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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옥의 컬처 아이] '이건희 미술관'은 어떤가

입력 2021. 03. 04.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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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컬렉션’, 통 큰 기부는 어떤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사후 그가 남긴 천문학적 액수의 미술품을 두고 상속세 물납제 확대 논의가 불붙었다. 3일 한국화랑협회 등 문화예술단체는 물론 전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들까지 나서 상속세의 문화재·미술품 물납제 도입을 촉구했다. 상속세 물납제 논의를 재점화한 것은 지난해 12월 1일 문체부와 박물관협회가 공동 주최한 ‘상속세의 문화재·미술품 물납제도 도입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였다. 오비이락(烏飛梨落)격인 타이밍이 문제였다. 앞서 10월 25일 이 회장 타계 직후 토론회가 열려서다.

이건희 컬렉션은 알베르토 자코메티, 프랜시스 베이컨 등의 서양 근현대미술품과 청화백자를 포함한 한국 고미술품 등 1만2000여점으로 가격이 수조원대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50%의 최고 상속세율을 적용하면 세금만도 조 단위로 짐작이 된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은 부동산과 비상장 주식의 물납은 예외로 허용한다. 따라서 법안 개정을 통해 물납제 대상 범위를 확대하자는 것이다. 이미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1월 상속세를 현금 대신 예술품·문화재로 납부할 수 있게 하는 관련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상속세를 미술품으로 낼 수 있게 되면 예산 부족으로 유물 구입난에 허덕이는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 등 수장고를 채울 길이 열리게 된다. 두 기관의 지난해 유물 구입 예산은 각각 53억원, 39억7900만원이다. 김환기 추상화가 100억원을 넘어선 시대다. 현재로선 둘이 힘을 합쳐도 김환기의 최고작 하나 살 수 없는 처지다.

문제는 물납제의 첫 수혜자가 삼성이 되면 정부도 삼성도 부담이라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법안을 발의한 이 의원과 삼성가의 인연을 거론하는 음모론도 나온다. 삼성에 비판적인 한 인사는 “삼성가가 이 회장 사망에 따른 상속세를 다 납부한 후에 미술품 물납제를 검토하라”며 여론몰이를 했다. 그래서 여러 정황상 이건희 컬렉션의 기증이야말로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제안해 본다.

우선, 삼성가의 상속세 신고·납부 기한인 4월 말까지 물납제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어렵다. 상속세는 사후 6개월 내 신고 납부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속세가 2000만원이 넘으면 6번에 걸쳐 나눠 낼 수 있어 물납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이 경우 ‘삼성을 위한 법 개정’이라는 여론의 집중포화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두 번째, 이런 비난을 피하기 위해 상속세를 낼 현금을 마련하려고 미술품을 경매 시장에 내놓을 경우 컬렉션이 사방으로 흩어질 가능성이 크다. 컬렉션은 미술사적 맥락 하에 꿰어져 있어야 보배다. 흩어지면 그저 고가 미술상품으로 전락하게 된다. 세 번째, 엄청난 물량이 경매 시장에 쏟아질 경우 시장에 미칠 악영향이다. 공급 과다로 미술품 가격이 떨어지며 코로나로 위축됐던 미술시장은 더욱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게 이건희 컬렉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고미술품이나 근대기 미술품의 경우 해외 유통이 금지돼 있다는 점이다. 문화재보호법 제39조는 국보·보물의 해외 유통을 금지하고 있다. 2008년부터 이런 규제 대상을 50년 이상인 것으로 정해 근대 미술품도 국내에서만 팔아야 한다.

국가에 기부하면 상속세는 면제된다. 기부한 미술품의 활용 방식은 다양하게 논의해볼 수 있다. 이미 삼성가에서 기증 검토에 나섰다는 보도도 흘러나온다. 기증한다면 기존 박물관·미술관에 보내는 것보다 ‘국립 이건희 미술관’을 세우는 건 어떨까. 이제 성장에서 성숙의 시대로 나아가야 할 한국에 부족한 게 기부 문화다. 국격을 높일 수 있는 기부 문화를 상징하는 대명사 하나쯤 갖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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