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경고등' 켜졌는데..뒷짐진 금융당국

이충재 2021. 3. 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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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 '1700조 시대'에 은행 대출금리 뛰는데 금융당국 '불구경'
은성수 "가계부채관리와 내집마련 지원, 동시 고려하는 고민 크다"
금융권 "선거 앞둔 정치권 눈치 보지말고 위기의 경고등 켜야" 지적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2월 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혁신성장 BIG3 추진회의에 참석하고 있다.ⓒ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금융당국이 금리 상승세에 따른 시장의 불안을 잠재우지 못하고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시장에선 금리 상승에 따른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도 진화할 대책도 없이 '강건너 불구경'이라는 것이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이달 중순 개인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가계부채 관리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당장 가계부채 증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출창구를 옥죄겠다는 구상이다.


금융권에선 이번 방안의 초점이 대출규제에 맞춰진 만큼, 가계부채로 향하는 금리 상승의 불길을 잡는 근본적인 대책이 되긴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현재 경제의 화약고로 불리는 가계부채는 '역대급'으로 쌓인 상황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가계빚은 1년 새 125조6000억원 늘어난 1726조100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이는 천정부지로 뛰는 집값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로 집을 마련하거나, 3000선까지 치솟은 주식시장에 빚을 내고 뛰어든 '빚투'의 영향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시장에서 금리 상승의 불길이 닿기 전에 빚투‧영끌 문제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하다고 목청을 높이는 이유다. 금융권에선 '대출증가→금리상승→연체증가→부실화'의 두 번째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제 저금리 '돈잔치'가 끝나고, 빚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실제 국내 4대 시중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의 지난달 25일 기준 신용대출(1등급·1년) 금리가 연 2.59~3.65%로, 지난해 7월 말의 1.99∼3.51%와 비교해 하단이 0.6%p나 뛰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오름세로 돌아섰고,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지난달 1.6%를 넘기며 1년 만에 최고점을 찍었다.


금리상승 불길 가계부채 화약고 향하는데…금융당국 '면피용' 발언만


당장 금리가 뛰기 시작하면 '빚투‧영끌족'들은 이자 직격탄을 맞게 된다. 예컨대 지난해 은행에서 2.5%의 변동금리로 1억원을 빌렸는데, 금리가 1%p 상승하면 연간 이자 부담이 250만원에서 350만원으로 100만원 늘어난다. 지난해 12월 기준 예금은행 가계대출 잔액 중 변동금리 비중은 69.4%로, 대출을 받은 10명 중 7명은 금리 상승에 따른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셈이다.


금융권 일각에선 2002년 경제력이 떨어지는 대학생과 주부 등에게 무분별하게 카드를 발급해 신용불량자를 양산했던 카드대란처럼 영끌‧빚투족들이 떠안은 빚더미가 사회적 문제로 확산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권 대출금리 상승이 우려할 수준은 아니지만, 영끌‧빚투한 분들은 무거운 부담을 각오해야할 순간인 것은 맞다"면서 "변동금리로 받은 대출이 대부분이라서 충격은 더 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아직까지 금융당국은 '경고등'을 켜지 못하고 있다. 자칫 투자시장에 찬물을 끼얹는 효과나 민간소비 위축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금융위를 비롯한 정책기관은 4월 보궐선거를 앞두고 여당의 승리를 위해 정책지원에 나서야하는 '유세 지원단' 역할을 강요받고 있다.


금융당국 수장들은 원론적인 차원에서 우려스럽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대책이나 대응방향 조차 언급하지 않아, 향후 위기가 왔을 때 '나는 경고했다'는 면피용 메시지 아니냐는 의심까지 받고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3일 공개서한을 통해 "가계부채 급증은 향후 경제주체들의 소비제약으로 작용해 우리 경제에 부담이 돼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면서도 "'청년층 내집마련 지원'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정책당국으로서 고민이 깊다"고 말했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일 임원회의에서 "자산 가격의 조정 가능성에 대해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만 했다.


전문가들은 금융당국이 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눈치 보지말고 확실한 위기의 경고등 켜야할 때라고 지적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금리가 올라가면 가계부채와 기업부채가 악화되면서 부도기업이 증가하고, 부채상환을 포기하는 가계도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면서 "부채의 증가속도를 억제하는 정책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데일리안 이충재 기자 (cj5128@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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