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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조두순 그후] 성범죄자 심리치료 수백 시간 "왜 하나" 알아야 재범 막는다

이정원 입력 2021. 03. 0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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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치료가 전자발찌보다 재범률 낮추지만
지속적·전문적 교육 부실해 동기부여 안돼
"내가 왜 이런 교육 받아야 하나" 불만까지
교정시설에서 성범죄 수감자들이 법원 이수명령에 따른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법무부 제공

"위에서 하라니까, 집중하는 분위기는 아닙니다. 이런 걸 왜 받아야 되나, 건성건성이고. 주위 사람들이 다 그러니까 진지하게 임하는 사람도 없고…"

강간치상죄로 실형을 선고받아 2012년 수감된 30대 중반 남성 A씨. 그는 법원으로부터 명령받은 '200시간 이하 성폭력 심리치료' 이수 과정을 2014년 11월까지 완료하고 이듬해 출소했다. 하지만 치료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출소 4년 만인 2019년 온라인에서 만난 아동에게 유사 성행위를 강요해 다시 실형을 선고받았다.

A씨는 두 번째 출소 직전인 지난해 진행된 전문가 면담에서 자신이 잘못한 것은 분명하지만 첫 수감 때 경험했던 심리치료가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다고 고백했다. A씨는 "여럿이 모여 있어서 범죄에 대해 깊이 털어놓을 상황이 아니었고, 면담 내용에도 깊이가 부족했다"고 말했다.


"내가 왜 사건 이야기를 해야 하나"

심리치료는 성범죄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정 수단 중에서도 재범률 감소에 가장 효과적인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성범죄자들이 출소해 시민들과 '안전한 공존'이 가능하게 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란 얘기다. 법무부는 2016년 심리치료과 신설을 계기로 전국 53개 모든 교정기관에 심리치료 관련 부서를 만들어 운영 중이다.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수료한 출소자는 그렇지 않은 출소자에 비해 30% 정도 낮은 재범률을 보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같은 조건에서 확인한 전자발찌 제도의 재범률 감소 효과(25%)보다도 높은 수치다.

연도별 성폭력사범 출소 인원 중 심리치료 과정을 끝까지 수료하지 못하고 출소하는 인원 비율

하지만 심리치료를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출소하는 인원도 적지 않다. 지난해 11월 법무부 발표 자료에 따르면 법원 명령이나 법무부 지침에 따라 심리치료를 받아야 하는 성범죄자 중 미이수 상태로 출소하는 인원은 2017년 422명(전체 대비 16.3%), 2018년 433명(16.8%), 2019년 490명(17.6%)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9월까지의 미수료율이 24.8%(494명)까지 치솟았다.

수감자가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모두 이수하더라도 치료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2016년 강간미수 등으로 수감돼 100시간 심리치료를 받은 40대 남성 B씨 역시 당시 프로그램에 쉽게 몰입하지 못했던 동료 수감자들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B씨는 "재소자 중에선 '왜 그런 잘못을 했을까'를 되묻기는커녕 '왜 내가 교육자나 다른 수용자들 앞에서 이런 얘기를 해야 하느냐'며 화를 내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범행 유형별 동기부여 안 되면 무용지물

교정시설에서 성범죄 수감자들이 법원 이수명령에 따른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법무부 제공

교도소 내 심리치료가 쉽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수감자에 대한 동기 부여가 힘들기 때문이다. 상담치료사와 신뢰관계를 형성해 참여도를 끌어올려야 하지만, 소수 인원이 다수 수감자들을 맡는 탓에 이런 과정은 생략되기 일쑤다. 현직 교도관 신모(52)씨는 "캐나다 등 해외에선 본격 치료 전에 치료자와 신뢰를 쌓고 프로그램 참여 동기를 마련하는 예비치료 과정을 거치는데 한국에선 그럴 여건이 안 된다"며 "수백 시간 치료명령이 내려진 상황에서 동기 확보조차 안 되니 그 시간은 낭비되는 셈"이라고 전했다.

재범 위험도에 따라 성범죄자를 세 가지로만 분류해 교육하는 시스템도 문제로 지적된다. 수감자 개개인의 범죄 형태나 동기에 맞는 세밀한 치료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현 교정체계는 재범 위험도에 따라 심리치료 과정을 기본·집중·심화로만 나눠 주로 집단별 교육을 실시한다. 2012년부터 2015년까지 300시간 심리치료를 이수한 C씨는 "재소자 환경과 특성이 가지각색이지만 일단은 여럿이 모여서 프로그램이 시작된다"면서 "그런 걸 불편해하는 사람이 있다 보니 발표도 꺼리게 되고 소극적 분위기가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교정시설 직원들은 교육 연속성이 담보되지 않은 점을 문제로 지적하기도 한다. 전문가 외에 교도관들이 직접 상담·치료 과정을 이수해 치료자로 나서는 경우가 많은데, 순환보직 제도 탓에 3년마다 부서를 바꿔야 한다. 5년 넘게 심리치료 관련 부서에서 일한 현직 교도관 D(50)씨는 "본부에서도 직원들 심리치료 역량 강화를 유도하는 추세지만, 업무 연속성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윤정숙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반사회성, 성적 일탈, 대인관계 문제 등 다양한 성범죄 요인 가운데 재소자의 핵심 유인을 파악해야 맞춤형 치료가 가능하다"며 "지속적인 개별 상담을 통한 심리치료 프로그램의 내실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정원 기자 hanak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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