠어요.” 소설가 김승옥이 1964년 발표한 단편 ‘무진기행’에는 가상의 지방도시 무진에서 근무하는 여교사가 서울에서 내려온 남자에게 상경을 도와 달라고 조르는 장면이 나온다. 1960년대 지방 젊은이들에게 서울은 자유와 풍요, 미래를 약속하는 신천지였다. 2년 뒤 소설가 이호철은 ‘서울은 만원이다’에서 욕망이 팽창하는 대도시 서울의 초상을 그렸다. ‘집은 교외에 자꾸 늘어서지만 연년이 자꾸 모자란다. 일자리는 없고, 당국은 욕사발이나 먹으며 낑낑거리고.’

▶'서울은 만원이다'가 발표되던 해 서울 인구는 380만명이었다. 6·25 직후 100만명에서 13년 만에 네 배 가까이 늘었다. 1970년엔 550만명을 돌파했다. 어디나 사람이 넘쳤다. 학교는 2부제, 3부제 수업을 했고 교실마다 콩나물시루였다. 집주인과 세입자가 한 울타리 안에 사는 일도 흔했다. 누구든 서울에 터 잡으면 사는 집을 베이스캠프 삼아 시골 형제와 친척을 불러 올렸다. 서울 인구는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1028만명을 기록하며 마침내 ‘천만 고지'를 넘어섰다.

▶돈과 기회가 있는 곳에 사람이 몰린다. 잘나가는 세계 주요 도시들이 증명한다. 2015년 1349만명이던 도쿄 인구는 지난해 1월 기준 1395만명에 이른다. 런던은 2015년 860만명에서 2019년 898만명으로 늘었다. 그런데 서울은 반대다. 1992년 1097만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줄곧 인구가 준다.

▶지난해 서울 인구가 991만명으로 32년 만에 ‘천만 도시’에서 내려왔다. 코로나19로 외국인 서울 주민 감소 폭이 컸다고 한다. 하지만 그래 봐야 3만9000명 줄었을 뿐이다. 내국인 서울 인구가 2016년 이미 1000만명 밑으로 내려앉은 게 더 크다. 2018년엔 57만명이 서울 주소를 포기했다. 이 중 36만명이 경기도로 이사했다. 비싼 집값이 탈(脫)서울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됐다.

▶르네상스 소설 ‘데카메론’의 인물들은 흑사병이 창궐하는 도시를 탈출해 교외로 숨어든다. 요즘 말로 팬데믹에 따른 인구 분산 효과다. 최근 뉴욕 인구도 코로나로 잠시 줄었지만 지금은 회복 중이다. 팬데믹이 아니어도 서울 인구는 쪼그라든다. 2034년엔 900만명도 깨진다. 그 와중에 1인 가구 비율은 2038년까지 계속 는다고 한다. 결혼 포기, 만혼, 독거노인 증가가 이유다. 사람으로 넘쳐나던 서울의 모습이 추억으로 남을 때도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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